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열심히 시키지 마세요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열심히'


특별한 경험 중 하나를 뽑자면 교생실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교에 가서 한 달 동안 아이들과 함께하며 즐거운 추억을 쌓았습니다. 그 시간 동안 좋은 기억도 있고 나쁜 기억도 있지만 특별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었습니다. 교생실습을 나가기 전 교생실습 관련 강연에서 있던 일입니다.


부속학교의 선생님이 오셔서 교생실습에 대해 설명하던 중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생실습 가면 모의수업 앞두고 다들 몸살감기 한 번씩은 걸려요. 교생실습하면서 당연히 한 번쯤은 아파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사람이 아프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한 게, 그걸 당연하다 여기고 바꾸지 않는 게 제 입장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교생실습은 말 그대로 ‘실습’입니다. 추후 임용고시에 합격할 수 있는 예비교사에게 직접 수업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는 겁니다. 그 자리의 대가가 몸살감기라 볼 수 없습니다. 공짜로 가는 게 아닌 합당한 금액을 지불했으니 말이죠. 생각해 보면 우리 교육에서 ‘아픔’은 너무나 당연한 거처럼 들립니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선생님들은 말합니다. “시험기간이면 밤새서 공부 좀 해라” 아르바이트 중 가장 힘든 아르바이트가 야간 아르바이트입니다. 생활패턴이 완전히 바뀌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해가 뜰 때 눈을 뜨고 해가 질 때 잠을 청하게 생체리듬이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야간 아르바이트는 더 많은 돈을 줍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음 날 쉬게 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시험기간에 밤을 지새우기 위해 카페인이 들은 음료나 커피를 마시고 길게는 3일 가까이를 거의 잠을 자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노력이라 말합니다. 이 몸을 망치는 잘못된 버릇은 성인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대학교에 복학한 후 한 교육학 수업에서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학생은 중요한 자격시험을 위해 휴학 후 4년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합격을 눈앞에 두었던 시험은 건강문제로 접어야 했습니다. 이후 2년 가까이를 집에서 요양해야 했고 복학을 하고 보니 나이가 서른이 넘었다는 말을 꺼냈죠.


우리 몸은 의외로 정직하고 솔직합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휴식이 필요하면 쉬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불안과 강요는 이 외침을 무시합니다. 인생의 실패를 막는다 생각하고 몸의 실패를 택하는 겁니다. 몸이 건강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학교에서는 심어주지 않습니다. 공부를 못하면 패자가 된다는 가르침만 전해줄 뿐입니다.


밤을 지새우는 공부는 성인이 되고 취업을 하면 업무로 바뀝니다. 학교는 아파도 되지만 직장은 아파서도 안 됩니다. 더 강해지라는 게 아니라 더 버티라 말합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라며 몸과 정신이 피폐해지기를 강요합니다. 우리가 이를 따르는 건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망가진 건강은 돌아오기 힘듭니다. 이는 육체뿐만이 아닙니다. 정신이 망가지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합니다. 정상적인 이들이라면 질색을 할 행동에 몰두하는 건 더 자극적이고 강력한 유혹이 아니면 충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극과 극은 통하듯 더 강한 인내의 강요가 더 강한 자극을 부릅니다.


공부는 참 특이합니다. 운동이나 예체능은 재능이 없다고 판단하면 포기합니다. 그런데 공부는 다릅니다. 공부를 못하면 큰일이 일어나고 사회적으로 무능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을 못하는 학생이 오랜 시간 운동을 하면 남들보다 더 빨리 지치고 좌절과 무기력이라는 어두운 영역으로 빠져들 듯 공부에 재능이 없는 학생에게 이를 강요한다면 남들보다 빨리 망가지고 무너집니다.


공부에 재능이 부족하다면 스스로 하고 싶은 공부를 찾게 하거나 할 수 있는 만큼만 시키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 시간을 자신이 타고나거나 관심이 있는 재능을 키우는 데 사용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생산적인 활동입니다. 밤을 지새워 공부하고 건강과 맞바꾼 점수를 훈장처럼 여기는 미래가 더는 없었으면 합니다.


‘열심히’는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에, 그리고 직장에서의 ‘열심히’는 ‘어떤 일에 온 힘을 다하여 몸이 부서지도록’이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내 몸을 망치는 방법이 아닌 지키고 가꿀 수 있는 방법, 그것이 진정한 교육의 시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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