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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입니다> -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

노무현이라는 사람 그리고 그의 정신

내가 개인적으로 참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대한민국 정치의 구조를 바꾸려고 했으며 사회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기 위해 애를 썼다. 국회의원, 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을 달고 영남 지방에 출마했다 떨어졌고 ‘왜 한나라당에 들어가면 편하게 정치할 거 이 고생을 하느냐’는 물음에 지역주의 타파를 답으로 내세웠다. 국정농단 당시 많은 국민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건 공통된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노무현 정신’이다.



*노무현의 콤플렉스는 학력


노무현 대통령의 집안은 가난했다. 중학교에 입학할 당시 육성회비 문제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는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었지만 그의 낮은 학력은 콤플렉스로 작용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학력으로 얕봤을 때 그는 참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인이 아니었다면 피하면 그만이었지만 정치를 하는 노무현은 그들과 싸웠어야 했다. 자신을 무시하지 못하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피력하기 위해서 그들과 더욱 격렬하게 싸웠다. 그래서 아쉬워한다. 만약 그가 조금만 고개를 숙였다면, 한국정치의 실상에 맞게 정계, 재계, 언론에게 허리를 숙였다면 우리는 더 오래 그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콤플렉스는 인간 노무현을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고 자신을 무시하는 모든 것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그의 모습에 반하게 되었다.



*노무현과 함께하고 싶어 했던 사람들


젊은이들과 나이든 이들의 정치를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젊은이들은 자기들을 위해 정치를 해줄 수 있는 사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을 원한다. 반면 나이든 이들은 자기 고향 사람, 어차피 정치인들은 다 더러운 거기서 거기인 놈들이니 동향이나 정치적 성향이 맞는 당의 사람을 뽑는다. 한국 정치는 그래왔다. 더 이름값이 있는 사람, 직책을 했던 사람, 지역에서 이름이 있는 사람을 뽑아왔다. 그 사람이 한 일보다는 그 사람의 이름값이 중요했고 고향과 당이 중요했다. 그래서 정치를 싫어했다. 바꿀 생각은 안하고 습관처럼 투표를 하다 보니 정치인은 그놈이 다 그놈이라고만 생각했다. 



이런 한국정치에 노무현은 돌연변이였다. 그는 선거란 선거는 다 졌다. 민주당 후보가 한나라당 텃밭인 영남에 나오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는 지지율 2%대의 후보였다. 정부에서 일한 적이 없고, 당에서 높은 직책을 해본 적이 없다. 이름값이 떨어지는 후보인 노무현. 그런 노무현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바로 노사모다. 그들은 ‘이름 노무현’을 좋아한 게 아니라 ‘인간 노무현’을 좋아했다.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하고 사랑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뭉쳐서 선거 운동을 했다. 당시 돈을 받고 선거 운동을 했던 반면 그들은 자발적으로 노무현 후보를 위해 시간과 열정을 소비했다.


젊은 세대로 구성된 노사모는 인터넷을 통해 소통을 했고 핸드폰으로 정보를 교환했다. 전국에서 모인 그들은 지역을 이동해 가면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 후보가 되도록 도왔다. 가장 ‘약한 후보’였던 그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는 국민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그가 당시 강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를 이겼던 건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는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기적 같은 승리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대통령 후보는 이인제였다. 그는 지지율로 보나 이름값으로 보나 가장 압도적인 후보였다. 하지만 새천년민주당 내부에서는 이인제 후보에 대한 시선이 탐탁지 않았다. 그는 통일민주당을 깨고 나온 철새정치인 이미지의 정치인이었으며 이회창 후보와 같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약점이 있었다. 즉, 표 확장성의 측면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질 수밖에 없는 후보로 여겨졌다. 하지만 당 내의 경선에서는 이인제 후보의 압승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새천년민주당이 대통령 후보 경선을 국민경선으로 시행하기로 결정하면서 태풍이 몰아치게 되었다.



국민경선은 말 그대로 국민들의 손으로 대권후보를 뽑는다는 것이다.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2%로 과반이 넘는 이인제 후보에 비해 보잘 것 없었다. 실제로 제주경선에서부터 이인제 후보는 승리를 거두며 무난하게 당선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변은 울산 경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서 이긴 노무현 후보는 이후 이인제 후보의 텃밭에서는 지지만 인천 경선에서 승리를 거둔다. 당시 이인제 후보 측은 노무현 후보가 영남에서 압승을 거둘 것을 예상,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 갈까봐 경선을 깰 생각까지 한다. 어찌되었던 노무현 후보는 이후 경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



그의 승리 비결은 노사모에게 있었다. 그들은 노무현 후보를 위해 무보수로 끼니도 거르며 홍보를 했다. 그들이 만든 축제 같은 분위기는 이전 경선에서는 볼 수 없는 분위기였다. 또 그들은 강원 경선을 앞두고 ‘노무현은 빨갱이다’라는 문구가 강원 시내에 붙자 이를 떼어내기 위해 밤새 돌아다닌다. 한 마디로 그들은 노무현 후보를 향한 모든 편견과 음해로부터 그를 지켜내기 위한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말이 등장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은 빨갱이였다. 그가 결혼했을 당시 장인은 없었지만 언론은 영부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노무현 후보를 공격했다. 당시 정치계에서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는데 한나라당이 새천년민주당을 공격하는 빨갱이를 같은 당원들끼리는 쓰지 말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인제 후보는 이 룰을 어기고 노무현 후보에게 색깔론을 씌운다.


