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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려진 시간 Feb 13. 2017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다

영화, 그리고 세상 - 12. <써스픽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 유명한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이 한 이야기로 그의 영화들에 담겨 있는 주제의식이 그대로 잘 묻어나는 말이다. 스크린으로 보는 채플린의 영화들은 재미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폭소를 유발한다. 하지만 그 인물에 대해 자세히 들어다 보면 슬프기 짝이 없다. <모던 타임즈>를 생각해 보라. 기계가 대신한 인간의 자리에서 인간은 소모품처럼 사용되고 버림받는다. 하지만 발전한 인류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행복을 느낀다. 그들이 개개인이 처한 비극에 대해서는 잠시 잊어버린 채.


하지만 난 어떤 경우에 한해서는, 아니, 오히려 현대에는 이 말을 반대로 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최근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을 남과 비교해 깎아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은 직업이 이러니 불행할 거야’, ‘이 사람은 한 달에 돈을 이것밖에 못 버니 불행할 거야’ 더 심한 경우는 ‘이 사람은 못생겼으니 불행할 거야’ 등등 다른 사람의 삶을 멋대로 평가하고 단정 짓는다. 돈이 최고인 사회가 되다 보니 문제가 좀 있어도 돈이면 다 해결될 수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돈이 없으면, 직업이 별로면, 여기에 몇 가지 문제가 있으면 한없이 불행할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존 놀란이라는 남자. 190에 달하는 큰 키에 남성다운 외모, 잘 나가는 보험회사 대리점을 운영하며 멋진 차도 가지고 있다. 여기에 4년째 사귀고 있는 멋진 여자 친구도 있다. 어느 날 그는 퇴근길에 주류점에 들린다. 와인을 고른 그는 라벨에 난 조그마한 흠집을 발견하고 직원에게 와인을 바꿔달라고 말한다. 와인을 바꾸기 위해 창고로 들어간 직원. 그때 강도가 들어온다. 강도가 온 걸 모르는 직원을 소리를 내며 창고에서 나오고, 깜짝 놀란 강도는 그를 쏴 죽인다. 이 사건은 놀란의 삶을 바꿔놓는다. 그의 머릿속에 이 남자가 맴돌기 시작한 것이다. ‘왜 난 그때 와인을 바꿔 달라 말했을까?’ 그 티도 안 나는 조그마한 흠집 하나. 그 흠집 하나 때문에, 자신이 내뱉은 그 말 하나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자 존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영화 <써스픽션>은 이 존의 죄책감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죄책감은 채플린의 명언 그대로 ‘가까이서 보면 희극, 멀리서 보면 비극’을 떠올리게 만든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존의 삶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이 남자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이 남자, 어기 로즈는 무장 강도로 20년을 감옥에서 살다 나왔다. 그는 새 시작을 위해 주류점에 취업을 했고 첫 직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가족도, 친척도 전혀 없는 어기 로즈. 존은 어기의 집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생활을 한다. 그래, 존은 끝나버린 ‘어기의 삶’을 대신 살아줌으로 속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내가 존이었다면 어땠을까. 오히려 어기가 죽은 게 잘된 일이라고, 잔인하지만 그리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하지 않았을까? 그는 범죄자고 또 범죄를 일으킬 위험이 있는 사회의 쓰레기라고, 그런 사람은 사라지는 게 오히려 이 사회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스스로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않았을까? 어차피 살아봐야 별 거 없는 인생이었다 생각하면서. 존은 어기의 집에서 살면서 알게 된다. 그의 힘든 감옥생활을 함께해준 건 앵무새 찰리라는 것을. 평소에는 이웃이 준 엄청난 식물에 물을 주며 지냈다는 것을, 그리고 루시라는 펜팔을 하는 얼굴을 모르는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존은 어기가 되어 루시를 만난다. 짧은 머리에 새하얀 얼굴, 환한 미소를 가진 루시. 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어기를 좋아하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 아가씨가.

‘과연 어기의 삶은 불행했을까?’ 그래, 불행했을 것이다. 그는 고아였다. 그래서 쉽게 범죄에 물들었을 거고 무장강도 짓을 했을 것이다. 2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감옥에서 보내는 삶이 행복할 수는 없다. 그래, 어기의 과거는 누가 짐작해도 불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기의 삶이 계속 불행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존의 삶을 먼저 보자. 존은 남들이 보기에는 더없이 행복한 삶이다. 약간의 불편함이 있더라도 돈이 많으니 불평은 사치처럼 보이는 삶. 하지만 그는 4년째 애인과 결혼을 미루고 딱히 무언가에 정착하지 못할 만큼 마음이 공허했다. 정신이란 것이 그렇다. 겉으로는 완벽한 조건들이 채워져 있는 거처럼 보여도 가난할 때가 있다. 돈도 많고, 여자 친구도 있고, 사회적인 직위도 있는데 이상하게 존은 완벽하게 자신의 삶에 정착하질 못했다. 만약 그가 삶에 완벽하게 정착했다면 ‘어기의 삶’을 대신 살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큰 죄책감이라도 내가 나 자신이 좋은데 다른 사람의 삶을 산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니 말이다.

존이 어기 로즈가 된 이유는 그가 자신의 삶에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어기의 삶을 시작했다. 시작은 죄책감이었다. 하지만 그의 삶을 통해 마음의 빈 곳을 채운 존은 어기 로즈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 빈 곳이란 바로 ‘행복’이다. 삶이 아무리 비천하고 처절해도 살아가는 이유, 그건 행복이다. 잠시나마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순간을 맛보기 위해 우리는 살아간다. 존은 어기에게 말해주고 싶을 것이다. ‘어기, 너의 앞으로의 삶은 정말로 행복했을 것이다’라고.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채플린은 말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이다. 아무리 비루하고 처절해 보이는 삶일지라도 가까이서 보면 그 삶은 의미가 있는 삶이다.

자학의 시 : 네이버 영화                                                                                                                

이런 의미를 전달하는 또 다른 영화가 <자학의 시>이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유키에라는 못생긴 여자와 이사오라는 덜 떨어지고 툭하면 밥상을 엎는 남자의 사랑 이야기이다. 라면집 배달원과 빠칭코를 즐기는 일용직 노동자 부부. 남들이 보기에는 참 처절하기 짝이 없는 부부일 것이다. 딱 맞는 질 떨어지는 짝을 찾았고 비참하게 살아간다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 아름답다. 삶은 기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유키에는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왔고 이사오는 처절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다. 부부의 삶은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지만 그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 너무나 아름다운 한 쌍의 부부의 이야기다.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비거 댄 스카이>라는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 사회 속 구성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키가 작은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존재 가치가 작은 사람은 없다. 그들도 그들만의 삶이 있고 행복이 있다. 멀리서 보이면 비극처럼 보이는 삶도 살아가는 데는 그 속에 진한 기쁨, 즉 희극이 있기 때문이다. 삶은 한 방향으로 바라보면 한 없이 불행하다. 하지만 여러 방향에서 삶을 바라본다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알아간다면 가까이서 본 인생은 희극으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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