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함과 무기력함

학창 시절 누구나 숙제를 미루다 끝내지 못해 혼난 경험이 있을 겁니다. 특히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면 처음에는 놀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가 끝날 즈음이 되면 미뤄놨던 숙제를 어떻게 해야 되나 걱정했던 경험은 저 혼자만의 것은 아닐 겁니다. 중학생 시절 다니던 학원은 숙제를 정말 많이 내주는 학원이었습니다. 문제 푸는 속도가 느렸던 저에게는 매 주가 고난이었고 한 번은 반에서 한 친구와 ‘너희 둘만 숙제를 너무 안 해온다’는 이유로 혼난 부끄러운 경험이 있습니다.


잠을 줄이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놀지 않으면서 숙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들었던 생각이 ‘나는 너무 무력하다’였습니다. 무력(無力)은 신체적인 힘이나 개인적인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걸 의미합니다. 당시 저는 외고 진학반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저와 함께 외고 진학을 노리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제 능력은 같은 책상에 앉은 애들보다 훨씬 못했습니다. 학교 시험과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하는 수업이 제겐 버거웠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주변 친구들에게 무기력(無氣力)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무기력은 주로 기력이 부족하거나 없을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무력이 무언가를 해낼 능력 자체가 없거나 부족하다면 무기력은 그럴 능력은 있지만 해내고자 하는 정신과 육체의 힘이 없는 걸 의미합니다. 과제를 안 해오거나 대충 해오고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나도 안 했다며 전날 같이 밤을 새우자는 모습이 보기 좋진 않았습니다.


그 친구들을 보면 취업 준비나 아르바이트 때문에 과제를 할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시험공부도 시간을 나눠 준비하면 충분히 잘 볼 수 있는 걸 무리하게 몸을 축낸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대학은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모입니다. 때문에 누구는 쉽게 해낼 수 있고 누구에게는 너무 어려운 과제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교수님들이 학생의 수준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죠. 결국 놀고 싶은 욕심에 주어진 과제를 수행할 힘이 없는 무기력함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무기력도 무력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놀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무기력의 이미지는 ‘하기 싫다’입니다. 누구나 놀고 싶고 쉬고 싶습니다. 그래서 할 일을 미루고 미루다 보니 쌓이게 됩니다.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 무기력함 속에는 무력함이 숨어있다고 합니다. 한 수업에서 교수님이 녹취한 내용을 A4 용지 한 장 반 분량으로 요약해 오라는 과제를 내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극찬을 받았던 학생은 3일 동안 10시간을 그 과제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과제를 하기 싫어서 대충 끝냈을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과연 내가 저 애처럼 3일 동안 10시간을 투자해서 저만한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무력함이 숨어있습니다. 과제를 미루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말이죠. 그래서 기간이 임박했을 때 과제를 수행합니다. 아무리 해도 차이가 없다면 시간을 줄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겁니다.


무력하다는 생각은 절망을 이끌어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보다 높게 올라설 수 없다면 살아갈 동력을 잃게 되죠. 어쩌면 이런 생각을 가리기 좋은 가림막이 ‘기’ 한 글자가 붙은 무기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창 시절 우리는 ‘내가 공부만 하면 너보다 잘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친구들을 자주 봐 왔습니다. 오기와 욕심에 무기력을 버리고 공부 한 번 할 법도 하건만 매 시험마다 하지 않는 그런 친구를 말이죠.


그 친구들의 마음속에는 무력함이 숨어있습니다. 어차피 해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계속 시간을 미루고 죄책감을 덜기 위해 시험 전날 벼락치기로 공부합니다. 그러다 이기면 기분이 좋고 설령 지더라도 하루만 공부했다는 변명이 가능하게 말입니다. 애초에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무기력을 달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흔히 좋은 교사는 학생의 근접 발달 영역을 키워주는 교사라고 합니다.


구소련의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가 제시한 근접 발달 영역은 스스로 다룰 수 있는 지적 발달 수준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풀 수 있는 지적 발달 수준 차이를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약간의 도움을 주면 풀 수 있는 수준의 학습을 지도하는 걸 의미합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단계의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던 거처럼 능력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하면 사람은 무기력증에 빠집니다. 자신이 무력한 걸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갈수록 커지는 빈부격차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이런 무력함 때문에 벌어지는 무기력함 때문입니다. 근접 발달 영역을 벗어난 높은 단계의 요구나 앞선 단계로 나아가고 싶은 욕구의 충족 불가는 더 많은 무기력함을 느끼게 만듭니다.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는 단계 설정이 학교는 물론 사회에서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무력함은 무기력함으로 이어집니다. 만약 무기력함을 느낀다면 왜 자신이 무기력한지 알아야 합니다.


그저 내일은 기운이 날 거야, 오늘은 조금 피곤할 뿐이야 라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기보다는 무력함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내가 속한 집단이, 나아가는 방향이 좌절을 느끼게 하거나 우물 안에 갇혀있단 느낌을 준다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인 없는 슬픔이 없듯 이유 없이 다가오는 무기력함은 없습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근접 발달 영역을 설정한 순간 삶의 활력은 다시 찾아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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