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리고 세상 - 8. <백엔의 사랑>
현 시대의 ‘청춘’들을 다룬 작품들은 너무나 무섭다. 마치 ‘재난영화’처럼 그들을 대하는 현실이 너무나 막막하고 냉혹하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몇 가지 사실의 나열만으로 답답하고 숨이 가쁜 상황의 연출이 가능하며 젊은 세대의 관객들에겐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일기장을 본 거 같은 기분을 주니 공감을 사기가 쉽다. 이런 ‘쉽다’는 점 때문에 몇몇 작품들은 ‘쉽게’ 이들의 고민을 드러내고 소비하며 실패한다. 이 작품 <벡엔의 사랑>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N포세대에 관한 영화 중 꽤나 실험적이면서 공감이 가게 이들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이다.
주인공 이치코는 32살의 N포세대다. 연애도, 꿈도, 심지어 직장도 포기한 백수. 대학 졸업 후 쭉 도시락 집을 하는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그녀가 하는 일은 어린 조카랑 오락을 하며 놀아주는 일 뿐.(심지어 부모님 일도 도와주지 않는다.) 게으른 누나와 별 거 없는데 자기한테 뭐라 하는 동생 사이인 두 자매는 어느 날 크게 싸우고 화가 난 이치코는 집을 나가 매일 가던 백엔샵을 향한다. 그곳에서 아르바이트 전단지를 보고 일하기로 결정한 이치코.
그런데 이 백엔샵 주변의 사람들, 정말 독특하다. 우울증에 걸려 자학이 심한 점장, 말이 많고 그녀에게 치근덕거리는 늙은 직장동료, 전 아르바이트생으로 돈을 훔치다 해고당한,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을 훔쳐가는 사차원 노숙자, 그리고 바나나만을 사가는 복싱선수 카노. 이치코는 매일 바나나를 사가는 카노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말 한 마디 없는 데이트를 한다. 마치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살아와 할 말이 없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두 사람. 그리고 카노는 이치코에게 자신의 시합을 보러 와 달라 부탁한다. 알고 보니 카노는 프로 입성을 꿈꾸는 복서로 나이가 꽉 차 마지막 프로 도전을 앞두고 있었던 것. 하지만 마지막 도전에 실패하면서 그는 복싱을 포기하게 된다.
어찌된 일인지 카노가 포기한 복싱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치코. <소라닌>처럼 꿈을 이루지 못한 남자친구의 숙원을 풀어주기 위해서일까? 어쩌면 시작은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복싱’이란 상당히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 이치코가 ‘처음’ 취업한 곳은 백엔샵이지만 처음으로 ‘무언가를 꼭 이뤄내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낸 건 복싱이기 때문이다. 일이란 것이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꿈이란 건 내가 ‘누구인가’를 증명해내기 위해서 달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일에는 열정이 없지만(생각해 보라. 누구에게나 하기 싫은 일이나 공부를 하기 위해 직장이나 학교에 가는 건 고통스럽기만 하다.) 꿈에는 있다. 이 순간 이치코에게 백엔샵에서 돈을 버는 일은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는 도시락을 노숙자에게 주고 뭐라고 하는 점장을 혼내준다. 누군가에게 당하는 것, 억압받는 것은 ‘사슬’이 엮여있기 때문이다. 그 사슬이었던 돈이 꿈을 찾으면서 끝난 순간, 더 이상 점장은 그녀에게 무서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야구선수가 홈런 하나를 치기 위해서는 몇 만 번의 배트를 휘두르는 연습이 필요하다. 사회라는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연습을 위해서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열정은 어디서 오나?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 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꿈만 있으면 열정이 따라오나? 아니다. 자신을 열심히 살아가게 하는 것, 그 원동력이 되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사랑법은 한 노답녀가 자신과 비슷한 노답남을 사랑하는 ‘사랑’이 아닌 한 노답녀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잔혹할 정도로 주인공에게 세상의 맛을 보여준다. 노숙자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을 주었다고 점장에게 혼나고, 말만 많은 줄 알았던 동료 점원에게 강간을 당하며, 진정한 사랑인 줄 알았던 아마추어 복서는 두부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더니 같은 직장의 여자와 눈이 맞아 떠나갔다.
그래서 링 위에서 이치코의 ‘투혼’이 그 무엇보다 빛이 난다. 권투라는 스포츠가 그렇다. 사각의 링 위에 오직 나와 상대만이 서 있다. 상대는 날 미친 듯이 때린다. 맞기 싫으면 쓰러져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대신 난 패배자로 기록된다. 패자가 되기 싫기에, 어떻게든 이기고 싶기에 링 위에서 복서는 이를 악물고 버틴다. 이 장면이 유독 처절하지만 빛이 났던 이유는 단 한 순간도 이치코 역의 안도 사쿠라가 ‘여배우’로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삶에 대한 의욕도, 배움도 전혀 없는 N포세대 중의 N포세대의 모습을 선보인 그녀의 연기는 유독 돋보인다. 이런 캐릭터와의 동화가 작품이 가진 색깔을 더욱 진하게 만들어주었다. 초반에 흥미를 보였던 작품들이 뒤에 가서 망가지는 이유 중 하나는 결국 배우가 배우로 남고 싶어 하기에 ‘리얼’을 다루면서 ‘실제’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도 사쿠라는 완전한 이치코가 되어서 그 쓰라린 패배마저 껴안는다. 그래, 난 졌어, 하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봤잖아. 세상이 너무 강한 거지, 내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니야 라는 젊음의 모습 그 자체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N포세대라 흔히 일컫는 청춘의 모습에 대해 ‘위험한 착각’을 하게 할 요소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N포세대와 비슷한 말이 일본의 사토리 세대인데 이 두 가지가 완전히 일치하는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포기하는 반면, 일본은 경쟁을 하지 않기 위해 경쟁을 포기하는 세대를 사토리 세대라 부르기 때문이다. 헌데 이 일본의 사토리 세대를 단순히 ‘경쟁을 싫어하는 나약한 세대’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자. 현 대학생들은 예전 세대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극한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교육에 투입하지만 투자대비 그 산출은 정말 보잘 것 없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역시 다를 바가 없다. <예고범>이라는 영화를 보면 한때 대한민국에서 문제가 되었던 ‘파견법’이라는 것이 일본에서 얼마나 악용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비정규직, 하청업체, 계약직, 파견직 근로자, 인턴 등등 윗대가리들은 외국의 제도를 들여와 나쁜 쪽으로 이용해 먹으며 적은 금액으로 고급 인력을 부려먹는다. 이때 이들이 근거랍시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이치코의 ‘아픔’은 그녀가 버려두었던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지 ‘저것 봐,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너희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는 답을 내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 세상으로 나온 여자의 이야기를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기 위해 노력한 한 노답녀의 역경기로 포장하는 건 과대포장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