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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의 세 가지 논란

<군함도>를 둘러싼 논란들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군함도>는 2017년 최고의 기대작이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에 끌려가 고통을 겪었던 곳이 군함도(하시마 섬)이다. 즉, 우리의 아픈 역사가 서려 있지만 2015년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그 고통을 지우려고 하는, 일본의 역사왜곡이 쓰여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의 영화화가 확정되고 그 감독이 <베를린>, <베테랑>으로 한국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우뚝 선 류승완 감독이라는 것이 알려졌을 때 관객들의 기대는 상당했다. 여기에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맹활약한 배우들의 조합은 ‘국민영화’의 탄생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먼저 작품 그 ‘자체’의 군함도를 평가하자면 볼 만한 액션영화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철저하게 전후반이 구분되어 있다. 악단장 강옥과 딸 소희, 주먹패 무리의 우두머리 칠성, 일제 강점하에 고초를 겪은 말년이 군함도에 와 고초를 겪는 드라마가 전반이라면, OSS 요원 박무영을 중심으로 한 군함도 탈출의 후반전은 액션이다. 작품이 취하고 있는 구도는 전형적인 액션 영화다. 아쉬운 전 <짝패>,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 몸으로 하는 액션에서는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였던 류승완 감독이 총과 폭탄이 난무하는 전쟁 액션에서는 그 감각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군함도>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전반 드라마에서 인물간의 관계와 갈등을 차곡차곡 쌓아올라 후반부에 액션과 같이 터뜨릴 것이냐, 아니면 강력한 액션으로 전반에 약한 이야기 구조를 만회할 것이냐. 감독은 자신의 장기인 액션을 위해 후자를 택했고 결과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관객들이 아쉬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것이다. 기대에 비해 영화가 보여주어야 할 부분들이 약했다. 어마어마한 제작비에 스타 배우들의 기용, 그리고 감독의 이름값에 비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액션대작 수준에 머무른 것이 아쉽게 느껴질 것이다. 여기에 장르적 쾌감 외적인, 배경에 있어서 관객들이 느끼는 아쉬움이 있다. 바로 일제의 만행의 강도다. 실제 감독과 배우 이정현은 인터뷰 내용으로 고초를 겪었다.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는 헬조선 탈출기(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437636)’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주연 배우 이정현은 ‘일본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지 않아 마음에 든다(http://www.insight.co.kr/newsRead.php?ArtNo=114334)’라는 내용을 인터뷰로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최근 류승완 감독이 ‘<군함도>는 일제의 만행에 대해 다룬 작품’이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을 정도로 이 작품의 진정성이 논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거지만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만드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다. 잘못하면 과한 ‘국뽕’으로 빠지게 되며 다른 방향으로 잘못 들였다가는 ‘시대정신을 배신 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즉, 우리가 가장 원하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1. 일제의 잔학한 행위가 강렬하게 묘사되고 2. 이 과정에서 희생당하는 주인공들의 영웅적인 면모가 드러나야 하며 3. 주인공들은 오직 애국을 위해 싸워야만 한다. 이런 과장에 따라 역사왜곡의 논란이 있었던 작품이 <덕혜옹주>이다. 이 작품은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상반되는 사실을 삽입하였고 결과는 흥행으로 이어졌다. <밀정>은 또 어떤가. 난 아직도 이 작품에서 송강호가 너무 쉽게 독립군 편으로 돌아서는 그 감정선이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결국 주인공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관객들이 좋아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 반대를 향했다가 욕을 먹은 대표적인 작품이 <마이웨이>다. 애국심보다는 더 넓은 인간애를 강조한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의 우정을 다뤘다가 융단폭격을 당했다. 친일미화부터 감독의 사상을 의심하는 댓글들이 즐비했다. <군함도> 역시 비슷한 논란을 겪고 있다. 누가 봐도 배경이 군함도이고 그 안에서 희생당한 조선인들의 고통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헬조선 탈출기’라는 단어선정 때문에 그 진정성에 의심을 받고 있다. 류승완 감독은 ‘잘못된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했지만 ‘왜 조국을 비하하고 탈출이라는 단어를 쓰느냐’라는 일부 네티즌들의 말에 결국 작품이 가진 의의를 스스로 다시 규정해야 하는 촌극을 겪었다. 배우 이정현의 말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아니다. <암살>, <박열> 등의 작품을 보면 독립운동에 ‘무조건’ 조선인들만 참여했던 건 아니다. 그속에는 일본인들도 있었다. 2차대전 당시 모든 독일인들이 나치에 가담했던 건 아니고, 전쟁에 참여했던 그들 중 모두가 잔악하고 사악했던 건 아니다. 우리는 <피아니스트>의 결말에서 스필만을 마지막에 도와주었던 것이 독일인 장교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암살>과 <박열>에서도 마찬가지다. 독립군의 안에는 일본인이 있다. 이는 우리나라 감독들이 가지는 높은 사고관과 관련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 전쟁 이후의 세대들이 만든 영화들은 대체로 전쟁에 대한 예찬과 당시 잔악한 전쟁을 벌였던 지도층에 대한 영웅적인 면모를 강조한다. 이는 그들의 낮은 역사인식과 과한 ‘일뽕’을 확인하며 상업영화의 수준에 있어서 얼마나 질 낮은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감독들의 경우 당시 일본의 지배층에 화살을 향하지 절대 일본국민 전체를 싸잡아 매도하지 않는다. 이는 ‘잘못된 건 짚고 넘어가되 전체를 싸잡아 욕하지 않겠다’는 높은 의식을 보여준다. <군함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 논란이 되는 건 결국 조선인들을 괴롭힌 대상을 조선인 그 자체로 한다는 것인데 이런 상황을 만든 건 결국 일본의 지배층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동포끼리 죽이고 죽이는 전쟁을 누구 때문에 벌여왔는지.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전제가 깔려있는데 눈앞에 보이는 나무 때문에 숲을 보지 못하면 안 된다. 

