90년대 최고의 데뷔를 한 감독 중 한 사람을 뽑자면 제임스 그레이를 뽑을 수 있다. 그는 데뷔작인 <비열한 거리>로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말 그대로 충격적인 데뷔를 한다. 이때 나이가 고작 24살.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대니 보일이나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역시나 데뷔작부터 충격을 선사했던 천재들에 비해 잘 알지 못한다. 2000년대 들어서도 <위 오운 더 나잇>, <투 러버스>, <이민자> 같은 화제작들을 만들어낸 감독이지만 왜 그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 걸까?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는 철저하게 인물 중심이다. 사건이 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인물이 사건에 휘말리는 구도가 아닌 인물들을 통해 사건이 일어나고 인물이 이 사건을 겪는 구도. 이는 집단에서 개인으로 사회의 중심이 넘어가는 시대를 그대로 영화에서 보여주며 카메라의 구도, 빛의 강약, 장면의 묘사 역시 인물이 지니는 심리를 중점으로 표현되었다. 그의 영화가 인물을 보여주는 이유는 ‘타자’에 있다. 그의 영화들은 이방인들에 대한 영화이며 낯선 공간에 선 이들이 할 이야기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비열한 거리>는 고향을 떠났던 청부 킬러 조슈아가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랜 시간 떠나있던 고향의 변화는 둘 중 하나다. 안정적이거나 혹은 누군가의 떠남으로 인해 변화를 맞이하였거나.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예외다. 조슈아가 떠나기 전부터 그의 가정은 망가져 있었고 그 붕괴는 여전하다. 어머니는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이며,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바람을 핀다.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건 동생뿐이지만 동생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는 건 물론 아버지에게 폭력적인 교육을 당한다. 이런 이민가족의 병폐는 미국 이민가정들이 겪는 전형적인 문제다. 어머니의 사랑이 없고(이 작품에서는 어머니가 죽어감으로 인해 사랑의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아버지는 폭력으로 자식들을 훈육하며 자식세대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교육’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자식 세대가 택할 수 있는 건 아버지가 일궈놓은 조그마한 가게라도 물려받거나 아니면 거리의 갱이 되는 것이다. 90년대, 제임스 그레이가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바라본 미국의 ‘낯선 풍경’은 짐 자무쉬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자무쉬가 황량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제임스 그레이는 꿈을 전혀 꿀 수 없는, 마치 잘못된 공간에 도착한 이들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의 신작 <잃어버린 도시 Z>는 이런 90년대의 감성을 여전한 ‘이방인’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의 이 모험 영화는 <인디아나 존스>처럼 경쾌하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혀 신나지가 않다. 심지어 신비로운 느낌도 없다. 그는 집안의 출신으로 인해 뛰어난 자질이 있음에도 불구 인정받지 못한 찰리 포셋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전개는 느리고 흥미로운 부분이라고는 없다. 몇 번의 여정을 보여주며 액션이나 기교보다는 인물들이 펼치는 모험에 초점을 맞춘다. 장르적인 쾌감을 기대한다면 실망 그 자체일 것이다. 이 영화가 가진 힘은 ‘미지의 세계’다. 찰리 포셋은 아마존 어딘가에 문명의 세계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모험을 지속한다. 그에게 아마존 정글은 단순한 ‘미지’가 아닌 ‘미래’이다.
하지만 이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과정은 지루하고 느리다. 이야기가 가진 힘은 그리 크지 않고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는 모두 제거되어 있다. 대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일까?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들은 밝지 않다. 그의 영화는 확실한 비극은 아니나 어둡고 칙칙하고 슬프게 끝을 맺는다. 이는 모험 장르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기에 더하다. 그는 이 어두운 모험담에 하나의 빛을 놔둔다. 바로 ‘잃어버린 도시 Z’다. 퍼시 포셋의 삶은 그의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집안이 발목을 잡았다. 그는 영국 내에서 이방인이었고, 군대라는 집단 내에서도 인사이더가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이방의 문명’이란 흥미로운 존재였을 것이다.
자신들만이 고고하고 절대적이라 여기는 유럽의 문명, 그 문명에 의한 희생양, 그 희생양이 스스로 이방인을 자처해 새로운 빛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 빛은 그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정착하고 성공을 거둘 수 있어!’라는 이민자들의 ‘희망’처럼 퍼시 포셋의 여정은 헛되고 고단하기만 하지만 한 줄기 희망을 꿈꾸는 우울한 이민자들의 삶이 담겨 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는 것, 동시에 지겨움을 느끼는 것. 난 그것이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여정이 우리의 삶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하기에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이 세상에 나 혼자 온 거 같은 기분. 분명 이 집은 내가 살아온 집이고, 이 가족은 내가 평생 함께한 가족이고, 이 직장은 내가 평생 함께한 직장인데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면 마치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기분. 그래서 돈, 성공, 명예라는 ‘잃어버린 도시 Z’를 보고 달려가는 그 모습은 듣고, 생각하고, 느끼기에는 아름답고 흥미롭지만, 막상 또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비루하고, 불쌍하고, 지루해 보이기만 하는 모습.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인물을 중심에 둔 연출을 액션과 모험이라는 장르에서 선택하였고 이는 흥미보다는 오히려 강한 연민과 환상, 그리고 지루함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제임스 그레이는 여전히 90년대, 그가 성공적인 데뷔를 했던 그 시절의 감성에 빠져 있다. 그리고 세상도 아직 그때의 감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인간은 자신의 삶의 ‘타자화’를 경험한다. 이는 단순히 이민자의 문제가 아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이며 이런 문제에 대한 공감이 제임스 그레이라는 감독의 영화가 가진 감성의 깊이를 느끼게 만드는 힘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감성이 주는 불쾌함이 그를 ‘비교적 덜 유명한’ 그리고 데뷔 당시의 명성에 비해 ‘힘들게 작품을 찍는’ 감독으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어찌되었건 영화라는 건 ‘사건’이 있어야 하고 ‘사건’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스크린에서 ‘내’가 아닌 ‘멋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