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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빙> -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


반전 영화의 대명사하면 흔히들 <식스 센스>와 <유주얼 서스펙트>를 생각할 것이다. 이 두 영화만큼 반전을 임팩트 있게 나타낸 영화는 드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들 못지않게 반전으로 유명한 영화가 있다. 바로 <와일드 씽>이다. 어? 반전으로 유명하다면 왜 이 영화의 반전은 잘 알려지지 않은 걸까? 그 이유는 영화에 반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반전으로 유명한 이유가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너무 많이 보여줘서다. 이런 영화의 형식은 지나친 반전소모로 오히려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해빙>은 어느 순간부터 ‘반전 강박증’에 빠진 한국영화계를 보여주는 아쉬운 작품이었다.

영화는 한강 다리에서 떠오른 목 없는 시신을 보여주며 불안한 출발을 알린다. 버스를 타고 가는 주인공 승훈. 그를 바라보는 노인 경환, 그리고 공사판이 가득한 도시. 작품은 ‘무언가 일어난다’는 불안감을 가득 안고 있다. 승훈은 잘 나가는 의사였으나 병원이 망하면서 한때 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했던 이 도시의 병원에 계약직 월급 의사로 오게 된다. 별거 중인 부인은 신경이 잔뜩 날카로워져 있고 철없는 아들은 아버지를 앞에 두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린다. 내시경 손님이 대부분인 이 병원에서 그는 자신이 방을 얻어 사는 주인집 남자 성근의 아버지인 정노인의 내시경을 봐준다. 수면내시경 후 잠꼬대를 하는 정노인. 그의 입에서는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해빙>은 두 가지 시점에서 긴장감을 가져온다. 첫 번째는 장소다. 배경이 되는 공간은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도시이며 이 도시는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는 듯 재개발이 한창이다. 이런 도시에서 한 외국인 여자가 실종되었고, 성근의 첫 번째 아내 역시 외국인이고 도망갔다고 한다. 성근의 아버지는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승훈은 그들이 자신의 집주인, 더군다나 아랫집이라는 점에서 불안감을 느낀다. 그것도 하필이면 정육점, 칼을 아주 잘 쓰는 정육점이다.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도시(화성연쇄살인사건)+정육점이 주는 으스스한 분위기는 그저 주인공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약간의 음악을 추가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두 번째는 주인공의 처지와 살인사건이다. 승훈은 돈도, 직장도, 가족도 다 파탄 난 가장이다. 그의 심리는 극에서 나타나지는 않지만 극도로 불안하다는 것을 처지를 보고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아래층 부자가 살인사건의 용의자일 수 있다는 사실은 그를 더 극한의 공포로 밀어 넣는다. 이는 주인공과 심리적으로 동화된 이들에게는 상당한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 신분계층에 있어 바닥으로 떨어져 가는 이에게 갑작스럽게 심리적인 압박이 다가온 것이다. 살인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화살이 자신의 주변을 향한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견디기 힘든 심리적 압박이 다가오면서 분열된 증세를 겪는 듯한 정신의 방향을 작품은 뚝뚝 끊기는 거친 편집과 꿈, 환상, 현실의 어지러운 퍼즐로 펼쳐놓는다.

이런 점만 보면 <해빙>은 참 잘 만들어진 심리 스릴러라는 생각이 든다.(마치 히치콕이나 드 팔마의 영화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근 한국 스릴러들이 보여주는 ‘문제점’을 이 작품도 똑같이 노출시킨다. 바로 ‘반전 강박증’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반전을 푸는 방법은 마치 히치콕의 <싸이코> 같다. 친절하다.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준다. 앞서 정신적인 분열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던 편집을 배신하듯 예의바른 서비스 센터 직원처럼 하나하나 가르쳐준다. <싸이코>와 <해빙>은 시대가 다르다. 훨씬 세련되게 반전을 나타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 왜 이런 방식을 택했는지 아쉽다. 

차라리 여기서 반전이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이어진 두 번째 반전은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굳이 필요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전혀 놀라울 거 하나 없는 반전이었다. 차라리 두 반전 중 하나만 택해서 더 심도 있게 다뤘더라면 결말의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았나 싶다. 또 두 개의 반전을 동시에 선보이려다 보니 편집이 너무나 지저분했다. 반전영화의 묘미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편집을 통해서 이미 반전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무엇을 반전으로 보여줄지 다 알려주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가 보여주는 ‘이중 반전’은 전혀 신선한 맛이 없다.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고, 한국영화의 반전 강박증, 즉, 너무 잦은 방귀 때문에 이 영화는 똥을 싸고야 말았다. 

개인적으로 <해빙>은 과거 이수연 감독의 작품 <4인용 식탁>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감정의 밀도는 상당하다. 이 밀도 덕분인지 약간의 분위기 조성만으로 상당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몰입감은 떨어진다. 공포, 스릴러라는 장르를 가져왔다면 몰입감이 필수다. 헌데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방법을 모르니 ‘와, 정말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구나’라는 건 알겠는데 막상 재미는 없다. <해빙> 역시 마찬가지다. 긴장감은 있지만 몰입감은 없다. 분위기는 조성되는데 분위기가 느껴지는 알맹이는 와 닿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지루하고 예측 가능한 반전은 아쉬움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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