역사인식에 대한 문제가 과거라면 현재의 문제는 스크린 독과점이다. 이 문제는 영화계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수요가 우선이냐, 공급이 우선이냐’하는 문제인데 시장논리에 따르면 ‘수요’가 우선인 것이 맞다. <군함도>의 스크린 수가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길 원하기 때문이다. 극장 입장에서는 수요가 많은 영화인 <군함도>로 도배를 해놔야 더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올 것이고 돈을 벌게 된다. <스파이더 맨: 홈커밍>은 개봉주차 때문에 관객이 떨어질 타이밍이고, 이는 <덩케르크> 역시 마찬가지다. 극장이 수익이 우선이라면 <군함도>의 스크린수는 결코 많은 것이 아니며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공급’의 문제로 따지자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영화가 오직 수요만을 따지자면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극소수가 되어야만 한다. 한 마디로 대부분의 영화들은 IPTV행으로 가는 것이 옳은 시장의 판단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그건 엄연히 관객의 ‘볼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화제작을 제외한 작품들이 오직 조조와 심야로만 상영이 된다면 소수의 관객들은 극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선택할 권리가 없어지며 이는 관객과 극장, 상생의 길을 외면하는 선택이 되고 말 것이다. 경기장의 주인은 선수들이 아닌 관중들이듯, 영화관의 주인도 관객들이다. 아무도 봐 주지 않는 예술은 가치가 없다. 특히 영화관이 계속 이런 독과점의 문제를 낳는다면 화제작이 없는 비수기 때는 관객들이 아예 영화관을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수요와 공급의 문제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다. 수익이 나지 않는 영화를 계속 상영할 수도 없고, 극장에서 2~3가지 영화 중 한 편만 택하는 문제를 지속시킬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야 될 논란은 평점 테러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과연 이건 테러인가, 아니면 별점을 줄 권리가 있는 관객들의 선택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일베 등 논란이 되는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타이타닉> 등 평점이 높은 영화들의 평점을 일부러 테러해 떨어뜨려 논란이 되었다. 특히 이들은 세월호 문제나 노무현 대통령을 다룬 작품들에 별점 테러를 시행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룬 <변호인>이나 <노무현입니다>는 그 완성도 덕분인지 일반 관객들의 평점이 높아 테러의 위협에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군함도> 같이 기대치에 비해 반응이 약하거나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일 경우 테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현재 네이버 영화에서 <군함도>의 네티즌 평점은 4점대이다. 영화가 가진 퀄리티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평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조직적인 평점테러는 개봉영화의 경우 쥐약이다. 영화 값이 갈수록 오르는 요즘, 관객들은 ‘이왕 극장에 갈 거면 재미있는 영화를 보자’고 생각한다. 그런데 평점 테러로 점수가 심하게 낮아지면 조금이라도 평점이 높은 다른 개봉작에 눈이 가기 마련이다. 이것이 반대편 영화사가 조직적으로 알바들을 고용해 테러를 한 거라면 문제에 대해 지적할 수 있지만 특정 커뮤니티의 소행이라면 그러기도 쉽지 않다. ‘내가 내 돈 내고, 보고 와서 별로라서 낮게 줬는데 뭐 어쩌라고?’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호불호를 느끼는 건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취향은 절대 강요받지 말아야 될 개인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특정한 목적으로, 일베의 <변호인> 테러가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루어진 테러라면 이는 그 집단이 욕을 먹어야 되고, 제지를 당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군함도>의 경우도 이 작품이 일제의 만행을 다루고 있고, <군함도>라는 예민한 소재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평점 테러가 이뤄지고 있다는 말이 있다. 몇몇 블로그나 커뮤니티 네임드를 보면 일본에 대해 지나치게 호의적인 이들이 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의 논리를 그대로 퍼뜨리는 한국인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 중 일본의 자금을 받으며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한국의 현실을 개선하기 보다는 일본측 논리로 한국을 비판하는 것을 선호한다.


일제 강점기 때도 ‘역시 조선인은 미개해’라면서 이들을 변화시키려고 하기 보다는 비판만 하는 조선인들이 있었다. 현재의 한국인들에게도 이런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논리가 ‘헬조선’이며 특정 계층을 싸잡아 욕하며 ‘한국인들은 미개하다’고 말하는 이들이다. 만약 이들이 지속적으로 일제의 만행을 다룬 영화들에 별점 테러를 하며 앞으로 이런 작품들에 적극적인 투자가 되는 것을 막는다면 이는 분명한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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