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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아이피(V.I.P.)> Part 3

남과 북, 그 사이의 VIP

사진출처 - 민권연대


한때 대한민국은 북한에서 탈북 해 온 탈북자들을 정치적 선전도구로 적극 활용하였다. 이들은 TV에 나와 지금 북한의 실정을 이야기하며 북한 체제가 얼마 가지 않아 무너질 거라는 식으로 말하였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의 경우 기반이 전혀 없는 만큼 대한민국에서도 빈곤하게 살아가지만 북한 고위층의 경우 대우가 달라진다. 그들은 북한의 상층부의 생활에 대해 알고, 그들 체제에 대해 밀접하게 알고 있다. TV예능에 나와서 탈북자들이 하는 말과는 전혀 다른 ‘고급정보’를 알고 있을 확률이 높은 것이 그들이다. 특히 체제 선전에 있어 이들은 큰 도움이 된다. ‘봐라, 북한 고위층도 북한 체제에 염증을 풀고 남한으로 왔는데 그 아래 사람들은 사는 게 얼마나 더 힘들겠느냐’ 이런 선전은 냉전 시대, 서로의 체제를 물어뜯는데 열을 올렸던 시대에 많이 이용되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중국 식당의 북한 여종업원들이 단체로 탈북 한 사건을 두고 ‘기획 탈북’ 이야기가 나왔다.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국정원이 기획을 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진실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불과 일 년 전, 아니 현재까지도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체제 유지’를 위해 북한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브이아이피>의 중심 소재는 ‘기획귀순’이다. 국정원의 계획 하에 북한 고위층 자제를 대한민국에 귀순시키는 작전.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다 안다. 객관적인 자료가 있으니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훨씬 더 잘 산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그러니 북한을 부러워하고 북한처럼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존재하기 힘들다는 소리다. 그들이 핵으로 위협은 될지언정 체제적으로 위협이 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일부는 북한으로 언론 플레이를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북한 사상에 심취해 있고, 이에 휘둘러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는 무리가 있다는 말이 요즘도 통용된다. 북한의 유명인사를 귀순시키고 그를 통해 안보교육을 하는 ‘기획’은 여전히 효과적이며 위력이 있다 여기는 무리들이 있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기획귀순’은 절대 옛날 일이 아닌 시대를 잘 보여주는 소재다.

감독은 남북의 관계에 오직 ‘남과 북’만을 포함시키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해야 될 인물은 폴이다. 그는 김광일의 기획귀순을 제안했던 인물이다. 중국의 북한 계좌를 노리고 그를 입국시킨 인물인 그인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중요한 인물을 왜 미국은 본국이 아닌 남한에 둔 것일까?’ 폴은 말한다. 김광일이 뉴욕 한복판에서 살인을 저지르면 이는 묻을 수 없는 일이 된다고. 하지만 서울에서 살인을 저지르면 이는 한국 정부에서 충분히 숨길 수 있는 일이라고 말이다. 어느 국가나 자국민의 안전이 일 순위며 국가는 이를 위해 존재한다. 사회계약설에 기초한 국가의 형태에서 ‘안보’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영원한 우방국 미국이라는 착각 속에 국정원 요원 박재혁은 김광일이 그저 ‘사고 좀 친’ 인물 정도라고만 생각한다. 그가 이렇게 잔인하고 병신 같은 싸이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방국 미국이 안전을 맡긴 인물이니까. 


북한이 원하는 건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화다. 미국이 북한과 직접적으로 대화를 하게 되면 그 순간 대한민국의 존재 가치는 희미해진다. 우리가 북한과 대화 채널을 가지려고 애쓰는 이유는 북한과 연결되는 채널이 없으면 북한과 미국이 자기들끼리 무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브이아이피>는 지난 9년의 대북 외교가 얼마나 개판이었는지를 풍자하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북한(김광일)과 미국(폴)이 자기들끼리 거래를 하는데 그 속에서 한국(박재혁)은 당하기만 한다. 위험이 닥쳐도 정보가 없으니 해결할 힘이 없다. 이 작품에서 일어나는 살인의 궁극적인 범인은 김광일이 아니다. 그가 여자만 보면 미쳐 발광하며 살인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국정원에 넘긴 폴이 진짜 범인이다.

<브이아이피>는 범죄 스릴러+느와르가 줄 수 있는 재미 대신 후반부의 정치 드라마를 통해 동력을 추구한다. 이는 감독이 흥미위주의 이야기가 아닌 스토리를 통해 대한민국과 북한, 미국의 잘못된 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 VIP는 북에서 온 귀한 정보를 가진 김광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6.25전쟁 이후 아직도 냉전을 지속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빨대를 꽂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북풍을 통해 국회의원이 되는 사람들, 북한과의 관계를 더 악화시켜 무기를 비싼 값에 팔아먹는 사람들, 체제 선전을 위해 탈북자들을 이용하고 그들의 사상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현실을 이용해 한국의 VIP가 되었다. 


이 작품은 철저하게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래서 스토리도 장성택이 권력을 잃어버린 시점이 시작이며, 이후 김정일의 죽음과 장성택의 복권이 반전 비슷하게 작용한다. 이후 결말에서 장성택의 숙청 이후 북한의 상황이 김광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단순히 북한에서 온 연쇄살인범이라는 기획귀순의 소재를 넘어 북한의 상황, 그리고 한국의 현실과 미국의 교묘한 술책을 동시에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올해 나온 작품들 중 ‘시나리오’적인 면에서는 정말 칭찬을 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하지만 <대호>에서도 드러났듯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이야기에 완벽하게 담아내는 재주는 아직 더 가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생각하는 것이 독특하고 그 독특한 생각이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는 맛이 있다. <브이아이피>는 스토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구성이 아쉽다. 배우들 간의 케미가 살아나지 않으며 이야기라는 것이 섞여야 하는데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 너무 강하다. <대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해 아쉬움을 가져왔다면 <브이아이피>는 전체적인 이야기는 잘 드러났으나 그것을 매력적으로 포장하는 기술이 아쉬웠다. 만약 좀 더 매무새를 깔끔하게 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면 좋은 작품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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