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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성 칙칙하다. 보고 나면 우울한 영화 TOP 10


1. 싱글라이더


인생이란 나 혼자 달리는 마라톤이다. 옆에 있던 동료들과 함께 달리다 보면 어느새 내 옆에는 아무도 없다. 너무 혼자 멀리 왔나? 아니면 뒤쳐졌나? 주변을 둘러볼 때면 외롭고 공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결승점에 도달해야지. 질주를 마쳐야 의미가 있으니까 결승점을 통과해야지. 그런데 저 결승점을 넘으면 내게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싱글라이더>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고독’이라는 감정을 지독할 정도로 우울하게 풀어낸 감정이다. 메시지는 약하고 반전은 허울만 좋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삶이란 것이 가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돈? 명예? 사랑? 대체 무엇이 제대로 살고 있다는 메시지일까. 반전. 어쩌면 이 영화의 반전은 우리 모두가 삶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 아닐까? 대체 무엇이 ‘제대로 된’ 삶일까?


 


2. 익시젼


<익시젼>은 공포 영화다. 정말 잔인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다. 망상증에 시달리는 10대 소녀 폴린은 환상 속에서는 끊임없이 잔혹한 수술을 하며, 이를 현실로 옮겨와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존재는 몸이 아픈 여동생뿐이다. 그녀의 잘못된 환상은 그녀를 기피대상으로만 여기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모른다. ‘무엇’이 잘못이고 아닌지. 이 영화의 결말이 끔찍한 이유는 폴린의 ‘선의’가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수술이란 건 치료를 위한 행위이다. 치료는 아픈 사람, 즉, 약자에게 행해지는 것이다. 폴린과 그녀의 동생은 약자였다. 동생은 몸이, 그녀는 정신이 약했다. 폴린에게는 수술이 시행되었어야 했다. 그 아픈 정신을 보듬어 안아줘야만 했다. 병자가 병자를 수술한 이 끔찍한 결말의 여운은 꽤나 깊게 남을 것이다.



3. 하얀 면사포


<하얀 면사포>는 배우 바네사 파라디의 명연기 덕분에 영화사에 길이 남을 숨겨진 명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부남 교사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여학생의 연기를 선보인 그녀의 얼굴은 ‘고독과 우울’ 그 자체다. 마틸드는 단 한 번도 따뜻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그녀에게 다가온 첫 따스함을 그녀는 강렬한 사랑의 색체라 오해하고 그 색에 물들기 위해 자신은 물론 교사 프랑수와의 삶도 처절하게 망가뜨린다. 이 작품이 우울한 이유는 단 하나다. 그 사랑이 너무 순수하기 때문이다. 깨끗하고 연약한 사랑이 그 잘못된 방법 때문에 검게 물들어가는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지독한 아픔을 준다. 그리고 이 아픔을 온몸으로 표현해낸 배우가 바네사 파라디이다. 그녀의 연기가 없었다면 이 작품이 가진 감성은 결코 특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4. 립반윙클의 신부


‘이렇게 쉽게 행복해져도 되는 걸까?’ 교사인 유부녀 나나미의 인생은 SNS 프로그램 ‘플래닛’에 올린 이 한 줄의 글 때문에 꼬일 대로 꼬여버린다. 남편과 이혼하게 되고 집에서 쫓겨나며 대저택의 메이드로 들어가게 된다. 이 모든 일은 서비스맨 아무로가 계획한 것이다. 대체 그는 누구이며 그녀의 인생을 왜 이렇게 망가뜨린 걸까? 아니, 그 전에 이 ‘토끼’를 통해 나나미라는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안내한 배후는 누구일까? 이와이 순지의 감성은 흔히 <러브 레터>와 <하나와 앨리스>로 알려진 잔잔하면서도 진한 감동을 주는 사랑의 감성이다. 하지만 그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피크닉>, <언두>, <뱀파이어> 같은 기괴함부터 <릴리슈슈의 모든 것>,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의 우울함과 고독까지.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통해 감성을 이야기한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SNS를 통해 필요이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알지만 동시에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는’ SNS 세대의 소통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5. 퍼펙트 블루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계는 콘도 요시후미가 이끌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래를 밝힌 <귀를 기울이면> 이후 요절했다.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나타난 3명의 감독, 호소다 마모루, 신카이 마코토 그리고 곤 사토시는 서로 다른 장점으로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이끌어 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곤 사토시 감독은 47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그의 데뷔작 <퍼펙트 블루>는 충격 그 자체다. 아이돌 그룹의 해체 후 배우가 된 미마. 그녀는 뜨기 위해 드라마에서 강간 촬영을 하고 누드집을 낸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에서 기묘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범인의 화살은 그녀를 향한다. ‘또 다른 내가 사람들을 죽이고 있나?’ 하는 불안이 싹튼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미마가 느끼는 불안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사건과 주인공의 감정이 동일시되면 이야기는 엄청난 몰입을 가져온다. 미마의 우울과 불안은 감각적인 감독의 연출에 의해 화면과 이야기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놀랍게도 곤 사토시 감독은 이 작품 이후 <파프리카>, <천년여우>,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등을 만들면서 첫 데뷔작에서 뛰어난 성공을 거둔 감독의 이후 작품이 부진하다는 징크스를 완벽하게 날려버린다.



