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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이들을 위한 따뜻한 러브 어드벤처 <오 루시!>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삶에 공허함을 느끼는 잭은 심리모임에서 덩치 큰 남성과 포옹을 한다. 이 모임에서의 치료 방법은 포옹이다. 이 덩치 큰 남자는 잭에게 안겨 울음을 터뜨린다. 현대인들은 이기적이고 이성적이며 냉철하지만 동시에 감정적인 부분에서 안길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오 루시!>의 시작 장면인 한 남자의 지하철 투신 장면은 주인공 세츠코의 이런 심리를 대변하고 있다. 세츠코는 언니 아야코가 남자친구를 빼앗은 후 독신으로 살아가고 있다. 왕래가 적어진 언니의 딸 미카는 세츠코에게 자신의 영어 수업을 대신 들어달라 말한다. 거액의 수업료를 냈으나 아르바이트 때문에 환불해 달라 하니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세츠코는 존이라는 잘생긴 영어 강사를 만난다.

세츠코는 존과의 만남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 이는 존의 수업에 등장하는 세 가지 키워드 때문이다. 첫 번째는 이름이다. 여느 영어 수업처럼 세츠코는 이름을 뽑고 루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두 번째는 가발이다. 가발을 쓴 세츠코는 일본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루시가 그녀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면 가발은 그 정체성의 형태를 가져다주었다 할 수 있다. 마지막은 포옹이다. 존은 ‘미국식 영어’를 강조하면서 인사로 포옹을 한다. 세츠코는 존에게 강렬한 포옹을 하며 사랑에 빠진다. 이 장면은 언뜻 보기엔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 그깟 포옹이 뭐라고 첫눈에 반하다니. 심지어 포옹 때문에 반해 미국으로 존을 만나러 떠난다니 말이다. 감독은 이 심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인물을 한 명 등장시킨다. 세츠코에게 매일 계피 맛 과자를 주고 무능력에도 불구 심한 오지랖으로 사원들에게 뒷담화 대상이 되는 퇴직 여직원이다.


<종이 달>이라는 영화에서 거액의 횡령을 한 은행 파트 타임 직원인 리카의 심리는 일반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남을 도와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그 심리는 남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헌데 리카의 도주를 눈감아 준 스미 유리코는 리카와는 다른 성실한 직장생활을 한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의 종착역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권고사직이라는 점을 알게 되고 리카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세츠코는 이 퇴직 여직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세츠코 역시 오지랖이 넓으며 집은 쓰레기장일 만큼 자기 관리가 엉망이다. 여기에 그녀는 자기 앞에 앉은 여직원의 퇴직 날마저 모를 만큼 직장 내에서 중요한 위치가 아니다. 결국 그녀의 삶도 그렇게 끝날 것이다. 자신도 그 여직원처럼 남들에게 뒷담이나 까이고 있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사랑을 찾아 새로운 나를 찾겠다고 그녀는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는 통통 튀는 유머와 예측 불가한 스토리로 관객들에게 재미를 준다. 특히 세츠코의 캐릭터는 꽤나 인상적이다. 그녀는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과 행동을 보이는 건 물론 이기적이고 대책 없는 모습을 선보인다. 감독이 캐릭터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생각이 드는 게 영화의 전개가 예상을 뛰어 넘어도 ‘아, 세츠코 성격이면 충분히 저러겠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유머 스타일은 일본 만화 <이나중 탁구부>를 연상시키는데 이런 독특하고 신선한 유머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만들어 준다. 혹 이 영화가 불편한 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 자체가 건전한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중후반부의 이야기는 치정극에 가까우며 세츠코가 착하고 건강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 전개의 핵심이기에 주인공의 선택에 공감하기 힘들다는 점이 이 영화의 불안요소라 생각한다.

감독은 왜 유쾌하고 발랄한 매력을 줄 수 있었던 러브 어드벤처를 불편한 치정극으로 변모시킨 걸까. 이에 대한 답은 결국 이 영화가 내리고자 하는 결론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이 외로운 건 결국 서로가 서로를 멀리하는 구조에서 시작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누구 하나도 제대로 된 가족의 형태를 이루지 못하는 건 물론 사랑을 받거나 주지 못하는, 사랑에 있어 기형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는 현대 사회가 지닌 문제점이다. 능력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재단하며 남을 쉽게 평가하고 상처를 준다. 그리고 자신 역시 상처투성이가 되어 아픔을 홀로 참으러 애쓴다. 그리고 행복이나 미래는 먼 곳에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간다.


<어바웃 슈미트>에서 보험회사 일을 은퇴한 슈미트는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한다. 죽은 아내는 그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딸은 결혼을 통해 아버지의 그늘에서 완전히 빠져나간다. 딸의 결혼식을 향하는 여정 동안 슈미트는 사랑을 줄 대상도, 사랑을 받을 대상도 찾지 못한다. 집에 돌아온 그는 자신이 별 생각 없이 후원했던 탄자니아 꼬마에게 편지와 그림을 받고 눈물을 터뜨린다. <오 루시!> 역시 마찬가지다. 세츠코는 ‘루시’가 되어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섰지만 그럴수록 남에게 상처를 주고 이기적인 선택만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오히려 진정한 마음의 고향은 먼 곳이 아닌 가까이에 있는 ‘루시’에게 있었다는 결말은 외로운 이들을 위한 위로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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