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못하는 게 죄인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그때의 난 말더듬증이 좀 심했다. 초등학교 때는 별다른 말을 듣지 않아서 나 같은 사람도 있겠지 하면서 살았다. 변화를 겪은 건 도덕교사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더듬자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그거 안 고치면 진짜 큰일난다. 너 사람 노릇도 못하고 살아.” 그때는 14살 애한테 뭐 저딴 소리를 하나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에 있어서 참 중요한 순간이었다.


우리의 마음에는 가설 검증 바이어스라는 게 있다고 한다.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걸 증명하는 정보면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맞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쉽게 잊어버리는 현상을 뜻하는 용어다. 대표적인 게 커뮤니티다.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해당 커뮤니티의 정보나 의견만을 신뢰하며 이것을 진리라 생각하고 살아간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실험이 사회심리학자 스나이더 스완의 26가지 질문이다.


스나이더 스완은 대학생들에게 자신들이 제시하는 26개의 질문으로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의 성격을 판단해 달라고 했다. 이들에게는 내향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을 증명할 수 있는 질문이 각각 26개가 주어졌다. 그중 성격판단에 도움이 되는 질문 12개를 선택하라고 했는데 이들은 한쪽에 편향된 질문을 선택했다. 먼저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일지 생각하고 이에 맞는 질문만 선택한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첫인상이다. 대중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몸과 피부에 많이 신경을 쓰고 단어선택과 어투에 주의를 기울이는 건 좋은 첫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다. 그 이유는 첫인상이 이 가설 검증 바이어스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 대해 한 번 박힌 첫인상은 잘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좋은 이미지만 연달아 보여준 배우는 한 두 번 사고를 쳐도 진정성 있는 사과 후 복귀할 수 있다.


반대로 비호감 이미지의 배우는 대중적으로 호감을 사지 못해 복귀를 한다 하더라도 금방 사라지게 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 느끼는 건 다르다. 누구는 뚱뚱한 사람을 보고 낙천적이고 푸근해 보인다고 좋아할 수 있고, 누구는 자기관리를 못한다며 싫어할 수도 있다. 다만 처음부터 상대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다면 이를 돌리는 건 쉽지 않다. 상대는 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부정적으로 입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 좀 못하는 건 죄가 아니다. 세상에는 말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참 많다. 요즘이 웅변을 필수로 가르치는 시대도 아니며 줄임말이 유행하고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걸 더 중시한다. 자신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억울할 일을 당할 때를 대비해 변호사가 있는 것이며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정치인의 달변에 반하는 게 아니겠나. 다만 말을 못하면 사는 게 정말 힘들다.


말을 못하는 사람은 부족하다는 인식을 받는다. 특히 첫인상에서 말이다. 학력이나 직업을 명찰로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닌 만큼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를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는 말이다. 물론 말을 잘하는 사람은 사기꾼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말을 더듬고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더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마련이다. 대화는 호감을 형성하는 다리가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말더듬증을 발음기관에 있어서의 병리적 상태나 중추신경계의 이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만약 이런 문제가 원인이었다면 스스로 고치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의 주된 의견은 개인의 인격적 장애라고 한다. 완전벽이 강한 모친이 어린이에게 과간섭을 하면서 그 영향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예의 바르고 순종적이며 청결한 아이가 되기를 요구당하면 그 긴장감이 말더듬증 현상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유치원 때부터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고 어머니가 동네 장사를 해서 항상 많은 압박을 받았다. 내 잘못이 아니어도 혼날 때가 많았고 항상 성적이 높아야 하며 동네 어른들한테 예의가 바라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압박 하나하나가 그때의 말더듬증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 항상 머리로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고민을 해야 했으며 말 한 마디로 혼나는 일이 많았기에 조심스러웠다. 내게는 어린아이의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일이 더 많았다.


만약 그때 그 심한 말을 듣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말더듬증이 이어졌을지 모른다. 정말 사람 노릇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다. 나를 어필해야 하는 일에서 말을 더듬는다면 그건 단점이 아닌 결점이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말더듬증을 의식했고 더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무언가를 의식하면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이란 걸 하게 된다. 자신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일수록 말이다.


인터뷰를 하고 방송도 할 수 있었던 건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고 누군가의 호감을 살 수도 있다는 자신감 덕분이었을 것이다. 만약 지금도 말을 더듬는 습관이 남아있다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모든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첫인상을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남에게 호감을 줄 요소를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노력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보일 수 있고 예상치 못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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