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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학교> - 시련과 눈물은 언제나 즐겁다


양현석 사장은 참 독한 사람이다. 그는 ikon을 준비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mix&match>를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 서바이벌은 잔혹하지만 아픔과 상처가 이 친구들을 더 강하게 만들 거라고. 하지만 <mix&match>는 너무나 잔혹한 방식을 택했다. 기존 멤버는 물론 새로 합류한 멤버들에게도 상처가 될 만한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이 방송이 가지는 정당성은 너무나 분명했다. 기회. 기회는 아무나 주는 것이 아니다. 힘이 있는 사람만이 기회를 줄 수 있고, 그 기회의 형식이나 방식은 그 사람의 마음이다.  <mix&match> 당시 기존 연습생 6명에게도 이 방식은 잔혹했으나 앞선 서바이벌에서 패배한 그들에게 기존 멤버 그대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또 새로 합류한 연습생들에게는 단 몇 개월만에 국내 최대 기획사에서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사진출처 : 위키트리


이처럼 방송사는 '기회'를 이유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이번 <아이돌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돌 맞춤 교육'이라는 소개와 소속사가 없는 아이돌 지망생들이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은 소속사에 들어가지 못한, 혹은 아이돌을 지원하지만 소속사의 트레이닝과 연습생 기간을 견디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엄청난 기회다. 이는 앞서 아이돌 연습생들 혹은 데뷔했으나 묻혀버린 아이돌들에게 기회를 주었던 <프로듀스 101>보다 한층 더 낮은 조건으로 본인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소리다. 하지만 매번 그러하듯 서바이벌은 잔혹하다. 이는 학교 컨셉으로 학생들을 교육시키겠다는 <아이돌학교>역시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잔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걸그룹이 되고 싶은 열정이 예쁜 소녀들이, 아이돌 맞춤형 교육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쁘고 실력 있는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성장형 아이돌 육성 학원물' 이라는 소개와는 달리 첫 방송부터 고난도의 댄스 평가가 있었다. 심지어 2회에서는 40명의 단체 군무를 맞추기도 하였다. 뭐, 이건 좋다. 과제는 자기 마음대로이니까. 문제는 과제를 과하게 내주고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돌리는 프로그램의 태도다.


유독 심사위원들은 '노력'을 강조한다. 자기들이 광고는 '우리가 다 키워줄게'라고 해놓고는 아이돌 연습생들이 소화할 만한 댄스를 주고 빨리빨리 익히라고 재촉한다. 중학생이 수준에 맞춰 교육시켜 준다는 기숙학원에 들어갔는데 시작부터 고등학교 수학을 선행학습 하고 있는 꼴이다. 뭐, 아이돌 연습생 출신들이 많이 왔기에 수준이 높아서 그렇다고 치자. 헌데 왜 자꾸 방송 내내 못하는 아이들의 잘못을 '개인'으로만 돌리는지 난 그게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수준미달의 친구들이 생기게 프로그램을 짜놓고 못하니까 '넌 노력이 부족해' '넌 열심히 하지 않아' 하는 건 모든 책임을 '너'로 돌리는 사회의 어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을 향한 스펙을 생각해 보라. 중학교, 고등학교 6년 내내 뼈빠지게 공부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비싼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자격증을 따야만 한다. 헌데 완벽하게 해냈다고 생각하는 취업준비에서도 난관이 많다. 너무 많은 '고스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임금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스펙은 엄청 따진다. 그래서 불만을 토해내고 이런 문제에 대해 바꾸기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된다고 말하면 꼭 누군가는 말한다. 그건 네 노력부족이라고. <아이돌학교>가 유독 눈에 거슬리는 이유는 일부러 높은 기준을 잡아두고 노력을 강조하는 태도 때문이다. 이는 앞서 <프로듀스 101>과는 다른 문제다. 당시 유독 못 따라갔던 연습생은 김소혜 한 명 뿐이었다. 배우지망 연습생이 엉뚱한 곳에 왔을 뿐이다. 헌데 이 학교에는 소혜가 너무 많다. 그리고 그 소혜들을 너무 강하게 질책한다. 방송에서 가장 무서운 건 편집이다. 글이 그 문장 자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보여준다면 영상은 편집을 통해 내가 전해주고 싶은 것을 보여준다. 즉, 아무리 PD들이 변명을 해도 편집은 염연히 그들의 의도가 담긴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강조하는 노력, 태도, 그리고 몇몇 출연자들이 중간중간 보이는 실력이나 태도 문제는 꼭 집고 넘어가는 것은 논란을 만들고 그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뒤집어 씌우겠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또 4주차에 '퇴소'를 시키겠다는 것은 학교라는 컨셉을 완전히 배신함과 동시에 기획 자체의 어설픔을 보여준다. 컨셉을 가져왔으면 그 컨셉에 맞춰 작품을 찍어야 한다. 이미 이 작품의 CP는 비슷한 일을 여러번 했다.(난 아직도 슈스케에서 정준영을 그가 가진 실력이나 유니크함이 아닌 단순한 얼빠와 로이킴과의 관계에 주목하게 만든 그 연출이 정말 별로였다고 생각한다.) 어떤 학교가 학생들을 탈락시키나. 난 이 장치가 두 가지 이기적인 생각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앞서 보였던 상담함의 용도다. 일부러 미션을 어렵게 잡는다->아이돌 연습생 출신이 아니었던 애들이나 특출난 애들이 아니면 못 따라간다->자연스럽게 알짜만 빼고 다 퇴소한다 는 순서였을 것이다.(그래서 첫회에 그만둔다는 학생이 나왔을 때도 편집의 기점은 개인의 의지부족을 향했고 마치 이 함이 이런 용도라는 식으로 방송에 비춰졌다.) 하지만 예상 외로 실력부족임에도 기권하는 인원이 적자 이런 방법을 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참 끔찍한 이야기지만 <프로듀스 101>에도 나왔던 PD 픽이다. 


