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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서울환경영화제를 가다(2)

<요리의 여신들> 外

서울환경영화제에서 토요일 날 1편, 월요일 날 2편을 관람했다. <요리의 여신들>의 경우 끝나고 GT가 있었는데 학교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나왔다. 솔직히 이걸 GT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영화이기도 해서 그런 것도 있고 말이다. 수요일이면 영화제가 끝이 나는데 빨리 일어나면 한 편쯤 더 볼 예정이다. 여러모로 시간 때문에 보고 싶은 작품들을 많이 놓쳐서 아쉽다. 하, 이럴 때면 일정 다 비워두고 영화제만 챙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랑블루: 자크 마욜의 삶> - 바다가 되고 싶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 


뤽 베송 감독의 명작 <그랑블루>는 바다를 독특한 방법으로 촬영, 그 환상적인 영상미로 수많은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잠수부 자크는 아버지와 라이벌이자 절친인 엔조를 바다에서 잃어버린다. 바다는 그에게 불행과 고통을 안겨준다. 허나 동시에 바다는 그를 포근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물속에서 삶을 시작한다. 태아 때 양수 안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는 게 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 속 자크처럼 실존 인물인 자크 마욜 역시 물속에서의 삶을 즐겼다. 그는 돌고래처럼 물속에서 살아가는 포유류가 되고 싶어 했다.


사람은 멀리서 알 때, 적당히 신비감을 가지고 있을 때 가장 좋다고 한다. 만약 영화 <그랑블루>만을 본 분들이라면 자크 마욜이라는 사람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영화 자체가 감상적이었고 장 마르 바라는 미남 배우가 그의 역할을 맡았다. 자크 마욜은 커다란 상체에 상남자 같은 외모를 지닌 남자다. 잠수 기록으로 유명인에 등극하지만 사생활은 좋지 않았다. 직업이 일정하지 않았고 가족을 버렸다. 헐리웃 여배우들의 운전기사가 되어 그 화려한 삶에 끼어들었고 친구들이 이용해 먹는다는 걸 눈치 챌 만큼 인간관계를 어리석게 맺었다. 

그는 바다가 어울리는 삶을 살았지만 인간 세계에 미련을 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독일인 모델이다. 그는 그 모델과 진정한 사랑을 했지만 그녀가 살해당하면서 모든 걸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에게는 ‘정말’ 바다만 남는다. 이후 자크 마욜은 요가를 통한 호흡법으로 마의 영역을 돌파, 잠수 신기록을 세우지만 삶은 더욱 비루해진다. 매스컴의 관심은 그를 더 피곤하게 만들고 정신적으로 초췌해지게 한다. 자크 마욜은 돌고래가 아니기에 땅에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땅 위에 그가 사랑하는 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뒤늦게 가족을 버리고 떠난 걸 후회했다고 한다. 진정한 사랑을 잃어버린 그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참 <그랑블루>가 자크 마욜이라는 사람을 잘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이 프랑스 영화사에 흥행기록을 남긴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자크 마욜은 육지보다 바다가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영화 속 대사 ‘가장 힘든 것은 바다 맨 밑에 있을 때야. 왜냐하면 다시 올라와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하거든’처럼 그는 육지에 있을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는 돌고래였다. <그랑블루>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이 영화는 또 다른 선물이 될 것이다.



<빙하를 따라서> - 백문이 불여일견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물 부족 국가로 알려져 있다. 공익광고는 물론 학교에서 실시하는 환경보호 표어, 포스터 대회 작품만 보아도 이를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한국이 물 부족 국가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을 하기 힘들다. 의견이 갈려도 너무 갈리는 건 물론 여름철에 내리는 폭우나 손잡이만 돌려도 쏟아지는 물을 볼 때면 동의하기가 힘들다. 환경오염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학자들마다 의견이 갈린다. 누구는 지구의 환경오염이 심각한 문제라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환경문제는 매년 끔찍한 예측이 있었으나 이루어진 적이 없으며 환경보호운동가들이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 제임스 발로그도 처음에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그로 인한 기후변화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직접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알래스카 등을 향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다. 그리고 결심한다. 사진을 찍어서 사람들에게 실상을 보여주자고 말이다. 과학에서 사용하는 통계자료의 경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힘들다. 숫자나 그래프는 실감이 나지 않는 건 물론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제임스 발로그가 택한 방법은 빙하가 녹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시각적인 충격을 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참 좋은 영화였지만 표현에 있어 아쉬움이 크다. 오직 사진 촬영 과정만을 다루고 있기에 상당히 지루하다. 좀 더 다양한 측면에서 지구 온난화로 인한 빙하의 소멸을 이야기했다면 흥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촬영의 과정에만 초점을 두다 보니 흥미를 느낄 요소가 너무 적다.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제작과 촬영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는 자료의 수집에도 이유가 있지만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작품을 구성해내는데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오랜 시간을 공들였으나 흥미있는 구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작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빙하의 변화 사진은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줄 것이다.



