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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 서 말 구슬을 꿰긴 했건만

 

<변산>은 <동주>, <박열>에 이은 이준익 감독의 청춘 3부작의 마지막이다. <동주>가 찬란히 빛났던 미완의 청춘을, <박열>이 불덩이 같았던 뜨거운 청춘을 다루었다면 <변산>은 유쾌하고 즐거운 청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앞선 작품들이 일제강점기로 시대적인 무게감이 느껴졌던 반면 <변산>은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88만원 세대의 취업난이나 을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기에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영화는 결정적인 순간에 꼭 미끄러지는 홍대에서 유명한 <쇼 미 더 머니>만 6년째 참가하고 있는 래퍼 학수가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변산으로 내려가면서 시작된다. 학수는 고향 변산에서 좋았던 기억이 하나도 없다. 아버지는 동네 깡패였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첫사랑 미경에게 고백한다는 것이 실수로 좋아하지도 않는 선미에게 고백을 해버린 흑역사는 물론 자신의 시+랩 노트를 훔쳐 교생 선생이 시인으로 등단하는 억울한 일마저 당한 동네가 변산이다.  

   

돌아온 동네는 예전과 다를 바가 없다. 아버지와의 사이는 여전히 최악이며 하필 같은 병실에 선미 아버지가 입원해 있어 선미와 마주한다. 모자를 썼다는 이유로 보이스피싱 범죄자로 몰리며 자신의 노트를 훔쳐간 교생 선생이 하필 첫사랑 미경의 애인이 되어 있다. 여기에 어린 시절 괴롭혔던 용대는 조폭이 되어 학수 앞에 나타난다. <변산>은 간단히 말하자면 고향으로 돌아간 래퍼의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다. <더 행오버>나 <유로트립>처럼 특정한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으로 인물들이 하나로 뭉치며 일어나는 코믹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변산>의 유머 유효타는 상당히 높다. 그 비결은 배우들이 각각의 캐릭터의 중심을 잘 잡고 있다는데 있다. 한 마디로 캐릭터의 합이 좋다. 한 명 한 명이 개성이 강하니 상황설정이 주어졌을 시에 어떻게 하면 코믹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를 잘 알고 수행한다. 이는 배경이 시골이라는 점,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올 수 있는 전형적인 스타일을 완벽하게 탈피한다. 단순히 코미디 영화로만 이 영화를 평가하자면 유효타 높은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르는 엄연히 드라마고 이준익 감독의 청춘 3부작의 마침표라 할 수 있는 영화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변산>은 상당히 아쉽다. 서 말 구슬을 잘 꿰맸는데 알 수 없는 모양이 나와 버린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음악영화에 재능이 있는 감독이다. <라디오 스타>에서는 한물 간 톱스타와 매니저의 우정을 라디오라는 소재로 가슴 따뜻하게 풀어냈고 <즐거운 인생>에서는 나이든 아재들이 다시 밴드를 결성하는 모습을 유쾌하고 뜨겁게 표현했다. 이 두 영화의 경우 이준익 감독 세대와 감성이 맞았다고 볼 수 있다. 감독이 잘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잘 해냈고 관객과 평론에 호평을 받았다. 

  

헌데 ‘랩’이라는 소재를 가져왔으면서 이에 대한 고찰이 없다. 이전 영화들은 ‘라디오’와 ‘밴드’라는 소재를 중점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사용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저 주인공이 래퍼이고 자신의 감정을 랩으로 표현한다는 거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랩과 관련된 명작 영화 <8마일>을 보면 흑인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백인 주인공이 자신의 울분과 슬픔, 그리고 변하지 않는 삶을 랩에 담아낸다. 힙합에 담긴 저항의식과 의지를 이야기의 구조가 담아내고 있다. 반면 <변산>은 소재만 랩일 뿐 귀향과 부자 갈등이 기본 골격을 이룬다. 그러다 보니 볼 때는 재미있는데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게 부족하다. 애초에 일회성 유머가 메인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며 골격 자체가 지나치게 익숙한 이야기다 보니 독특함을 주지 못한다. 

  

이는 이준익 커리어에서 몇 안 되는 아쉬운 영화인 <평양성>의 전반부를 떠올리게 만든다. 전작 <황산벌>의 성공에 힘입은 이 후속편에서 이준익 감독은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방대한 캐릭터와 뮤지컬 시도는 과한 유머와 더해져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는 느낌을 주었다. 랩 역시 마찬가지다. 이준익 감독은 이전 작품들이 지녔던 무게감에서 벗어나 유쾌한 청춘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였지만 본인이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가져온 게 큰 실수였다고 본다. ‘나도 즐겁고 유쾌한 청춘을 그릴 수 있어’라는 젊은 감각을 과시하려고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구슬은 많지만 방향을 알 수 없는 모양이 탄생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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