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를 시사회로 먼저 만나기 전 세 가지 물음이 있었다.
1. 남자 이야기를 쓰던 박훈정 감독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2. 앞서 검증된 배우들로 작품을 찍었던 감독이 신인을 주연으로 기용했다. 자윤은 어떤 역할이며 김다미라는 배우에게서 무엇을 발견한 걸까.
3. 미스터리 액션 + 오디션 + 의문의 사고. 대체 이 조합은 무엇이며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인가.
박훈정 감독은 <신세계>로 대박을 터뜨린 후 <대호>와 <브이아이피>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두 작품의 경우 흥미로운 소재와 강렬한 이야기로 무장했지만 강약조절의 실패와 지나친 긴장감이 오히려 관객들을 무겁게 만드는 효과, 여기에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전개로 <신세계> 감독이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마녀>는 한 번의 성공이 우연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이제 뭔가 보여줘야 할 때’ 등장한 작품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마녀 사냥의 역사를 보여주면서 이 작품이 ‘마녀’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아직 개봉하지 않은 작품이라 이 정도만 말하겠다. 개봉 후 리뷰에도 쓰겠지만 이 첫 장면이 감정적으로 강력한 반전을 주는 포인트가 된다.) 이 영화는 마녀란 소재에 어울리게 동화적인 요소들이 들어있다. 첫 번째는 기억을 잃은 마녀다. 관객들은 본인이 마녀라는 걸 잊어버린 소녀에게 호기심을 품게 된다. 영화는 마녀가 가진 능력과 과거를 일부러 가리고 또 가리면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두 번째는 마녀를 쫓는 소년이다. 소년은 해맑은 미소를 지녔지만 동시에 잔혹한 면모를 보여주면서 어린 시절 소년이 소녀를 쫓아간 이유가 선일지 아님 악일지 궁금증을 가지게 만든다.
세 번째는 머리로 키운 엄마와 마음으로 키운 엄마다. 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엄마와 새 엄마를 영화는 머리로 키운 잔인한 엄마와 마음으로 키운 따뜻한 엄마를 통해 대조적인 느낌을 준다. 네 번째는 배경이다. 영화는 자윤이 사는 목장과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예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런 느낌 덕분인지 자윤에게 위기가 다가오는 지점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배가 되는 효과를 준다. 이 동화적인 느낌은 영화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궁금증을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이전 작품들에서 경험했던 문제점을 느꼈는지 박훈정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는 완급 조절을 시도한다. 조절에 있어 핵심이 흥미만으로 관객들을 터닝 포인트까지 이끄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감독은 마녀라는 소재에 동화적인 요소, 여기에 자윤의 친구를 감초 역할로 활용하면서 포인트가 되는 지점까지 관객을 안내한다.
이 터닝 포인트가 영화의 핵심이자 앞서 말했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다. 박훈정 감독은 <브이아이피> 당시 약간 실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김광일이라는 캐릭터는 우아함과 섬뜩함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어야 했다. 캐릭터도 그런 식으로 묘사가 되었고 이종석의 연기 역시 좋았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색깔이 김광일을 지나치게 붉게 물들여 놨고 결과적으로 관객들에게 ‘징그럽다’는 느낌만을 주었다. 이는 마초적인 이야기를 하는 감독답게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다 보니 오히려 역효과가 난 것이라 생각한다. 이야기에서 보기에는 멋있어 보이지만 실제 캐릭터의 매력은 영화의 스타일상 반감된다. 이는 <대호>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던 문제다. 그래서 감독은 여성을 택하였다. 순박한 시골 소녀에 마녀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져오면서 강렬한 표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터닝 포인트 지점에 이르면 박훈정 감독의 영화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2번째 질문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다. 영화에서 김다미라는 배우를 처음 만나는 관객들은 이런 의문이 생길 것이다. ‘대체 저 배우를 왜 캐스팅한 거야?’ 딱히 미모도 연기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지는 김고은과 비슷해서 그녀만의 독특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박훈정 정도의 감독이라면 이름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든다.(더군다나 이 작품이 시리즈의 첫 번째이고 이후 시리즈가 나온다면 어느 정도 흥행력이 보장된 배우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진가가 드러나는 지점에 이르면 왜 김다미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다. 배우의 연기는 감독이 생각했던 이미지가 무엇인지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녀는 그 역할을 해냈다. 이 이미지 덕분에 영화의 강렬한 액션은 자칫 유치하거나 과장될 수 있었음에도 묵직함을 지니게 된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에 있어서 오디션이라는 소재는 아무리 생각해도 진부하다고 본다. 아이디어와 아이디어 사이에는 다리가 필요하다. 인물을 다음 이야기로 보내기 위해서는 연결통로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자윤이 10년 전 의문의 사고와 만나기 위해서는 그녀를 시골 마을 밖으로 보내야 한다. 대신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길기에 이를 위해 복잡한 전개는 최대한 지양해야 했다.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방법을 택했으나 오디션 열풍 때문에 전 국민이 이 소재에 지쳐있다는 점, 너무 쉬운 지름길을 택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개인적으로 취향저격 당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분위기의 반전이 효과적인 건 물론 심도 있게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는 점, 극의 반전 이후 생길 수 있는 위화감이 없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흥미로운 장면들 중 가장 흥미로운 장면을 택해 전개해 나가는 영화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을 주면서 코스프레나 촌스러운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는 액션과 큰 관련이 있는데 영화의 액션은 스릴과 공포, 박진감을 가지고 있지만 어설프게 표현할 시 코믹과 과장을 줄 수 있었다. 감독은 이런 느낌을 없애는데 성공하였고 덕분에 영화가 지닌 특유의 액션과 파워가 관객들을 압도하게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이 영화만이 가진 색과 힘이 있다는 점, 구성적인 완성도가 있다는 점에서 아직 시리즈의 시작이지만 다음 편을 기대할 만한 작품이 탄생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