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대한 역발상은 그 결과에 상관없이 꽤나 흥미로운 소재를 던져준다. 예를 들어 집을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이 아닌 무섭고 두려운 공간으로 묘사하는 순간 하우스 호러라는 장르가 탄생한 거처럼 말이다. 감옥이라는 공간은 강압, 격리, 폭력의 어두운 이미지 또는 수감자들 사이의 우정, 억압에 대한 탈출의 날갯짓, 가끔 스릴러 장르에서는 주인공이 누군가의 모략에 의해 억울하게 갇혀 있는 공간으로 묘사되었다.
이런 감옥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구조다.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판옵티콘을 생각해 보라. 감옥이 구조를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범죄자들을 감시하고 격리하는데 있다. 간수는 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동시에 그들보다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주어야 한다. 판옵티콘은 원형으로 배치된 감옥에서 중앙 감시탑 하나를 통해 모두를 감시하는 효율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탑 위의 ‘그들을 바라보는 눈’을 통해 계급적 우월함, 즉, 구조를 통한 계급을 강조한다.
헌데 이 영화 <프리즌>은 이런 구조의 계급을 완전 박살내 버린다. <프리즌>이 신선한 이유는 하나다. 감옥이라는 공간이 가진 상징성을 아예 부정하기 때문이다. 익호를 필두로 한 죄수 무리들은 밤이면 감방을 나와 범죄를 저지른다. 그들을 격리시키고 계도시켜야할 교도소가 되러 ‘범죄의 온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박사가 일을 물어오면 익호는 교도소 내에서 멤버들을 모은다. 다들 범죄를 저질러 온 놈들이기 때문에 범죄재능(?)이 출중하다. 이들은 간수들의 묵인과 협조 하에 차를 타고, 사복을 입고 나가 범죄를 저지른다. 그리고 여유롭게 귀환.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건 ‘교도소 내의 범죄자들이 몰래 나와 범죄를 저지른다’는 문구 하나를 설정으로 가져왔을 뿐인데 이것이 교도소라는 공간이 가지는 역설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범죄자들을 수감한 곳이기에 완전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곳. 가장 나쁜 놈들이 많이 모여 있지만 가장 의심을 사지 않는 곳이 감옥이다. 참으로 모순적인 공간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서 영화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형사 송유건을 감방으로 집어넣는다. 공간의 의미가 훼손된 이상 원래의 ‘눈높이’(위에서 바라보는)로는 그들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잠입수사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유건은 완전한 그들이 된다. 욕을 내뱉고 사람을 때리며 잔악한 행동을 한다. 영화에서는 이를 익호를 잡기 위한 행동으로 보여주지만 난 이것이 형사라는 직업이 가진 치부라는 생각이 든다.
<배트맨 대 슈퍼맨>을 생각해 보라. 이 작품에서 배트맨은 슈퍼맨을 마치 ‘괴물’처럼 생각한다. 그가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을 이해할 수 없고 선한 마음을 버리면 그가 상대해 왔던 악당들처럼 행동할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형사란 직업은 범죄자를 잡아들이는데 그들에게 이런 권한을 준 건 ‘공권력’이다. 어떠한 정의나 사명에 의한 것이 아닌 하나의 권력이 주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헌데 이 권력이 없어진 형사는-그러니까 감옥에 갇힌 유건은- 대체 어떤 수로 익호를 잡아야만 하나. 형사는 그 자체가 정의의 수호자가 아닌 경찰이라는 직위체계 속에서 수호자라는 임무와 권위를 받게 된 것이다. 이게 사라지니 유건에게 남은 건 그들과 같은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눈에 들기 위해 폭력을 행한다. 결말부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과격할 정도의 폭력은 결국 형사란 직업이 가진 권한이 사라졌을 때, 범인을 잡기 위해 그들과 같아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프리즌>은 소재적인 면에서는 참 돋보이는 영화다. 하지만 영화 자체의 재미, 그리고 완성도는 아쉽다. 색다른 소재를 시도하다 보니 선행된 작품들이 없었고 장르적 쾌감에 의존한 날것의 느낌밖에 낼 수 없었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다. 소재는 계속 닦고 또 닦아야만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독특한 소재를 하나 던져 주었고, 이제 이 소재들이 날카롭게 닦일 일만 남았다. <더 퍼지>처럼 소재는 독특하나 완성도에서 아쉬움을 보인 작품들은 그 소재를 통한 이야기가 점점 더 발달되어 갈수록 큰 재미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보여준 소재의 독특함, 감옥이라는 공간이 가진 구조의 역설을 통해 더 재미있는 작품이 만들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