<요리의 여신들> - 왜 여성 셰프는 없는 걸까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JTBC예능이 유행이었을 때 커뮤니티사이트에 이런 의문들이 올라오곤 했다. ‘왜 <냉장고를 부탁해>에는 여성 셰프는 등장하지 않는 걸까?’ <요리의 여신들>은 주방은 여성의 것이지만 프로의 주방은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셰프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1900년대 초부터 미슐랭 별점을 받은 여성 셰프들이 있었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미슐랭 별점을 받거나 규모가 큰 식당을 운영하는 여성 셰프들이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잡지의 커버를 장식할 만큼 영향력을 지니지 못한다. 언론은 근육질에 문신을 한 섹시한 남성 셰프들에게는 관심을 가지지만 주방에서 최고의 요리를 선보이는 여성 셰프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직업 자체에서 성적인 차별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성이라고 더 혹독한 셰프 훈련을 받거나 주방에서 역할을 제한받지 않는다. 여성도 노력하면 셰프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문제는 무엇인가. 바로 구조와 인식이다. 이 작품에서 소믈리에에 관한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인데 감독은 심사위원 두 사람에게 ‘왜 여성 소믈리에가 부족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지 않다. 실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지원하는 사람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심사과정에서 차별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 남성 심사위원이 이런 말을 한다. 와인을 왜 남성이 고르냐는 질문에 남성이 돈을 내기 때문이라고. 그는 절대 여성에게 돈을 내게 할 수 없다며 그건 자신이 배워온 매너라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의 발전은 남성을 위주로 진행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사회의 구조는 남성이 중심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이런 구조에서 생성된 여성에 대한 인식은 보호와 배려의 대상이다. 여성과의 식사에서 더치페이는 절대 할 수 없다는 심사위원의 말은 남성이 수익의 대부분을 책임졌던, 그래서 여성보다 주머니가 두둑해 금전적인 배려를 해줄 수 있었던 시대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틀에 박힌 여성상이 있다. 그래서 여성은 ‘조금 더 특별해야’ 셰프나 소믈리에 같은 남성 사회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등장하는 말이 여성의 남성성이다. 이 작품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주방에서 일하는 여성은 남성성을 지녀야만 하는가?’


주방이 남성의 공간이라고 정의를 내렸기에 여성도 남성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성 셰프들은 한국의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이들처럼 집단으로 뭉쳐 행동해야 하는가? 영화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주방에서만 묵묵하게 일해 주목받지 못하는 여성 셰프들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내비치지만 그에 대한 답으로 집단의 연대를 주장한다면 모양이 우스워진다 말한다. 중요한 건 실력이다. 가수가 노래로 증명하듯 셰프는 음식으로 존재가치를 입증한다. 헌데 집단을 꾸려 여성 셰프를 언론에 더 노출시키라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위인전에 여성 영웅이 부족하니 여성 영웅을 찾아 넣자’라는 쿼터 제도의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여성 셰프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지만 그 원인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여성의 연대를 통한 극복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의문은 시원하게 질렀는데 해결책적인 측면에서 미온적이라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아쉬움이라 할 수 있다. 주제도 좋고 접근법도 좋고 치우치지 않은 자세도 좋다. 하지만 선생님이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 뒤에 ‘뭐 이것도 답이고 저것도 답이 될 수 있겠지? 중요한 건 너희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는 거란다’라는 형식적이고 전형적인 마무리를 택한다면 힘이 빠질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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