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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자작] 현지: 세 번째 악몽

3화: 세 번째 악몽

지난번에 글을 올린 후 정말 많은 댓글과 쪽지를 받았어요. 남편 문제에 대해 우려와 격려, 다양한 조언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에요. 안타깝게도 남편은 계속 잠을 잘 청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매일 퇴근 후 2시간씩 운동을 하고, 취침 전 뜨거운 욕조에서 목욕도 해보고, 수면에 좋다는 향초도 피워봤지만 나아지지 않았어요.

무당에 대해 언급한 분들도 계셨는데 저희 부부가 둘 다 무교랍니다. 때문에 종교적으로 접근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남편도 저도 부정적이라 신점을 보거나 굿을 하는 일은 없을 거 같네요. 어머님께서 부적을 주셨는데 남편한테 말하지 않고 버렸어요. 피곤한 사람 더 귀찮게 만들어 봐야 좋을 거 없잖아요.

병원에는 조만간 가 보기로 했어요. 남편은 학창시절에 정신과를 오래 다녔다고 해요. 본인 말로는 집에서 성적 압박이 심했대요. 대학에 진학한 후에 벗어났다면서 큰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치료를 받는 것보다 심리적 요인을 찾아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지금 문제가 뭔지 본인도 모르겠답니다. 딱히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고 사이가 안 좋은 사람도 없다고 하니 저도 남편도 주변 사람들도 다들 답답해 죽을 노릇이에요.

생각해 보면 남편과는 크게 다툰 적이 없어요. 욕심이 크지 않은 사람이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에 경계가 분명하거든요. 다만 글을 쓰던 사람이라 그런지 예민한 구석이 좀 있어요.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윗층과 심하게 다투었어요. 한 1년 정도 지났을 때 그이가 망치를 들고 올라가 윗층 문을 세게 내리쳤어요. 저희가 이사를 가는 조건으로 원만하게 합의가 이뤄지긴 했는데 솔직히 층간소음이 심한 편이 아니었거든요.


신혼부부 청약이 좋은 지역에 당첨되었고 양가 부모님이 많이 보태주신 집이라. 예민한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왜 저렇게 과격한 행동을 하나 실망스럽기도 해서 심하게 싸웠어요. 그때 한 번 서로 언성을 높인 이후 또 그럴 일이 없을 줄 알았어요. 남편이 변하기 전까지 말이죠.     


-나 일 그만뒀어. 몸 좀 나아지면 다른 곳 알아볼게.     


직함만 소설가일 뿐 백수생활을 하던 남편은 3년 전부터 창고관리자 일을 시작했습니다. 몸이 힘들어도 다들 참고 하는 게 직장생활이잖아요. 그 지겨운 무책임과 나태함을 꼬집었더니 제 앞으로 다가와 삿대질을 했습니다.     


-당신이 뭘 알아? 뭘 안다고 지껄이냐고! 나도 일 할 줄 알아. 직장생활도 3년이면 오래 한 거야. 그리고 내가 그만둔 건 힘들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야. 씨발, 그 창고가 무서워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남편은 같은 꿈을 5번 꾸었다고 합니다. 꿈속에서 눈을 뜨니 직장이었다고 해요. 여느 때처럼 창고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한 노파가 나타났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기 밖에 없어서 그 뒤를 따라갔다고 해요.      


-할머니,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     


축지법이라도 쓸 줄 아는 건지 이리저리 창고 안을 돌아다니는 노파를 따라잡느라 있는 힘껏 뛰었다고 합니다. 한참 달리다 팔을 잡고 보니 주변이 어둠으로 가득했다고 해요.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공간이동을 한 거처럼 말이죠. 잠시 후 원형으로 자리 잡은 촛불에 불이 들어오더니 그 뒤로 15m는 족히 넘을 거 같은 네 개의 동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동상 속 얼굴들은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 같기도 하고, 인간을 노리는 악귀처럼 보이기도 했다고 해요. 그들 각자의 배 부분에는 熱(열) 火(화) 地(지) 獄(옥)이 한 자씩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파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꽉 잡았던 팔목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이마에 뿔이 달리고 눈이 찢어진 도깨비가 손에 방망이를 들고 자신을 노려봤답니다.     

 

-넌 죽어야 해. 죽어야 한다고!     


도깨비 얼굴로 변한 노파를 피해 도망치던 중 촛불이 갑자기 불기둥이 되어 타올랐다고 해요. 순식간에 사방에 불길이 번져 원 안에 갇혔다고 합니다. 그 열기에 감각을 잃은 사이 방망이가 뒤통수를 내리쳤다고 해요. 계속되는 방망이질에 머리가 터져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흘렸다고 합니다. 동상이 점점 붉어지는 게 눈으로 피가 튀어서 그런 것인지 내 피를 먹어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며 몸을 떨었습니다.

따뜻한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신 남편은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노파는 남편의 몸을 접어 상자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둠이 눈앞을 가렸다고 해요. 몇 초 또는 몇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눈을 뜨니 창고 천장이 보였다고 합니다. 눈이 하나씩 달린 세 여자가 상자에서 그이를 꺼내 구겨진 몸을 펼쳤다고 합니다. 흉측할 정도로 깡마른 체형의 세 여자는 기다란 손톱에 날카로운 이빨을 지니고 있었다고 해요. 그들의 이마에는 食(식) 貪(탐) 慾(욕)이 한 글자씩 새겨져 있었답니다.     