이에 대해 노무현 후보는 말한다. ‘그러면 제가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라고. 수많은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의 이 말은 불리했던 상황을 한 번에 뒤집는다. 과거 그는 자금 문제로 고발을 당한 안희정을 무시하고 자를 수 있었지만 ‘그는 나의 동료’라고 말하였다. 정치에서 사람을 버리는 일은 참 쉽다. 꼬리를 자르고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역할을 강조했고 소통을 중시했다. 이 두 가지는 인간과 연관되어 있다. 인간은 사람 인에 사이 간 자를 쓴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인간이다. 그 사이는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소통을 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는 그 어떤 대통령보다 사람을 중요시했다. 그런 그에게 ‘아내’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는 말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아내를 버려야 하는지 아닌지 국민들이 판단해 달라고. 그리고 국민들은 이 질문에 응답했다.



*노무현은 대한민국을 바꾸고자 했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노무현은 사람만 좋았던 대통령이라고. 그는 정말 무능했고 방정맞았다고. 난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제왕적 리더는 사라져야 한다. 기술의 진보에 따라 사회가 변화하듯 정치도 변해야 한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 변화를 가장 먼저 보여줬던 사람이다. 그는 변화의 물결에 대해 말했다. 자신이 그 물결의 첫 번째가 될 수 있는지 항상 의구심을 품어왔다. 사회란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공간이다. 내가 무언가를 하려면 누군가 날 발견하고 이끌고 도와줘야 한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고민했다. 학력에 콤플렉스가 있고 뭐 하나 내세울 거 없이 실패만 반복한 내가 그 물결이 될 수 있는지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정치에 변화시킨 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권위주의 타파다. 그가 학교를 그만둔 건 권위적인 담임선생 때문이었다. 육성회비를 분할 납부 할 수 없느냐는 그의 형의 말에 담임은 다짜고짜 교실에 들어와 처음 보는 그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가난한 그를 욕했다. 권위를 가진 사람이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 그는 그 폭력의 피해자였고 자신처럼 이런 폭력에 당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랐다. 그의 로스쿨 정책은 비록 문제점이 많은 정책이었지만 이런 사상이 잘 담긴 정책이다. 그는 집권기간 내내 기자들을 직접 상대했다. 문제가 생기면 앞에 나서 해결했고, 무엇보다 소통을 꾸준히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언론에 의해 대통령이 엉덩이가 가볍다, 방정맞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2번의 정권을 통해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는 사람과 사람이 함께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서로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만의 독단으로 행동하는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두 번째는 타협하는 정치다. 협치와 연정. 이 두 가지 단어를 난 싫어한다. 정치는 항상 ‘최선’이어야 한다. 왜 최선이어야 하느냐. 국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들이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방향을 향해가야 하는 것이 정치지, 정치인들이 자기들끼리 ‘내가 이거 해줬으니 넌 이거 해줘’ 하는 게 정치가 아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타협하지 않았다. A를 주면 B를 해주는 정치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언론과 싸웠다. 펜이 칼보다 무서운 시대에 언론과 싸운다는 건 무모한 짓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을 적대시했다. 자신들 마음대로 국민들을 선동해 정치권을 꾸려나가려는 언론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는 말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새천년민주당 경선에 간섭하지 마라’고. 자신들이 입맛에 맞는 후보를 당선시키려는 언론의 행동을 대놓고 비판한 것이다. 그래서 집권기간 내내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과 싸웠어야 했다. 그는 무능하고 한 거 없는 대통령, 경포대(경제포기 대통령), 빨갱이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많은 국민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노무현이 포기하지 않은 이유


난 노무현 대통령이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오늘날에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타협을 봤다면, ‘원래 정치는 이런 거야’ 라며 협치와 연정을 강조했다면 오늘날의 정권교체와 정치권 변화에 대한, 그리고 언론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이 적극적으로 표출되었을까? 정신이란 건 참 무섭다. 사람을 지배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건 정신이다. 그는 어디에도 굴하지 않는, 썩어빠진 것을 ‘꼭 바꿔야한다’라는 정신을 물려주기 위해 그렇게 싸워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가 있었기에 국민들은 완전한 변화를 꿈꾸며 협치는 개 같은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정치인들이 원하는 대로 정치권이 흘러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두들 알게 되었다. 언론이 모든 옳은 소리만 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이야 말로 개소리를 지껄이는 종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무현이 직접 그들이랑 싸웠으니까 우리는 알게 된 것이다.



변화를 위한 운동에는 특정한 정신과 인물이 있다. 인간이 하나로 뭉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응집시키는 힘은 이 두 가지에 기초한다. 지난 국정농단 사태 때 우리는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그 바탕에는 노무현 정신이 있었고 노무현이라는 상징적인 인물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건 다른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이다. 내가 사라지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 난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진다. 하지만 내가 남긴 ‘정신’만은 살아있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 되고 역사가 되며 시대에 반복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정치의 개혁의 주역이자 정신의 창조자이다. 우리가 아직도 책으로, 영화로, 연극으로 그와 그의 정신을 찾는 이유는 우리가 그 사람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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