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 리뷰
<변호인>의 초반 장면, 기억하는가? 80년대 초 부산, 변호사 송우석은 세무 변호사로 막대한 돈을 벌고 친구들에게 단골 국밥집에서 한 턱 쏜다. 친구 윤택은 TV를 켜고 뉴스에서는 대학생들의 시위 소식을 다룬다. 그 시위 소식에 우석은 한탄을 한다. 비싼 등록금 내서 대학 보내놨더니 시위만 한다고 말이다. 그는 정부에 대항하는 학생들을 이해할 수 없다. 80년 5월 서울. 택시운전사 만섭은 대학생들의 시위에 짜증을 낸다. 시위 때문에 길이 막히고 갑자기 튀어나온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 때문에 차 외부의 부품이 망가진다. 그는 대학생들이 시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택시운전사>의 초반은 마치 <변호인>을 닮아있다. 두 작품 모두 돈이 먼저인, 어려웠던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게 된 대한민국의 처지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두 작품의 주인공은 배우 송강호다.
* 김사복과 위르겐 힌츠페터
<택시운전사>의 시작은 그렇다. 김만섭(김사복)은 정부의 정책에 의해 사우디 아라비아에 가 돈을 벌어왔고 그 돈으로 어느 정도 생활을 꾸릴 형편을 마련했다. 하지만 아내가 병에 걸리면서 돈을 다 써 버렸고 아내가 마지막으로 애원해 산 택시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그의 유일한 가족은 딸 은정이며 궁상맞게 돈을 아끼는 이유도 딸에게 무엇이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만섭은 먹고 살기 바쁘기 때문에 정치에는 신경 쓰지 못하지만 진취적인 인물이다. 그가 진취적이라는 건 어떻게 외국인 손님을 태웠는가의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사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한 기사가 외국인 손님을 태워다 광주로 보내주면 1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것을 알게 되고, 식사를 멈춘 채 극장에 가 그 손님을 훔친다.
그가 광주에서 망설이는 이유,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고, 광주에 남고 싶지만 남을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유일한 가족인 딸을 너무나 사랑하고, 자신이 혹여 죽기라도 한다면 홀로 남겨질 딸이 걱정이 되지만 진취적인 그의 성격은 절대 불의를 보고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가 겪은 참상, 눈으로 본 만행을 차마 무시할 수 없다. 광주로 가는 택시에 탄 위르겐 힌츠페터, 피터. 그는 일본에서 오랜 시간을 기자로 일했다. 어느 날 영국 기자로부터 한국에 계엄령이 퍼졌고 광주에 출입금지령이 내려졌다는 말에 그는 광주로 향한다. 선교사로 신분을 속인 부분부터 피터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는 어떻게든 광주로 향하고 그곳의 일을 알리기로 마음먹는다.
감독은 이 두 실존인물에게 서로 다른 캐릭터성을 입힌다. 한 명에게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진취성을, 다른 한 명에는 겉으로 강하게 드러나는 진취성을 말이다. 피터는 김만섭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인물이다. 그를 통해 김만섭은 샛길만을 찾아 도망쳐온 인생에서 큰 길에 부딪쳐 무언가를 바꿔보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가상인물. 황태술, 구재식, 최기자 그리고 검문소 중사
<택시운전사>가 비극을 대하는 자세는 훌륭하다. 절대 무겁고 우울하게 다루지 않는다. 무거운 소재를 무겁게 다룬다면 관객은 그 무게에 짓눌러 전하고자 하는 정신을 오롯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히려 무섭고 두려워 피하게 된다. 그래서 감독은 ‘사람냄새’가 풀풀 풍기는 배우들을 기용했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소시민 연기는 최고인 송강호를 비롯 유해진, 류준열 등의 배우들에게는 사람 냄새가 술술 풍긴다. 이들이 주는 친근함은 작품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광주 민주화 항쟁의 정신이 부드럽게 스며들게 만든다.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택시운전사들은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운송했다. 그들은 시위대의 앞에 서서 총알을 막아주기도 하였다. 이런 그들의 활약은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총에 맞아 쓰러진 부상자들을 지키기 위해 택시로 바리케이트를 치는 장면이나 광주를 탈출하려는 만섭과 피터를 도와주는 장면이 그런 부분이다. 황태술은 광주 택시운전수들의 수장 격으로 등장한다. 그는 인간성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는 피와 살이 튀기는 시위 속에서 따스함을 보여준다. 그의 느린 말투와 온정이 묻어나는 대사는 전쟁과 전투 속에서도 사람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미덕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구재식은 꽤나 인상적인 캐릭터다. 배우 류준열은 작품마다 캐릭터에 맞춰 자신을 다르게 표현할 줄 아는 배우다. 강한 인상의 외형과는 다르게 작품마다 풍기는 색깔이 다르다. 이 작품에서 그는 강한 의지를 가진, 그러면서 순박한 광주의 청년이 되었다. 당시 광주의 모든 시민들은 하나가 되어 계엄군에 대항했다. 왜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외친 걸까? 어차피 그깟 정신, 보이지도 않는 건데 가만히 숨죽이고 사는 게 최선이 아니었을까? 어땠든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아니, 그들에게 중요한 건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는 광복 이후 우리가 그토록 외쳤던 가장 큰 가치이며 동시에 인간된 권리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몸이지만 지배하는 건 정신이다. 