보니까 마음에 드는 출연자가 적어서 대거로 짤라내는 형식을 취한 게 아닌가 싶다. 이 방식이 정말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아이돌학교>는 분명 <프로듀스 101>과 다르다는 차등점을 두어야 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학교'라는 공간을 택했다. 학교는 거친 사회라는 공간에 가기 전, 잠깐 작은 사회를 배워보는 일종의 둥지와 같은 공간이다. 그래서 소개에도 분명 '육성'이라는 말을 썼다. '경쟁'이 아닌 '육성'을 통해 아이돌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미션의 강도, 그리고 무리수에 가까운 탈락제도로 '출연자들에게 등급을 부여한다'는 악평을 받은 <프로듀스 101>보다 더 잔혹한 방송이 탄생하고 말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잔혹함이 우리에게 큰 재미를 주고 있다. 평이 어찌되었건 출연자들의 이름이 검색어 1위에 오르는 것은 물론 각 커뮤니티 마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아이들에 대한 홍보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움직이는 것은 시련과 눈물이다. 우리가 캔디형 주인공에 열광하는 건, 갑질에 당하는 주인공에 분노하는 건 이들의 피 땀 눈물이 자극과 동시에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특히 <프로듀스 101>의 경우 제작진이 영악하게 느껴졌던 건 일부러 아이들에게 시련을 주어 '내가 너를 지켜줄게'라는 마음을 가지게 해 표를 유도했다는 점이다. <아이돌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 소꿉놀이 식으로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성장하는 모습만을 보여줬다면 이 작품은 화제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예쁜 나이대의 여성들이 등장해 예기치 못한 시련과 고통을 겪고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내가 그 애들을 도와줄 건 한 표라도 주어 순위를 올려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노력하게 하는 방법 뿐이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작품에 몰입하고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한 마디로 남의 시련과 눈물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다는 소리다.

개인적으로 <아이돌학교>는 정도를 좀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모집을 위한 광고부터 사기에 가까우며 그들이 내세운 형식을 스스로 포기했다. 또 실시간 순위발표는 보는 사람은 물론 참가하는 사람에게까지 지나치게 가혹하다. 개인적으로 또 이게 용인되어 이보다 더 잔혹한 프로가 나오지 않기만을 바란다. 오디션 프로 자체에 대한 반감은 없다. 이것 역시나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기회다. 연습생 생활을 거치지 않고 바로 데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권일지도 모른다. 내가 걱정하는 건 이런 기회를 핑계로 꿈을 품은 청춘들에게 더 가혹하고 잔혹한 짓거리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기업들이 '기회'를 이유로 국민들을 쥐어짜고 자신들의 특권을 당연하게 만드는 자세와 다를 바가 없다. 방송도 세상과 같다. 갈수록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해가야지 저질스럽게 흘러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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