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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자작] 현지: 두 번째 악몽

2화: 두 번째 악몽

 

그날 이후에도 남편은 계속 악몽에 시달렸어요. 침대와 베개를 바꾸고 방도 옮겨봤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한밤중에 소리를 질러대서 저도 몇 번이나 깼는지 몰라요. 무슨 꿈을 꿨냐고 물어보면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답해요. 너무 끔찍해서 잠을 잘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요. 저도 남편도 출근하면 꼬박꼬박 조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어요. 그이는 직장에서도 몇 번 소리를 질렀다고 해요. 


결혼 이후 처음 각방을 쓰기로 했어요. 저도 더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다 보니 미안하지만 둘 중 하나는 살아야 되지 않겠냐고 남편한테 말했어요. 그이 표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서로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이러다가 나도 죽겠다고 하니까 자기가 현관에서 자겠다고 하더라고요. 남편도 예민해진 상태라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더 말을 걸기 힘들었어요. 눈은 붉게 충혈 되고 몸은 초등학생처럼 작아졌어요. 손짓으로 저를 보내고 작은 목소리로 계속 욕을 내뱉는 모습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더라고요.


7년 동안 매일 밤을 함께했어요. 신혼 때는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일상이 되어버린 거 있죠. 세던 양을 도망가게 만들던 그 사람 숨소리가 어느 순간 자장가처럼 들려서 잠 들길 기다리게 되었답니다. 카페인이 없으면 아침이 피곤한 거처럼 남편이 없으니 정신이 맑아졌어요.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잠이 오지 않아 현관에 나가보니 그이가 천장을 보고 멍하니 있더라고요. 들어와서 자라고 하니 몇 번 깼대요. 그리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절 쳐다보고 말했어요.     


-당신, 우리 신혼여행 갔던 호텔 기억해?     


저희는 여수로 신혼여행을 떠났어요. 해외로 가고 싶었는데 남편이 비행기를 못 탄다고 해서 국내여행을 떠났지 뭐예요. 이명 증세 때문에 운전면허도 없어서 제가 렌트카를 몰았어요. 뭐, 그 이명이란 게 나타난 걸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요. 호텔이라고 잡은 곳은 모텔이나 다름이 없었어요. 이름만 그럴싸하게 지은 그저 그런 곳에서 3박 4일을 보냈어요.     


-그때 내가 잠시 사라졌었잖아. 나, 그때 기억이 난 거 같아.     


3일째 되는 날이었어요. 남편은 해물라면을 시키더니 갑자기 술이 당긴다며 소주를 혼자 4병 마셨어요. 그렇게 취한 후에 숙소에 돌아와 잠만 잤어요. 저 혼자 카페투어를 다니다 엄마, 아빠, 친구들한테 다 전화를 돌리고 올라와 보니 그이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날 당신이 실수를 하나 했어. 냉장고에 물이 떨어졌는데 채워두지 않은 거야. 목에서 갈증이 타올라서 전화를 걸었는데 계속 통화 중이더라. 그래서 문을 열고 나갔는데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었어. 그래서 비상구 계단으로 내려갔는데, 당신 기억하지? 거기 호텔, 분명 엘리베이터 번호에 4층이 없었잖아. 그런데 4층이 떡하니 보이는 거야.      


또 그 쓸데없는 호기심이 발동했구나. 우리의 첫 만남도 그랬습니다. 대학교 뒤편 넓은 녹지 뒤에 아무도 가지 않는 목욕탕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이는 함께 가자며 제 손을 잡아당겼습니다. 그때 판도라가 남긴 유전자가 제게 없었다면 하나의 길이 삶이란 선택지에서 지워졌을 겁니다. 나침반을 보기도 전에 나타난 안내자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문을 여니까 어두운 복도 양옆으로 위치한 방들 문이 모두 열려 있었어. TV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객실 불은 다 환하게 켜져 있더라. 가장 가까이 있는 방 안을 살짝 들여다봤는데 나체에 대머리인 사람들이 라면? 냉면?을 먹고 있었어. 이 사람들 눈이 좀비처럼 동공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게 약이라도 한 거 같더라고. 가까이 다가가서 뭘 먹나 보니까 라면보다는 국수에 가깝고 국물이 빨간색이더라. 저기요? 이봐요? 몇 번이고 말을 걸어도 그 사람들은 먹기만 하고 대답이 없었어. 다음 방, 그 다음 방도 같은 장면이 반복됐어. 똑같은 공간, 똑같은 식사, 똑같은 사람들. 계속 젓가락으로 그릇에서 끝없이 나오는 면만 먹었어. 마지막 방에서 나오는데 양갈래 머리에 히틀러 수염을 한 여자아이가 나타났어. 그 아이는 나한테 삿대질을 하면서 말했어. 아저씨는 보면 안 되는 걸 봤다고.      


