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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20세기> - 20세기의 그들은......

1945년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승전국들은 흔히 말하는 아버지 세대의 문화가 주류 문화로 올라서게 된다. 이들은 전쟁의 승자였으며 더 큰 영광과 권위를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 여기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아들 세대는 이들의 강압적인 문화에 반기를 들었고 주류 문화에 반기를 내걸었다. 60년대 비트 세대, 히피 문화, 영화계에서는 프랑스의 누벨바그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우리의 20세기>의 시점은 흥미롭게도 이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은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어머니와 아들이다.


이 작품에는 세 명의 여성과 한 명의 소년이 등장한다. 제이미는 전형적인 대항문화에 심취해 있는 소년이며 특히 밴드 음악에 심취해 있다. 그에게 어머니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어머니 도로시아는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다. 그녀는 2차 대전 당시 비행기 조종사로 지원했으나 차마 전쟁에 나가지 못했고, 남편이 죽으면서 홀로 아이를 키워왔다. 그녀는 아버지 세대의 억압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여성이지만 반항적인 아들 때문에 가정을 꾸리는데 고난을 겪는다. 그녀는 자신의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는 포토그래퍼 애비, 그리고 제이미의 친구인 줄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 영화가 시작되고 한 30분 정도 동안은 감탄했다. 느낌이 있었다. 각각의 인물들의 캐릭터가 확실했고 그들이 살아가는 ‘20세기’에 대한 고민이 잘 어우러졌다. 그래, 20세기와 21세기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20세기에는 문화적으로, 계층적으로 그리고 형태적으로 큰 격동기였다. 그래서 영화는 다양한 물음을 제시한다. 세 여인을 통해 진정한 페미니즘의 의미를, 제이미와 도로시아를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네 사람의 미래를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제이미와 줄리를 통해 성장의 의미를 보여준다. 만약 당신이 이 의미들을 다 캐치하고 여유롭게 마지막 진한 여운을 느낄 수 있다면 참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30분 후, 내가 이 영화에 실망한 이유는 내레이션 형식 때문이다. 처음에는 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자신이 하는 이 형식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레이션 형식만큼 캐릭터의 매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방식도 드물다. 자기가 자기 이야기를 하니까 자신의 매력적인 부분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는 내레이션이 많아도 너무 많다. 가끔 장편소설을 읽다 보면 캐릭터에 대한 설정을 설명해주기 위해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는 작품들이 있다. 인물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까지! 딱히 그 이야기가 내용 전개나 주제 의식에 중요한 부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설정에 열을 올리다 보니 지루함이 느껴진다. <우리의 20세기>는 적어도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장치를 택했다. 즉, 주제 의식의 거대화다. 네 명의 인물들과 시대를 통해 다양한 주제의식을 내뿜는 건 이 영화의 매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이 부분은 상당히 지루하고 힘들게 다가왔다.

차라리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에만 중점을 두었다면, 애비와 줄리는 서브의 역할로만 두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때로는 너무 광범위한 주제의식은 많은 이야기를 낳고 많은 이야기는 관객이 다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피로를 준다. 특히 작품이 택한 내레이션 형식은 이런 피로감을 더해주었다. 하지만 각각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진득했기에 결말부에 진한 여운이 남았다고 본다. 이 영화의 여운은 상당하다. 난 이 여운의 힘이 각각의 캐릭터에 대해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의 삶에 우리가 너무 깊이 관여해 버렸기에 생기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잘 모르는 친구가 전학을 가면 별 느낌이 없지만 친한 친구가 전학을 가면 며칠이고 생각이 나고 아련한 감성에 빠지는 그런 특별한 무기가 이 영화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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