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태양의 탑>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등으로 유명한 모리미 도미히코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 <펭귄 하이웨이>는 일상 미스터리에 판타지가 섞인 묘한 작품이다. 11살의 소년 아오야마는 등교 길에 펭귄을 발견한다.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펭귄들. 근처의 동물원에서 펭귄이 탈출한 적 없다는 소식을 들은 아오야마는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친구 우치다와 함께 동네를 탐험한다.
<펭귄 하이웨이>는 크게 두 가지 줄기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첫 번째는 인물들의 캐릭터성, 두 번째는 은유적인 상징이다. 작품 속 캐릭터들의 강한 개성은 그들이 서로 붙었을 때 좋은 합을 만들어 낸다. 주인공 아오야마는 천부적인 두뇌의 소유자이며 주변에 흥미가 많다. 그는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소유한 이상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성적 호기심을 지닌 어린아이다운 면모도 보인다.
친구 우치다는 꺼벙이 안경을 낀 전형적인 약골 캐릭터이며 스즈키는 큰 덩치에 어울리는 유아독존의 면모를 보인다. 하마모토는 머리는 똑똑하지만 이성적인 판단력은 부족하다. 우치다의 약한 면모는 아오야마와 하마모토라는 개성 강한 두 캐릭터 사이를 어색하지 않게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며 개그 캐릭터로써의 역할에 충실하다. 스즈키의 고집 강한 성격은 아오야마와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격화되지 않음에도 그를 싫어하고 괴롭히는 이유를 납득시킨다.
여기에 극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누나'는 활발하고 자상한 성격에 쿨한 면모를 보이며 이야기의 진행을 시원하게 만든다. 캐릭터의 성격이 확실하다 보니 이들 사이의 갈등을 억지로 연결시키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 보니 극에 군더더기가 덜하고 속도를 내고 싶을 때 빠르게 낼 수 있는 속도감을 선보인다.
작품은 펭귄이라는 거대한 은유적인 상징을 통해 여러 파생적인 은유를 선보인다. 펭귄이 등장하고 아이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이야기 자체를 심오하게 가져가기 힘든 면이 있는 만큼 은유적인 표현으로 그 깊이를 더한다. 갑작스러운 펭귄의 등장과 '누나'의 특별한 능력, 깊은 숲속에서 발견한 거대한 구체는 이런 은유적인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아오야마의 아버지가 주머니를 통해 안이라 여겼던 부분이 밖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장면은 작품의 세계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제목이 지닌 의미도 특별한데 펭귄이 지나가는 길을 의미하는 <펭귄 하이웨이>는 '왜 펭귄이 이 길을 지나가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처럼 한 개인의 삶 역시 '내가 왜 이것을 하는가'에 대한 합당한 이유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작품 속 각 인물들이 지닌 삶의 방향성과 일상의 모습을 변호하면서 동시에 '내가 가는 길'이 '나만이 갈 수 있는 길'임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호기심의 자극과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바람직한 조화, 은유적인 표현을 통한 깊이의 강화는 이 영화의 장점이다. 모험과 미스터리를 더한 소년의 성장담도 흥미롭다. 여기에 지브리 스튜디오 출신의 아라이 요지로가 캐릭터 디자인을 맡으면서 지브리의 느낌이 더해진 점, 결말의 진한 여운과 감수성은 플러스 요소라 할 수 있다. 다만 원작을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면서 생긴 문제점들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첫 번째는 장르적인 측면의 약점이다. 미스터리 판타지 일상물은 라이트 노벨 종류의 소설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다뤄왔던 소재인 만큼 이 문화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어색하지 않다. 다만 극장 애니메이션을 주로 봐왔던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장르는 어필할 수 있는 지점이 약하다. 이는 제22회 국제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빙과(氷菓)>를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이야기의 흥미가 떨어지다 보니 '굳이 저 이야기를 영화화했어야 되었나'라는 의문이 든다. <펭귄 하이웨이>의 경우 은유적인 의미가 강하기에 주제의식을 쉽게 알아낼 수 없고 알고 싶다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힘도 부족하다.
두 번째는 펭귄과 아이들이 가져오는 유치함이다. 영화 <그것>이 신선함으로 무장한 공포영화라지만 결국 공포를 주는 존재가 광대라는 점에서 우스꽝스러운 느낌이 강한 거처럼 <펭귄 하이웨이> 역시 펭귄과 아이들 때문에 유치한 느낌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보여주는 판타지에서 신비함과 웅장함을 느끼기 힘들다. 진행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율을 느껴야 될 장면이 펭귄에 의해 오히려 웃음이 나오게 된다.
세 번째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TV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진행이다. 일본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극의 진행을 TV 애니메이션보다는 영화에 가깝게 진행시킨다. 이런 선택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 않는 일반 관객도 극장에서 즐길만한 재미를 준다. 반면 이 작품은 TV 애니메이션의 느낌이 강하다. 특히 진지해야 될 장면에서도 웃음을 추구하는 장면이나 '누나'가 아오야마를 대하는 약간은 오글거리는 태도-특히 대화 끝마다 '소년'을 집어넣는-는 TV 애니메이션이 주는 재미를 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 보니 기존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즐기던 관객들에게는 낯선 전개를 선보인다.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지만 극장 개봉을 목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것이라면 그에 맞는 작업이 이뤄졌어야 했다고 본다. 장점은 충분하지만 그 장점이 단점을 덮을 만큼 강렬하지는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p.s. 매번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시는 브런치 무비패스에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