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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몬몬 몬스터> - 괴물들이 사는 세상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첫사랑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감독, 구파도의 신작 <몬몬몬 몬스터>는 이전 작품을 생각했을 때 짙은 감수성과 여운을 주는 작품일 것이라 기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목에서 나타나듯 <몬몬몬 몬스터>가 바라보는 청춘은 검고 붉게 물든 잿빛이다. 이 작품에는 네 부류의 몬스터가 등장한다. 첫 번째는 글자 그대로의 몬스터, 두 번째는 약자를 괴롭히는 몬스터, 세 번째는 약자를 괴롭히는 걸 방관하고 질서라 여기는 몬스터, 네 번째는 점점 괴물로 변해가는 몬스터다.

작품은 자매 몬스터가 한 남자를 죽인 뒤 잡아먹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섬뜩하고 끈적한 공포가 끝난 뒤 영화는 교탁 앞의 린슈웨이(등육개 분)를 향해 휴지를 던지는 반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린슈웨이는 학급비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있고 이 누명을 주도한 이는 런하오(채범희)의 무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학생들 사이의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될 담임선생(진패기 역)의 자세이다. 그녀는 런하오 무리의 악행을 알면서도 눈감아 준다. 그리고 린슈웨이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 종교에 심취한 그녀는 분란보다는 평안을 중시한다. 런하오를 중심으로 한 권력을 쥔 학생들을 건드려 봐야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의 질서는 런하오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린슈웨이는 그 안에서 희생양이 된다. 괜히 희생양을 구해주려고 해봤자 생기는 건 담임선생을 향한 반항과 다툼이다.


담임선생은 세 번째, 런하오는 두 번째 몬스터라 할 수 있다. 담임선생이 린슈웨이와 런하오 일행을 같이 봉사활동에 보내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런하오 일행은 병든 노인들을 못살게 굴며 린슈웨이는 여기에 가담한다. 노인들을 괴롭히는 동안 린슈웨이는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첫 번째에 해당하는 몬스터, 말 그대로 인간을 잡아먹는 몬스터가 차에 치인 걸 발견한 순간 린슈웨이는 네 번째 몬스터로 변한다.

런하오 일행은 호기심에 이 몬스터를 고문한다. 이 고문에 가담하며 비밀을 공유한 순간 런슈웨이는 가담자이자 방관자라는 몬스터가 된다. 그가 괴물이 된 이유는 하나다. 괴물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런하오 일행이 다른 대상(노인, 몬스터)에게 관심이 향해있을 때 런슈웨이는 그 괴롭힘을 벗어나 오히려 무리에 편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핑크빛 로맨스와 아련한 첫사랑을 생각했을 때 피와 저열함이 들끓는 7년 만의 신작에 괴리감이 느껴질 만도 하다. 하지만 그는 영화감독이자 60편이 넘는 작품을 쓴 작가이다.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 온 작가인 만큼 장르적인 변화에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선보인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네 부류로 나눠진 몬스터들에 따라 서로 다른 주제의식을 탐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자매 몬스터는 다르다 또는 인간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이유로 이뤄지는 학살과 고문, 이에 대한 합당성 부여로 볼 수 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학살을 당하고 동물원에 갇힌 맹수들, 피부색과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아프리카 흑인들과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런하오의 무리는 여느 사회가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교내 왕따, 폭력, 청소년 비행 문제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마는 방관과 침묵의 문제를 보여준다. 학교폭력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 힘든 이유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구조 때문이다.

이들은 피해자인 린슈웨이를 자신들의 무리에 가담시키고 같이 폭력을 행하게 함으로 가해자로 둔갑시킨다. 담임선생은 이런 문제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어른, 즉, 사회가 지닌 방관과 회피, 강압적인 화합을 보여주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런하오 일당의 만행에 눈을 감는 건 물론이고 그들을 린슈웨이와 함께 봉사활동에 보냄으로 강압적인 화합을 추구한다. 작품 내에서는 독실한 불교 신자라는 측면에서 다툼보다는 화합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런하오의 뺨을 계속 내리치는 장면에서 결국 문제를 회피하고 방관하고만 있었음을 보여준다.

린슈웨이는 사회가 지닌 방관과 회피가 결국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는 핵심적인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린슈웨이는 담임선생에게 자신이 입고 있는 피해와 고통을 호소했으나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였다. 사회의 안전망이 무너졌을 때 또는 사회가 자신들을 지키기 못한다 생각할 때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된다.

린슈웨이는 런하오 무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의 악행에 동참한다. 그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나 끝내 '몬스터'가 되었음을 확인한다. 몬스터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몬스터가 되어야만 하는 사회의 그림자를 다룬 이 영화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이 괴물들의 싸움을 즐기는 당신 역시 방관자가 아니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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