그리고 남편은 물었다고 합니다. 그게 뭐냐고요. 여자아이는 수염을 쓰다듬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고 해요. 사람으로 만든 국수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냐고요. 고명으로 올라간 손가락과 눈알을 보지 못했냐고요. 고명을 먼저 먹은 하얀 인간들에 대한 감사함과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면서 다시 물었대요. 저들은 누구고 왜 여기서 인간국수를 먹고 있냐고요. 흉측한 소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답니다. 인간이 아니니까 먹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간의 고기가 향하는 곳이 지옥 말고 어디가 있냐며 칠판을 긁는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고 해요.      


-그때 너무 무서워서 주저앉았어. 헌데 내 엉덩이 아래에 언제 나타났는지 벤치가 있는 거야. 그 위에 털썩 주저앉으니 그 아이가 옆에 와서 물었어. 지옥에 온 이유가 뭐냐고. 혹시 신부를 찾으러 온 거냐고.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겠어. 아, 당신이 납치당한 거구나. 내가 여기를 발견하고 들어온 이유가 있었구나. 그래서 그 아이 어깨를 잡고 다그쳤어. 당신을 내놓으라고 소리쳤어.     


역시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 가겠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열혈 콘텐츠 소비자의 망상이겠지. 요즘 히어로나 좀비영화를 보면 그 존재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지 않아도 다들 알잖아요. 남편이라면 식인이 벌어지는 현장에서의 탈출보다 본인이 지옥에 빠진 신부를 구하려는 용사가 되는 걸 더 꿈꿀 만도 합니다.   

   

-아이는 겁을 먹고 도망쳤어. 따라가기 위해 일어서려는데. 엉덩이가 벤치에 딱 붙어버렸지 뭐야. 바지를 벗으려고 해도 살이 붙어버린 거라 소용이 없었어. 아, 나도 국수가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 거 있지. 그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호텔 프론트에 전화를 걸었어. 여기가 악마의 소굴이라면 혹 거래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거든. 한 남자직원이 와서는 곤란한 표정을 짓더라. 이 층은 고객님한테 서비스 되지 않는다며 추가요금을 받을 수도 없으니 다른 걸 지불하라는 거라.      


그게 뭐였는데?     


-내 피와 살. 혹시 목숨이 담보라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하더라. 정확한 내용을 물어보니 계약서를 보여줬어. 사인을 끝마치니 직원은 칼을 꺼내서 바지 위로 내 엉덩이 살을 잘랐어. 놈이 준 수건을 꽉 물고 있었는데 끝나고 나니 온 이빨이 흔들리더라고. 그리고 부축을 받아서 다시 객실로 돌아왔어. 엉덩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고를 가득 발라주면서 다시는 어디서도 신부를 찾는다는 말은 하지 말라더라. 곤히 잠들어 있는 당신을 보다가 통증이 멎었어. 그리고 정신이 몽롱해지더니 점점 이 모든 일이 술에 취해서 본 망상이라고 여겨지는 거야. 그 직원한테 히틀러 콧수염을 한 아이는 누구냐고 물었는데 내 신부라고 답했거든. 기억 속 잔해들이 뭉쳐 만든 인공 섬에 갇힌 거라 여겼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남편은 바지를 벗었습니다. 납작해진 엉덩이를 가리키며 다음으로 기억에 각인된 악몽, 두 번째 꿈에 대해 말했습니다.    

