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끄 베닉스, 레오 까락스 그리고 뤽 베송
누벨바그는 프랑스는 물론 '영화'라는 매체 그 자체에서 크나큰 업적을 이룩해냈다. 많은 젊은이들이 누벨바그 세대에 열광하였고 트뤼포와 고다르를 필두로 샤브롤, 를르슈 등의 거장들은 왕성한 활동과 색다른 영화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하지만 2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은 나오지 않았다. 프랑스 영화계는 색다른 감각을 가진 감독들을 찾아다녔고 그 중 세 감독이 그들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바로 '장 자끄 베닉스', '레오 까락스' , '뤽 베송'이 그 주인공들이다.
장 자끄 베닉스는 그 등장부터 특별했다. 그의 데뷔작 <디바>는 화려하고 강렬한 색체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베닉스는 강렬한 이야기를 전달함에 있어서 어떤 영화적인 금기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은 파격적이고 강하며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레오 까락스의 데뷔작 <소년, 소녀를 만나다>는 이후 레오 까락스 작품들이 가지는 이야기의 주제, 젊은이들의 좌절적인 사랑 이야기의 시작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독특한 촬영 기법과 내용구성은 물론 충격적인 결말과 세밀한 미장센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겨우 24살의 감독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뛰어난, 말 그대로 천재가 만든 작품이라는 칭송을 들을 만한 작품이었다. 뤽 베송의 데뷔작 <마지막 전투>은 배경을 알 수 없는 폐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을 다룬 작품으로 거침없는 표현과 뤽 베송 작품 특유의 폭발하는 에너지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까락스와 뤽 베송은 첫 작품에서 각각 드니 라방과 장 르노라는 자신들의 페르소나를 만나게 된다.
이들의 등장은 프랑스 영화계를 열광시켰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영상과 새로운 감성에 많은 영화인들이 마음을 빼앗겼다. 이 세 감독은 파격적인 화면구성과 폭발력 넘치는 에너지, 기존에 느끼기 힘들었던 독특한 감성을 전달하며 소위 '거장' 반열에 오르게 된다. 프랑스 영화계는 이들 세 감독을 묶어 '누벨이마주' 세대라 칭하였다. 그들은 누벨바그의 뒤를 이어 프랑스 영화계를 이끌어갈 거처럼 보였고 새로움에 목말라 있던 영화팬들의 큰 기대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그들을 대표하는 대표작들을 내놓게 된다.
장 자끄 베닉스는 '격정적인 사랑의 결정판'에 가까운 전설적인 작품 <베티 블루>를 만든다. 이 작품은 한때 포르노 작품으로 오인을 받았었는데 그 이유는 작품에 스토리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마치 포르노 영화처럼 말이다.) 실패한 작가와 그의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강렬한 원색이 주는 색체의 이미지와 지나치게 끈적하고 육감적인 연인의 사랑이 인상적인 영화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건 '사랑'이 가지는 가장 격렬한 행위와 감정이 카메라와 색체, 그리고 인물들의 육체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레오 까락스는 아주 독특한 '미래 멜로영화' <나쁜 피>를 선보인다.(개인적으로 <더 랍스터>와 함께 아주 독특한 감성을 전달하는 멜로영화라고 생각한다.) 사랑 없는 성관계시 전염병에 걸린다는 독특한 설정의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엇깔린 연인들의 모습, 까락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뤄지지 않는 사랑의 비극'을 아주 재밌고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다. 뤽 베송은 <그랑블루>를 통해 영상미의 절정을 보여준다. 그의 이 작품 역시 스토리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막말로 대략적인 줄거리만 읽고 자막없이 봐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심해'라는 공간과 두 명의 잠수부를 통해 그들이 가지는 감정과 좌절,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열정을 다룬 이 작품은 참 독특하고도 상상을 초월하는 경이로운 감정이 들게 만든다.(특히 돌고래들이 나오는 상상씬은 진짜...) 뤽 베송의 이 영화는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것'을 추구했던 영화 팬들에게 아주 큰 선물을 선사해주었다.
누벨 이마주라 불리었던 세 감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누벨 이마주를 끝내게 된다. 장 자끄 베닉스는 기존의 색깔을 지키지 못하고 이후 베닉스 답지 않은 작품들을 내놓는다. 그는 <모탈 트랜스퍼(2000)> 이후 신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이 작품 역시 <코끼리의 섬(1995)> 이후 간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베닉스는 더 이상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관객들을 열광시켰던 본인의 스타일을 내세우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그는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에 뉴커런츠부문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레오 까락스는 <퐁네프의 연인들>의 실패가 컸다. 그의 '사랑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이 영화는 이미 '거장'에 오른 그의 명성 때문인지 어마어마한 투자를 받았다.(당시 이 영화의 촬영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엄청난 흥행실패를 기록하고 영화사는 도산하게 된다. 까락스 감독은 추종자들에 의해 엄청난 지지를 받았으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다.(하지만 영화는 정말 좋다... 개인적으로 다들 꼭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다.) 이후 까락스는 스스로 소통의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폴라 X>는 완전히 소통을 거부한 듯한 영화로 앞서 작품의 흥행실패와 함께 '까락스 시대'의 끝을 의미했다. 아직도 그는 거장으로 추앙받지만 예전과 같은 명성을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뤽 베송은 사실상 누벨 이마주의 마지막 작품인 <레옹>을 만든다. 고독한 킬러와 부패경찰에게 부모를 잃은 소녀의 만남을 다룬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 후 뤽 베송에게 '새로움'이라는 것은 사라지게 된다. 그는 이후 작품인 <제 5원소>에서 자신의 페르소나였던 장 르노와의 작별을 고한다. <잔 다르크> 이후 그는 감독보다는 제작자로 변신하며 흥행가도를 달린다. 동시에 '감독 뤽 베송' 보다 '잘 나가는 제작자 뤽 베송'의 이미지가 강해지며 사실상 막강한 부를 손에 넣게 된다. <레옹>은 뤽 베송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줌과 동시에 더 이상 영화에 대한 고민이 없게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 후 뤽 베송 작품의 새로움은 존재하지 않으며 락 음악과 아스트랄한 촬영을 동반한 특유의 역동적인 스타일 역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어찌 생각하면 '누벨 이마주'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과거 누벨바그 세대들은 교류를 통한 소통이 있었고 영화를 향한 공통된 활동과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누벨 이마주 세대는 서로간의 교류라는 것이 없었으며 그들의 스타일은 각자 다른 자신 고유의 것이었다. 아쉬운 점은 이 세 감독이 계속 성공을 거두었다면 누벨 이마주 이후의 세대와 함께 프랑스 영화계의 전성기를 이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장 자끄 베닉스가 여전히 자신의 스타일을 과시하고, 레오 까락스가 좀 더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져오며, 뤽 베송이 영화라는 것에 계속된 고민을 했다면 장 삐에르 주네(<아멜리에>와 <델리카트슨 사람들>의 그 감독)와 마티유 카소비츠(<증오> 이후 별다른 작품이 없지만 이 작품의 등장은 참 강렬했다.), 자크 오디아르(자크 오디아르는 누벨 이마주 세대와 비슷할 때 데뷔했으나 그가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다. 대표작으로는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이 작품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많이들 모르는 게 좀 아쉽다...), <예언자>가 있다.) 등의 감독들과 함께 프랑스 영화계의 전성기를 이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