재식은 이 민주주의가 가진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었고 그래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광주에서 발행된 신문을 보면 계엄군에 대한 이야기는 다 짤려 있다. 그들이 광주 시민들을 얼마나 죽였는지, 그들이 노인, 여자 할 거 없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는지는 실려 있지 않다. 그래서 광주 시민들은 신문사를 원망한다. 그리고 거짓된 방송을 내보내는 방송사를 증오한다. 최기자도 그런 오해를 사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광주의 진실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존폐의 위기를 겪기 싫었던 신문사는 이를 외면한다. 그래도 최기자는 노력한다. 언젠가 사실이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자신을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진실을 전하기 위해 발 벗고 뛴다. 가끔 우리는 누가 아군인지 그리고 적인지 헷갈려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를 구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끈기다. 적은 쉽게 포기한다. 굳이 욕을 먹으면서까지 가면을 쓰지 않는다. 자신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군은 끝까지 함께 한다. 약하니까. 자신도 약하기 때문에 약한 이들과 뭉치고 싶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인물은 결말부에 등장하는 씬 스틸러 검문소 중사다. 배우 엄태구가 연기한 이 캐릭터는 짧지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긴다. 한때 우리도 광주보다는 훨씬 덜하지만 비슷한 아픔을 겪은 적이 있다. 바로 의경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경찰은 과한 공권력을 행사하며 시위에 참여한 이들을 때려잡았다. 이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의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들은 시위의 최전선에 서서 시위대들을 잡는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들도 마음이 있다. 그래서 아프다. 어느 나라나 명령 체계는 견고하고 이를 깨는 행위는 반란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군인들은, 그리고 의경들은 따를 수밖에 없다. 모든 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살상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듯 모두 잘못된 명령을 따르는 건 아니다. 얼마 전 청와대에서 전 정권에서 다 폐기된 줄 알았던 문건이 발견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추측 중 하나가 정권에서 시키는 일에 불만을 품은 청와대 직원 중 하나가 문건을 일부러 폐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잘못된 일에 저항할 줄 아는 것,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그런 이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80년대의 광주, 9년의 대한민국
이 영화의 초반을 보다 놀란 게 하나 있다. 사우디에서 5년 동안 돈을 벌어온 만섭. 그 말에서 ‘대한민국 청년들을 모두 중동으로 보내겠다’는 어떤 분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80년대의 광주는 과거가 아니다. 광주의 정신이 오늘 날 대한민국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듯 그들이 저항했던 잘못된 정신 역시 오늘 날까지 살아있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백미러를 보는 장면이었다. 만섭의 뒤에 비친 백미러에는 최루탄 가스가 가득한 시위대와 계엄군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앞에 펼쳐진 광주 밖의 길은 형형색색 예쁜 연등이 달린 꽃길이다. 인생이란 게 그렇다. 뒤도 안 보고, 옆도 안 보고, 두 귀를 막고, 두 눈을 감고 앞으로만 향한다면 너무나 아름답다. 하지만 백미러 뒤의 조그맣게 보이는 어둠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세월호를 그리고 메르스를 너무 멀게만 느껴왔다. 공무원 연금 문제에는 공무원만의 문제라며, 직장인들의 연말 정산 문제에는 직장인들만의 문제라며, 프렌차이즈 기업들의 폭리와 골목상권 침범에는 자영업자들의 문제라며 편을 가르고 싸우며 등한시해 왔다. 그 사이 세월호가 터졌고 메르스를 잡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고 죽음을 폄하 당했다. 마치 아직도 빨갱이라 불리며 민주화 운동이 아닌 폭동에 불과했다 모함을 당하는 5.18 유족들처럼 말이다. 광주의 정신이 살아있듯 그 반대에 향하는 독재의 정신도 살아있다. 우리는 전두환을 겪고도 바로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뽑았으며 이명박을 경험하고도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난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덧붙이고 싶다. 올바른 정신을 잃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80년대의 광주는 단순히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9년의 대한민국에도 존재하며 어쩌면 미래에도 존재할지 모르는 문제다. 이 영화에서 자꾸만 <변호인>이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니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김사복의 도움을 통해 광주에서 찍은 영상은 세계로 퍼졌고 이는 우리나라로도 들어왔다. 부산에서 당시 노무현과 문재인 변호사는 이 영상을 상영했다. 이를 계기로 부산에서도 시위가 일어났고 이 바람은 전국으로 퍼져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 정신은 같다. 80년대의 광주와 2010년대의 촛불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영화에 열광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