-이제부터 죽고 싶어질 거야.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는 고통이 무엇인지 보여줄게. 앞으로 매일 죽음을 소원으로 빌게 만들어줄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     


그들은 남편의 팔다리를 대자로 묶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손톱을 이용해 살을 회처럼 쳤다고 해요. 그렇게 잘라낸 남편의 살은 상자에 가득 담긴 후 ‘구이용’이라는 스티커를 붙였다고 해요. 살이 다 벗겨져 뼈가 드러난 몸은 기름이 펄펄 끓는 커다란 가마솥 안으로 던져졌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튀김옷을 벗긴 뒤에 재생된 살을 다시 잘랐다고 합니다. 그 과정이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반복되었다고 해요. 가마솥에서 탈출한 지금도 몸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거 같다며 미간을 찌푸렸어요.     


-창고만 가면 온몸이 다시 불타오르는 거 같아. 상자 안에 정말 내 살이 가득 차 있을 거 같다고. 그런데 어떻게 계속 일할 수 있겠어. 당신은 내가 죽길 바라는 거야? 진짜 머리가 터지거나 살이 다 벗겨져서 황천길 건너길 바라는 거냐고.      


그건 꿈일 뿐이잖아! 당신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인신매매 조직과 연관된 적이 없었잖아. 시골에서 소일거리 하면서 조용히 살던 분들을 당신 꿈은 흉악범으로 만들었어. 여름방학 때 손주만 기다리면 그 순수한 마음을 악마의 속임수로 바꾼 게 당신의 그 뇌라는 녀석이라고. 망상에 속아서 현실까지 버린다는 게 너무 무책임하지 않아?     


-무책임하다니. 그거야 당신 망상이지. 다른 아내들 같아봐. 남편이 죽겠다는데 누가 일을 보내? 누가 돈 벌어오라고 등을 떠 미냐고! 내가 당장 일하지 않으면 우리가 굶어죽어? 내가 쉬면 가정이 망하기를 하냐고! 내가 집에서 쉬는 게 꼴 보기 싫어서 그러는 거잖아.      


매일 밤 당신 비명소리 듣고 달래준 게 누군데. 내 돈으로 베개에 침대에 당신 돈으로 사지도 못할 거 다 바꿔줬어. 당신 피곤하다니까 목욕도 시켜준 게 나라고. 그런데 뭐? 매일 무섭다고 칭얼거리는 다 큰 아기 돌봐주고 있는 난. 정말 1초라도 한 적 있어? 난 매일 당신 생각해. 그러니까 이 엿 같은 상황 속에서도 곁에 있는 거라고.     


-근데 왜 못 가게 하는 건데? 왜 못 가게 하는 거냐고! 당신은 날 숨 막히게 해. 스스로를 평강공주라 생각하고 내가 바보 온달이 되길 바란다고. 제발 날 좀 보내줘. 제발 남편 좀 살 수 있게 보내달라고!     


질긴 투정에 트리거를 자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첫 만남. 남편이 매일 사과를 했던 그때를 말이죠. 그때 전 졸업반이었습니다. 남편은 미래를 결정하지 못해 휴학을 반복하던 복학생이었고요.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면 제 눈에서는 눈물이, 남편의 입에서는 헛웃음이 나옵니다. 그 순간을 봉합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시간을 동상이몽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 우리 엄마아빠가 침묵한 순간이 있다면 그때겠지. 당신 앞에서는 한 번도 그 이야기는 한 적이 없으니까. 말이 나오겠다 싶으면 화제를 돌렸으니까. 우리 그래도 잘 지냈잖아. 내가 좀 무책임란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노력했잖아. 내가 잘 해볼게. 다시 잠들 수 있게 노력해 볼게. 그러니까 현지야, 기분 풀어.      


남편은 알까요. 당신의 몸이 내 꿈속에서 몇 번이고 부셔졌다는 걸. 전기톱으로 온몸을 토막 내고 잭나이프로 피부를 다 벗겨냈다는 걸. 한 번은 이마를 드릴로 뚫어 뇌 안에 개미를 집어넣은 적도 있습니다. 남편의 몸을 식량삼아 살아가는 개미들의 왕국을 박물관에 기증해 전시된 걸 관람하기도 했죠. VR 게임을 하는 듯한 그 쾌락은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날 때마다 로그아웃 되었습니다. 결말은 항상 같았습니다. 남편은 해맑은 미소로 제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어때, 자기야. 이제야 좀 분이 풀려?     


어쩌면 남편이 꾼 꿈은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남편을 죽인다면, 그 머리가 수박처럼 사방으로 튀는 걸 보게 된다면 제가 어떤 행동을 할지 아니까요. 입꼬리가 광대뼈로 올라갈 때까지 웃을 겁니다. 정신을 잃고 실금을 할 때까지 웃음소리를 멈추지 않을 겁니다. 이승을 떠나는 그이의 영혼이 BGM으로 이 소리를 듣고 다시는 인간으로 환생하지 못하게 목이 터져라 소리쳐 꿈이 아님을 각인시켜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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