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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와 편혜영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조언

대학교 1학년 당시 빨리 작가가 되고 싶었다. 치기어린 마음에 당시 학교에서 가장 유명했던 교수한테 내가 쓴 작품들을 들고 찾아갔다. 작품도 보여드리고 조언도 구하고 싶어서였다. 그 교수도 내 소문(?)은 듣고 알아서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해 물어봤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글쓰기를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이 많지도 않았고 접근성도 떨어졌다. 한 작품을 10번 넘게 필사(筆寫)를 하면 문체를 확립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서 당시 좋아했던 편혜영 작가 글을 필사하고 있었다. 교수에게 필사를 하는 방법 말고도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하니 이렇게 답했다.


“야, 넌 헤밍웨이가 누구한테 글을 배웠다는 말 들은 적 있냐? 글은 자기가 자기 이야기를 쓰는 거야. 남한테 배우는 게 아니야.”


오! 당시에는 마음에 한 줄기 햇살이 내려온 기분이었다. 그래, 작가마다 문체가 다 다르고 생각도 다른데 필사는 무슨 필사냐. 책을 많이 읽어 다양한 지식을 얻고, 많은 글을 써서 자신만의 문체를 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군대에 갔고 돌아온 뒤 아는 교수가 많지 않아 그 교수 수업을 다시 듣게 되었다.


함께 식사를 하는데 누가 1학년 때 나와 비슷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교수가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적어도 한 책을 10번 넘게 필사를 해야 너만의 글을 쓸 수 있어.” 내가 1학년 때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래? 내가 그랬어? 기억이 안 난다.”


글은 공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좋은 글을 쓰는 건 그래서 힘든 일이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소설 열풍을 이끈 작가 ‘귀여니’의 경우 시대적인 흐름을 이끌 줄 아는 글을 썼지만, 지금 귀여니의 소설은 많은 이들에게 읽히지 않는다. 신춘문예 등 당선작들의 경우도 당시의 시대적 흐름 또는 심사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당선의 유무가 결정된다.


때문에 우리는 ‘대체 어떻게 글을 써야 될까’라는 고민을 항상 품고 살아간다. 그래서 주변에 조언을 구한다. 나 같은 경우도 유명한 사람이 아님에도 가끔 꿈을 말하며 고민을 메일로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면 어떻게 조언을 해줘야 할까에 대해 고민이 많다.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품었고 어떻게 글을 써야 좋을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언이 힘든 이유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람의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는 복학이 늦었다. 무려 5년이 지나 학교로 돌아갔고, 그 사이에 그 교수의 생각도 달라졌을 것이다. 학교에서 글로 성공한 후배들이 있었고, 그 후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이 수정되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어떤 조언을 해준다 하더라도 몇 년이 지나 이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내 시답잖은 조언을 광명을 만난 듯 믿고 거기에 집착할지도 모른다. 마치 헤밍웨이냐 편혜영이냐 고민했던 내 과거처럼 말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은 그저 많이 써보라는 것이다. 이는 공부와 같다.


혼자서 공부를 많이 하는 학생의 경우 자신의 공부 패턴을 익힌다. 어떤 방법으로 암기를 해야 잘 외워지는지, 어느 시간에 공부를 해야 집중력이 높은지, 내가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학원의 수동적인 공부는 학원교사의 스타일에 따라 학생을 고정시킨다. 학원에 다니면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점에 있다.


남에게 글을 배우다 보면 자신이 잘 못 쓰는 글도 써야하며, 제시어나 길이제한 등 마치 게임처럼 글을 익히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글보다는 가르치는 사람이 좋아하는, 그래서 칭찬받을 수 있는 글에 더 몰두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어떻게 써야 좋을지 알 수 없다. 자율학습시간에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처럼 말이다.


우선 많이 써 봐라. 그러다 보면 자신이 잘 쓸 줄 아는 글과 못 쓰는 글에 대해 알게 된다. 글을 쓰는 패턴도 확립된다. 작가에 따라 한 번에 글을 몰아 쓰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마치 숙제처럼 시간을 정해두고 글을 쓰는 작가도 있다. 10대 또는 20대 때는 그렇게 계속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어떻게 글을 써야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글은 남에게 배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그랬던 시간이 있었다. 영화모임에 들어갔고 그 모임에서 칭찬받는 글처럼 글을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글은 누군가의 아류일 뿐 나만의 글이 아니다. 누군가 내 글을 좋아한다면 그건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지금도 헤밍웨이 파고 언젠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지니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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