 

-우리 엄마한테 들어서 알겠지만 나 어렸을 때 몽유병이 있었어. 학교에서도 몇 번 갑자기 사라져서 경찰이 온 적도 있고. 그때마다 발견한 사람은 달랐는데 장소는 매번 같았대. 아파트 뒤편 통행로로만 사용하는 공터. 거기 나체로 잠들어 있었다고 해. 그때마다 굉장히 기분 좋은 꿈을 꾸었어. 몸이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녹는 꿈. 형상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감촉이 깨어난 후에도 계속 남아있었어. 그래서 몽유병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어. 이사와 함께 잠은 밤에만 청하게 되었을 때 부모님은 기뻐했고 나는 슬퍼했지. 

방금 당신이 나오기 전까지 8번 꿈을 꾸었어. 그중 기억에 남은 건 두 개 뿐이고. 웃기지도 않은 게 기억이란 놈이 원래 그렇잖아. 80년을 산다고 가정해도 온전히 기억에 남은 순간은 8가지가 넘지 않을 걸? 앞서 말한 게 3번째로 꾼 꿈이라면 이건 마지막이야. 

그 꿈에서 난 초등학교 때로 돌아갔어. 그리고 콧수염 여자아이를 다시 만났지. 그 아이는 내 손을 잡아당겼어. 저항하는 내 영혼을 때리고 괴롭혀서 끌고 갔지. 거울을 보니 눈을 감은 채 혼자 걸어가는 내 모습만 보였어. 그렇게 팔 사이에 머리가 끼인 난 공터로 잡혀갔어. 그곳에서 망할 히틀러 수염은 어린 아이 옷을 벗겼어. 내 성기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강제로 관계를 맺었고. 싫다고 울면 귀에 대고 속삭였지. 너도 방에 갇혀서 국수만 먹고 싶어? 난 그 애가 무서웠어. 그 짙은 눈썹과 표독스런 입술, 듣기 싫은 신음소리까지. 그래서 즐겁다고 최면을 걸었어. 그 주문에 빠지지 않으면 내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국수가 되어버릴 거 같았으니까.     


남편의 엉덩이에는 잘린 흔적이 없었어요. 살이 빠져서 볼륨감이 빠졌을 뿐이라고 위로를 했습니다. 다시 푹 잠을 자게 되면 다 나아질 거라고 다독여줬어요. 남편이 말했던 호텔은 나이든 부부가 둘이서 운영하는 곳이에요. 프런트 직원은 항상 여직원이었고 객실청소는 외국인이 해 왔다고 합니다. 남자 직원을 고용한 적이 없대요. 사장님께 사정을 설명하니 영상통화를 걸어 직접 비상구 계단을 걸으며 4층이 없다는 걸 남편한테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당시 병원 기록을 찍어서 보내주셨어요. 나체로 발견된 아들이 걱정되어 병원검사를 했는데 성범죄 관련 의심할 만한 소견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해요. 그리고 몽유병.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몽유병은 꿈을 꿀 수 없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 있다는 제 말에 남편은 화를 냈습니다. 당신부터 내 말을 믿어주지 않으니 더 답답하다며 가슴을 쳐댔습니다.      


-당신이 기억 못하는 거야! 당신이 다 까먹은 거라고! 그러니까 코 골면서 잘 자는 거겠지. 꿈이 없으니까 당신이 행복한 거야.     


남편의 저주 때문인지 그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신혼여행 당시 묵었던 여수의 호텔방. 프론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술냄새를 풍기는 남편은 옆에 누워 있었고 짐을 쌀 때 없었던 바지를 입고 있었어요. 수화기를 들으니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모님, 저희 호텔에서 야식 메뉴가 제공되는데 혹시 생각이 있으신가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메뉴는 사장님 엉덩이 살로 만든 국수입니다. 손가락과 눈알이 고명으로 들어가니 생각 있으면 4층 식당으로 내려오세요.     

뚝 전화가 끊어짐과 동시에 남편을 보니 손가락과 눈알이 없었어요. 전 4층으로 내려갔고 불이 켜진 한 방에 들어가 게걸스럽게 빨간 국물의 국수를 먹어치웠습니다. 이건 기억의 재생일까요, 아니면 망상의 시작인 걸까요. 약지보다 짧은 남편의 중지를 보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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