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욕심

'평강공주 콤플렉스'와 있는 그대로의 사랑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랑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고구려의 평강왕은 어려서부터 워낙 잘 우는 공주한테 “자꾸 울면 바보 온달한테 시집보낸다.”고 말했습니다. 혼사를 올릴 나이가 된 공주는 귀족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듣던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가겠다며 궁 밖으로 나가죠. 바보 온달을 만난 평강공주는 궁전에서 가지고 나온 패물을 팔아 그 돈으로 온달을 공부시키고 무예를 가르칩니다.


후에 평강왕은 사냥 대회에서 우승한 늠름한 젊은이가 온달이란 걸 알고 놀랍니다. 온달은 장군이 되어 큰 공을 세웠고 벼슬길에 오릅니다. 이 이야기는 진실 된 사랑은 상대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순수한 온달과 온화한 평강공주의 만남은 여전히 사랑받는 이야기의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강공주를 꿈꾸는 ‘평강공주 콤플렉스’는 사랑에 큰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부부는 ‘평강공주 콤플렉스’ 때문에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힘도 북돋아 주고 공부도 시키지만 남편은 그런 아내의 마음을 강요로 받아들이고 힘들어 합니다. 힘든 건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만 하면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러지 않으니 답답한 거죠. 전문가는 이 부부에 대해 아내가 ‘평강공주 콤플렉스’라 말합니다.


믿음과 노력이 있으면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가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다면 세상에 힘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있고 노력으로 채울 수 없는 재능이란 영역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평강공주 같이 지극한 사랑과 정성만 있다면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란 믿음은 상대는 물론 자기 자신도 힘들게 만듭니다. 이건 사랑의 욕심입니다.


사랑의 욕심은 상대의 변화를 원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우울했던 사람이 밝아지고 용기를 얻는 모습을 원하죠.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사랑을 통한 긍정적인 변화를 그려냅니다. 냉소적인 독설가 멜빈은 캐롤을 만난 뒤 점점 변하기 시작합니다. 주변 사람에게 친절해지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당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요)’라는 영화 속 명대사는 사랑을 통한 긍정적인 변화를 그려냅니다.


로맨스 영화의 변화는 내부에서 비롯됩니다. 외부의 강요와 가르침에 의해 깨달음을 얻지 않습니다. 사건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통해 변화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상대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나에게 맞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건 사랑의 욕심입니다. 우리는 그 감정을 정성과 관심으로 포장해 강요합니다. 자신의 꿈을 당신이 꾸어야 될 미래라고 말입니다.


한 영화모임에서 사랑에 관해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분이 자신이 본 로맨스 영화 중 가장 사랑을 잘 표현한 영화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뽑았습니다. 영화는 알코올 중독자와 창녀의 사랑을 다룹니다. 우연한 인연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 두 사람은 벤이 죽기 전까지 사랑을 이어갑니다. 그 분은 이 영화를 보면서 단 한 순간도 서로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않은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벤과 사라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서로의 잘못된 점을 고치고 새롭게 시작하자 말할 수 있었습니다. 사라가 창녀 일을 그만두고 벤이 술을 끊었다면 그들에게 해피엔딩이 펼쳐졌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두 사람은 한 순간도 다른 모습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사랑해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그 사람의 진실 된 모습일 테니까요.


우리는 생활 속에서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는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결국 가면은 벗겨지고 맙니다. 그 가면이 벗겨진 순간 실망하고 변화를 요구한다면 이는 자신을 위한 배려와 진실 된 사랑이 아닌 욕심입니다.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다 사랑할 수 있는, 단점도 다 껴안을 수 있는 마음이 진실된 사랑의 감정이 아닐까요.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잘나가는 인권 변호사 마크 다시는 브리짓 존스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고백합니다. 골초에 음주를 즐기고 매일 살과의 전쟁을 펼치는 브리짓은 그 어떠한 모습도 상관없다는 고백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지금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세요. 그 사람은 그 자체로 당신을 빛내줄 소중한 사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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