6. 살인 혐의


결말에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이런 작품들의 특징은 감정이 갑작스럽게 폭발하거나 역접 되는 것이 아닌,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영화에 은은하게 깔렸던 감정이 결말부에 분출되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성폭행으로 6개월간 복역한 전과가 있고 우울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싫어하며 여자와의 관계는 창녀를 통해서만 맺는다. 거기에 나이가 들었고 못생겼으며 탈모인이다. 그는 반대편 건물의 알리스를 사랑한다. 망원경을 통해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남몰래 사랑을 키워왔다. 어느 날 알리스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살인을 저지른 것을 목격하고 그 용의자로 자신이 지목되었다. 그 의심을 남자는 견뎌낸다.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때론 사랑이란 그 강렬한 감정 때문에 나란 존재의 자존감을 심하게 낮춰 상대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게 만든다. 너무 사랑해서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다. 어쩌면 남자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가치가 전혀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자신의 사랑을 너무나 소중하게 여긴 그의 모습은 울적하기만 하다.



7. 딥 어드벤쳐


사람이 가장 우울해질 때는 언제일까? 난 그 순간이 진실을 알 때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가 바쁘면 우울할 일이 없다. 힘들긴 해도 마음이 심란하진 않다. 헌데 시간이 많이 남아 돌 때면 기분이 우울해진다. 내가 내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면서 나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딥 어드벤쳐>는 그런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소년을 희롱하는 단장 포터, 몸을 팔아 극단 생활을 하는 스텔라, 그런 스텔라를 품에 안은 후크 역의 오하라. 자신의 손에 난 반점을 보며 성병에 걸린 걸까요? 라고 묻는 스텔라의 모습과 스텔라와 자신 사이의 진실을 안 후크의 모습은 이 작품이 가지는 충격적인 결말을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특히 스텔라가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번호를 누르지 않고 엄마한테 전화를 거는 모습은 결말이 가진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상실감의 깊이를 더한다.



8. 외침


난 이 영화를 ‘노동문제’가 아닌 ‘존재론적인 문제’를 다룬 영화라고 생각한다. 설탕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알도가 사랑하는 연인 이르마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그의 어린 딸과 끝없는 방황을 하는 것은 계급 사이의 소통의 ‘단절’, 그리고 정착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삶’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결국 모든 ‘인간’이 가지는 문제다. 아무리 외쳐도 들어주지 않는다. 사랑을 갈구하는 알도는 그가 여행하는 이탈리아 그 어디에서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떠돌아다닌다. 이는 소통을 갈구하나 귀를 막아버린, 그리고 그 자신마저도 귀를 막아버린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근원적인 우울은 소통의 ‘단절’에서 온다. 소통은 사랑이다. 그 소통이 단절된, 사랑을 잃어버린 알도의 모습이야 말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우울’의 형태가 아닌가 싶다.



9. 더 트리트먼트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범죄스릴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가 유독 우울한 감성을 자아내는 이유는 작품이 다루고 있는 주제 때문이다. 아동성범죄. 작품의 주인공인 형사 닉은 어린 시절 이웃이 동생을 잡아가 살해했지만 그 이웃이 무죄를 받으면서 이웃의 정신적인 폭력에 시달린다. 그는 아동성범죄의 수사를 담당하게 되고 이 사건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직감한다. 범인의 수법이 상당히 역겨운데, 그는 방에 부모를 감금하고 아이를 강간한다. 즉, 부모가 아이가 당하는 비명소리를 듣게 만들며 고통에 시달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소재 때문인지 결말에 도달해도 개운한 느낌이 전혀 없다. 오히려 소재가 주는 역겨움에 끝나고 기분이 더럽다. 특히 수영장에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남자를 닉이 찾아오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이 장면에서 남자는 수영장 물 안에서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린다. 성범죄자의 잘못된 성욕은 누군가를 평생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에 빠뜨린다. 성범죄는 살인이다. 그 사람의 삶을 부셔버리는 살인.



10. 어사일럼


데이빗 맥킨지 감독은 남들과는 다른 감성의 소유자이다. 그의 영화의 평이 극과 극을 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워낙 독특한 감성을 보여주니 말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한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실험’을 위해 한 여자를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 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유독 무서운 이유는 여자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심리적인 표현에 억지가 없다는 점이다.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심리표현은 일본 만화를 보았을 때는 ‘저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냐’라는 마음으로 그 순간만 즐기고 넘길 수 있는 반면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삶이 망가질 수 있다는 ‘실현성’을 보여주며 우울한 감성을 자아낸다. 심리 스릴러임에도 불구 지루함이 전혀 없다는 점과 충격적인 결말은 이 작품이 가진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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