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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으면 싫다고 말하세요

잡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마치 곤충처럼 어떠한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는 모래로 이루어진 마을에 갇혀 지내다 결국 그 환경에 적응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헌데 난 이 작품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 남자는 남편을 잃은 과부, 그 과부의 육감적인 매력에 빠져들었다. 적어도 그 여자한테 호감을 느꼈던 것이다. 만약 그 과부에게 어떠한 호감도 느끼지 않았다면, 그는 매일 모래를 퍼내야 하는 그 극한의 공간에 적응할 수 있었을까?


사람에게는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무언가를 향한 마음이다.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 이런 마음은 더하다. 한 번 그 사람에게 안 좋은 감정을 느낀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좋게 봐주지 않는다. 설령 좋게 보기 시작해도 그 사람이 실수 하나라도 한다면 ‘역시’ 라는 말과 함께 다시 비판적인 입장으로 돌아서게 된다. 그 사람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는 사람이라도, 나에게 좋은 일을 해주어도 아무 소용없다.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다. 싫으면 싫은 거다. 


최근 유행하는 말 중에 하나가 문지기, 문빠, 문슬람 등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롱이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의 팬클럽을 해산시켜야 된다고 말했고 청문회 중 야당 의원들은 자신들에게 온 문자폭탄을 보여주었고 심지어 이언주 국민의당 원내 수석부대표는 국민들이 보낸 문자를 ‘문자폭탄’,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발언하였다. 그리고 언론들은 앞다투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 ‘심하다’, ‘너무 과하다’라며 비난의 프레임을 씌운다.


소설 <무중력 증후군>의 기자 퓰리처는 ‘무중력 증후군’이라는 말을 만들어 프레임을 조작한다. 언론의 무서운 점은 자기들이 단어를 만들고 그 단어가 지금 유행하고 있는 말인 양 떠든 다음 일정한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노사모를 향했던 거처럼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향한다. 그들에게 문빠, 문지기, 문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다음, 너희들이 극성을 떨어서 한국 정치가 망하게 생겼다고 구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맞춰서 몇몇 네티즌들은 말한다. 마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야당의 몇몇 의원들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제2의 국정농단을 일으킬 수 있으며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이런 말을 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행동 하나하나를 꼬집는다. 아주 작은 일에 큰 의미부여를 하며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이미 일어난 거처럼, 밝혀지지 않은 가설이 마치 진실인 거처럼 말한다. 난 그런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라고.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문제는 간단하다. 그 사람이 싫으면 싫은 것이다. 이 문제는 답이 없다. 내 마음이 그냥 싫다는데 무슨 상관이냐. 헌데 이 싫은 마음을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뜨리며 그 사람에게 이유 없는 비난을 가하는 행태를 보자면 참 아니꼽다. 야당의 몇몇 의원들이야 그럴 수 있다. 저들에게는 답이 없고 당장 다음 총선 때 몇 석이나 차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유한국당은 9년 동안 그들이 만든 이 개판에 대해 어떠한 반성이나 사과도 없으며 이는 ‘바른’을 앞에 붙인 바른정당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나 자유한국당이 보여주었던 더러운 정치에서 조금 나을 뿐 지난 9년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없는 게 아니다. 국민의당은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해주어야 하지만 어떻게든 비판을 위한 말장난만 반복하며 큰 기대를 품었던 국민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이런 이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어떻게든 현 정권을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깎아내리는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더러운 똥통에 빠져 사방으로 똥물을 튀겨 사람들이 정치에 환멸감을 느끼게 만들겠다는 수이다. 문제는 이 더러운 똥물에 맞아 이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욕하며 이에 대해 나름 자기들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다.


난 이들에게 정말 말하고 싶다. 저기요,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하세요. 싫다고 해도 다 이해해요. 저도 놀기 싫은 사람이 친하게 지내자고 달라붙으면 이유 없이 싫어요. 그리고 그런 이유로 저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 알아요. 그러니까 그냥 싫다고 해요. 문빠들 때문에 싫다느니, 정치를 못해서 싫다느니 그런 주장 하지 마세요. 어차피 문빠가 없어도, 정치를 잘해도 당신은 싫어할 거잖아요. 이유 없이 싫어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그냥 개인의 감정이고 생각일 뿐이다. 홍준표를 좋아해도, 유승민을 좋아해도 이해한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부분이 있을 테니까. 헌데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한다고 말도 안 되는 말을 들먹인다는 것은 모함 밖에 되지 않는다. 


네티즌들뿐만이 아니다.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난 연예계 종사자들 못지않게 기자들을 정말 싫어한다. 가끔 몇몇 기자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분은 다른 사람이랑 아이디를 공유하나? 자기가 썼던 기사를 부정하는 말을 다른 기사에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두 대통령에 대한 반응이 다를까? 왜 민주당이 야당 시절 국정이 급한데 야당이 비협조적이라 인사가 이뤄지지 못한다고 기사를 쓴 기자가 이번에는 반대의 시선으로 기사를 쓰는 것일까? 기자들은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사란 건 하나의 사실을 전달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종합적인 면에서 사실을 가려내는 것이 기자가 할 일이다. 당신들이 그렇게 기사를 쓰고 싶다면 과거 김현회 축구 칼럼니스트가 박주영의 모나코 영주권 문제에 대해 썼을 때처럼 기사를 쓰길 바란다. ‘그래, 나 배 아파서 이 글 쓴다’처럼 ‘그래, 나 지금 정권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이렇게 쓴다’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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