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주는 사람, 사랑을 요구하는 사람
<8일째 매미>, <종이 달>의 작가 가쿠다 미쓰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사랑이 뭘까>는 한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테루코는 한 파티에서 혼자 있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준 마모루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녀는 자신처럼 외톨이인 마모루가 마음에 듭니다. 이후 마모루와 만남을 이어가는 테루코는 서로 사랑한다는 말만 하지 않을 뿐 연인관계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모루의 행동은 어딘가 이상합니다.
마모루는 스미레라는 여성을 테루코에게 소개해 주고 스미레는 너처럼 나한테 집착하지 않아 좋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며칠을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기도 합니다. 그래도 가끔씩 나타나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마모루에게 테루코는 마음을 놓지 못합니다. 다정하다는 정이 많다는 뜻을 지닙니다. 정(情)은 마음의 작용, 사랑, 정성 등 긍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나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길 바라는 사람의 마음은 다정한 사람에게 끌립니다.
다정함은 현대사회에 있어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사회가 더 분업화되고 세분화되면서 공통된 문제와 감정을 지닌 이들이 줄어들게 되었죠.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같은 취미와 흥미를 지닌 이들과 더 폭넓게 만날 수 있다고 하지만 따뜻한 감정이나 단체생활에서 오는 동질감을 느끼기 힘듭니다.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는 사이비 종교에 의존하는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건 이런 구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 앞날도 챙기기 힘든 현대의 청춘들에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써야 하는 돈과 시간은 사치와 낭비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다정한 사람,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마음이 있는 거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엽니다. 테루코 역시 그러합니다. 마모루에 푹 빠진 그녀는 사랑에만 신경 쓰다가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테루코는 친구 요코와 그녀를 좋아하는 나카무라 사이의 관계가 마모루와 자신과 비슷하다 여깁니다. 요코는 나카무라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그녀에게 헌신한다는 걸 알지만 좋아한다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나카무라를 자신이 필요할 때 부르고 지루할 때 돌려보내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는 마모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테루코는 마모루를 다정한 사람이라 여기지만 사실 마모루는 요코처럼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닐지 모릅니다.
어리광은 어른에게 귀여움을 받거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어린아이의 말씨나 태도로 버릇없이 구는 행동을 말합니다. 어린아이의 귀염에 어른이 다소 버릇없는 행동도 눈감아 주는 거처럼 내 배려 없는 행동을 타인이 받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마모루의 행동에는 테루코를 향한 배려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공허하고 외로울 때만 테루코를 찾아오고 자신이 좋아하는 스미레가 없는 자리에는 테루코를 만나러 가지 않습니다.
다정함과 어리광의 공통점은 친근합니다. 오래된 친구처럼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상대에게 접근합니다. 무슨 이야기도 들어줄 거처럼 미소를 짓고 자신의 속마음을 남에게 보여주죠. 차이라면 다정한 사람은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시간을 써 달라고, 감정을 받아주고 인내해달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어리광을 부리는 사람에게는 목적이 있습니다. 나를 위해 상대가 희생해주었으면 합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부모가 상처를 받던, 자신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던 상관없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떼를 쓰고 매달립니다. 성인의 어리광은 감정에 호소합니다. 내가 힘이 드니까 받아달라고, 나를 도와달라고 말합니다. 친근하게 접근하지만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이 끝나면 사라집니다. 또 다른 목적이 필요할 때까지 상대를 찾지 않습니다. 마치 마모루나 요코처럼 말이죠.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과 관계에 있어 어리광을 부리는 사람을 곁에 둡니다. 조금이라도 내게 관심을 보이고 사랑을 줄 사람은 그만큼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 감정이 다정함이 아닌 어리광이란 걸 알고, 목적이 끝나면 떠날 것이란 걸 알고 있음에도 행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합니다. 마음이란 게 그렇습니다. 결국에는 상처 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상처를 감당할 수 있다 여기고 당장의 행복을 찾습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목적을 품고 있고 어리광을 부리며 요구합니다. 자신의 감정이 상대를 얼마나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줄지 생각하지 않고 만족을 느끼면 떠나고 철새처럼 다시 돌아옵니다. 다정한 사람은 요구하지 않습니다. 정이 많아서 나눠주고 싶기 때문이죠. 어리광을 부리는 사람은 자신이 어리기에 남에게 매달리고 싶어 합니다.
크고 단단한 나무라도 상처가 쌓이면 무너집니다. 어리광을 부리는 사람은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느라 자신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거처럼 자신을 위해 살아줄 것을 강요합니다. 그 강요에 넘어가다 보면 스스로를 망치게 됩니다. 다정함과 어리광은 구분해야 하는 감정입니다. 어린아이에게 필요한 건 성장입니다. 젓가락질 못하는 아이에게는 밥을 먹여주는 게 아닌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다정함을 이유로 어리광을 부리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성숙해져야 합니다. 자신이 성숙해지면 다정함과 어리광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아이가 귀엽다고 말을 계속 들어주면 그 아이는 버릇이 없어집니다. 버릇없는 아이는 남에게 상처를 주고 상대를 굴복시키려 합니다. 짧은 인생을 남을 위해 허비한다면 그 안에 내 삶은 없습니다. 사랑을 주고 싶다면 나에게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세요. 그게 다정함과 어리광의 차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