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人才)를 놓치는 인재(人災)

우리는 왜 '라떼'에 빠져 허우적거리나

며칠 전 커뮤니티에서 웃픈 글을 하나 보았습니다. 일본의 한 회사에서 직원 이직률이 높아 고민하던 중 방안으로 신입사원에게 멘토를 붙여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직률이 더 늘어나자 이번에는 애사심을 길러줄 생각으로 주말마다 야유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직률이 확 높아져서 또 다른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한때 국내에서 일본 취업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 일자리가 넘쳐난다는 게 이유였죠. 그런데 그때 즈음 일본에서 나온 문학이나 영화 등 예술작품은 사회현상으로 ‘블랙기업’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알고 보니 일본 젊은 층이 고용 불안에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일자리로 가기 싫어해 취업률이 낮았던 거였죠.


기업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그 기업의 문화를 만드는 건 사원입니다. 직장마다 업무에 있어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힘든 건 매한가지입니다. 함께 이겨내느냐, 이기지 못하고 떠나게 하느냐는 내부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분위기가 좋은 회사는 인재(人才)를 잡을 수 있지만 아닌 회사는 인재(人災)로 인해 놓치게 되죠.


일본에는 ‘사토리 세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태어난 이들을 일컫는 말로 이들은 현재 일본경제를 이끌 나잇대 입니다. 일본에서는 이 용어가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합니다 ‘사토리 세대들은 끈기가 없다’고 말하죠. 이전 세대가 직장에서 버티며 생활했던 반면 사토리 세대는 그러지 못한다는 겁니다.


사토리 세대의 뜻은 ‘깨달은 세대’란 의미입니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처럼 건강을 해쳐가며 일할 필요가 없다고 여깁니다. 과거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생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연구했던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확연한 답을 따르는 거죠. 바로 ‘행복’입니다. 사토리 세대는 우리나라의 N포 세대처럼 포기하는 세대지만 그 포기가 미래를 위한 포기가 아닙니다.


현재의 행복을 위한 포기죠. 적게 벌고 적게 소비하며, 소비를 해도 내가 좋아하는 거에 소비하자는 게 이들의 주의입니다. 우리나라의 젊은 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라떼는 말이지’라는 신조어는 ‘나 때는 말이지’라며 자신이 살던 시절을 강조하는 윗세대에 대해 비판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층은 N포 세대라는 말처럼 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답게 뛰어난 스펙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라떼’를 말하는 윗세대의 말은 쉽게 공감가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열심히 최선을 다해, 회사를 위해 일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 신입사원은 능력을 발휘하기 힘듭니다.


가장 머리가 뛰어날 2~30대 시기를 강압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지내는 겁니다. 회사는 집단입니다. 집단은 어디나 안정성을 추구합니다. 때문에 신입사원에게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대학과 국가는 4차 산업혁명에 맞춰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인재가 활동해야 할 기업은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합니다.


인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뜻하는 인재(人才)와 학식이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인재(人材)입니다. 후자에는 그 업무에 적합한 사람이란 뜻도 있습니다. 대학이 기르고자 하는 인재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대학마다 취업률을 중시하며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때문에 특별한 재주를 지닌 인재는 환영받지 못합니다. 대학은 인재를 발견하기 보다는 맞춤형 인재가 되어주길 바라며, 기업은 맞춤형 인재가 기업 내 시스템에 맞춰 나아가 주길 원합니다. 안정을 원하는 시스템에서 혁신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학과 기업이 변하지 않고 ‘왜’ 인재가 없느냐고 묻는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질문입니다.


구직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우리나라에 이렇게 일자리가 많았나 싶을 만큼 사람을 찾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중 오래 버티며 미래를 그려나갈 회사는 극소수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빅터 프랑클은 30년대 대공황 당시 절망에 빠진 실업자들에게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그 조언은 당장 실업자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순 없었지만 정신적인 안정을 줬습니다. 자원봉사나 영어공부 등을 하며 정신적인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비록 물질적으로는 충족될 수 없었지만 정신적인 만족을 통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현대의 직장인 역시 비싼 집값과 높은 물가로 평생을 빚을 갚으며 살아가야 하는 물질적인 빈곤에 빠져 있습니다.


물질적인 빈곤을 채우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정신적인 빈곤이라도 채워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나올 만큼 90년생은 이전 세대와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다른 걸 틀린 거로 생각하고 바꾸기를 바라기보다는 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인재(人才)를 키워내는 발걸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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