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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괴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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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자작] 현지: 첫 번째 악몽

1화: 첫 번째 악몽

첫 번째 악몽     


남편은 어린 시절 여름방학 때면 시골에 갔다고 합니다. 그곳이 어디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요. 자기가 찾아보고 간 곳만 기억하는 게 남편 특징입니다. 함께한 여행도 제가 가자고 한 곳은 기억 못해요. 

역에서 내리면 1시간은 차를 타고 들어가야 했는데 그때마다 노곤노곤 잠이 왔다고 해요. 소똥 냄새도 정겹게 느껴지는 마음의 고향 같아서 갈 때마다 마음이 설렜다고 하더라고요. 주변이 수풀로 가득한 담장 낮은 집에 가면 강아지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면서 반겼다고 해요.


한 마리는 백구였고 다른 한 마리는 황구. 마루에서 강아지들과 놀다 보면 할아버지가 식혜를 가지고 왔대요. 할머니랑 방에서 TV 보면서 이런저런 담소도 나누고요. 할머니는 6.25 때 월남했던 이야기를 자주했다고 합니다.     


-내가 오는 날이면 꼭 삼계탕을 해줬거든. 내가 닭껍질을 정말 싫어해서 꾹 참고 먹느냐고 힘들었어. 당신도 알잖아. 나 닭볶음탕도 싫어하는 거. 처음에는 치킨 먹고 싶다고 졸라보기도 했는데 하지 말라고 해서 포기했어.     


누가? 누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누구긴 누구야. 엄마겠지.      


엄마겠지 라니. 당신 기억이잖아.     


-내가 좀 이기적이라 그런가? 직접 찾아서 간 곳 아니면 기억이 흐릿해. 신혼여행도 당신 아버지가 보내줘서 그런지 사진을 봐야 아~ 우리가 여기 갔었구나 기억이 나더라.      


그럼 사진 봐봐. 당신 어린 시절 앨범 있잖아.      


-근데 그때 찍은 사진이 없을 거야. 당신도 본적 없잖아. 안 그래?     


기억을 더듬기 싫어 앨범을 가져왔습니다. 남편 사진은 대부분이 아파트를 배경으로 찍은 겁니다. 연진 아파트라는 5층짜리 건물에서 21년을 살았다고 해요. 그 기간 동안 사진 속 남편은 같은 포즈로 몸과 얼굴만 점점 커졌습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어색한 미소를 지은 게 누가 봐도 김진석 입니다.      


-봐봐, 없잖아. 누가 사진을 찍어줄 수 없었다니까. 늙은 분들이 카메라가 있었을 리도 없고. 거기 완전 깡촌이었어. 주변에 수풀 밖에 없었다고. 땅도 어찌나 흔들리던지. 갈 때마다 멀미가 다 났다니까.    

  

역에서 당신을 데려다 준 사람이 있었잖아. 엄마가 아니어도 친척 누가 데려다 주었을 텐데 그 사람이 사진 한 장 안 찍어줬어?     


-참, 신혼여행 때도 느꼈지만 당신은 사진에 너무 집착해. 렌즈가 아니라 눈으로 추억을 담으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나 데려다 준 사람 없었어. 역까지 가는 것도 나 혼자 갔는데 무슨.      


그럼 어떻게 간 거야? 히치하이킹이라도 했어? 어린 아이가 무슨 수로 차로 1시간 걸리는 거리를 혼자 가?     


-그러게. 어떻게 혼자서 간 거지.      


그리고 당신, 갈 때마다 차에서 잠들었다며. 근데 멀미 이야기는 또 뭐고.      


-맞아. 잠에 들었어. 기억이 몽롱해. 아니, 몽롱한 채로 걸었어. 아니, 달렸나. 바람이 내 볼을 스쳤어. 창밖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고. 그리고 허수아비. 허수아비가 보였어. 아니, 할머니였어. 할머니가 밭 한가운데에 매달려 있었어.     


제 볼을 꼬집어 봤어요. 통증이 느껴지는 게 꿈은 아니다. 그럼 남편이 미친 건가. 괜히 과거를 물어봤나 싶어 화제를 돌리려고 시도했어요. 그때 남편과 눈이 마주치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사람 눈에 초점이 사라졌어요. 1초가 안 되는 짧은 순간이지만 제 두 눈이 그 찰나를 담았습니다.      


-당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만난 적 있어?      


무언가에 홀린 듯 남편은 조부모의 인생사를 읊조리기 시작했습니다. 열 명의 형제자매 사이에서 공부하기 위해 고아를 자처하고 보육원에 들어간 할아버지. 연필을 팔던 할아버지에게 반해 부모를 설득해 자기 집에 하숙생으로 들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친구가 너무나 미웠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러브레터를 숨겨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은 할머니. 할머니와 결혼 후 그 친구를 잊지 못해 몰래 관계를 맺어왔던 할아버지. 그 사실을 알고 친구를 독살한 할머니. 노년에 이르러 할머니의 잠꼬대로 이 사실을 알게 된 할아버지. 이혼과 재산을 요구하며 할머니를 폭행한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한테 원한을 품고 농약을 먹인 할머니. 그리고 스스로 목을 맨 할머니. 그 아래에서 숨죽인 채 잠을 자는 척했던 손자와 시체를 뜯어먹던 백구와 황구.     


-그리고 난 도망쳤어. 한밤중에 역을 향해 달렸지. 어둠 속에 숨은 더위 때문에 숨은 차오르고 몸은 늘어져 갔어. 몇 시간을 걸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해가 뜨기 전에 역에 도착했어. 그때 알았지. 날 그곳으로 데려간 건 역무원이라는 걸. 역무원이 말했어. ‘왜 또 도망쳤어? 진짜 먹이가 되어야 정신 차릴 거야?’ 아, 이제야 기억났어. 할아버지 할머니는 닭을 팔았어. 토종닭이라며 100만원에 팔았는데 사러 온 사람들마다 물었어. 이거 정말 인육 먹인 닭이 맞냐고.      


부모는 그 사실을 알고도 묵과했다며 화를 냈습니다. 용돈을 받는 게 달달해서 아들을 살인마들 손에 맡겼다며 욕을 내뱉었죠. 분노와 두려움 그 어딘가에 존재할 듯한 처음 보는 표정에 이것저것 질문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건지, 저 몰래 마약이라도 하고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다음 질문은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호기심에 빠진 판도라가 되어 어리석게도 남편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거기까지 데려간 사람이 누구야?      


그날 저녁. 기억을 되짚는 남편과 동행했습니다. 몸에 각인된 어린 시절의 움직임을 따라 향한 그곳은 강원도 정선이었습니다. 차를 렌트해 지금은 포장도로가 된 길을 달렸습니다. 과거의 종착역에서 만난 건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폐가였습니다. 세월이 만든 악취와 먼지로 가득한 방안에서 남편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방 구석구석을 뒤졌습니다. 그때 밖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니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닭 무리가 우리 주변을 감쌌습니다. 그들의 부리질에 우리 부부의 살점이 뜯겨나갔습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남편은 무리를 뚫고 나와 차를 향해 뛰었습니다. 담벼락에 다다랐을 때 그를 밀친 건 옛 친구들이었습니다. B급 호러영화 속 괴수처럼 두 발로 일어선 근육질의 백구와 황구는 몽둥이로 남편의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온몸이 으깨질 때까지 그들의 매질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때 남편은 제가 군침을 흘렸다고 합니다. 붉게 익은 수박을 쳐다보듯 뭉개진 자기 머리를 보고 식욕을 느꼈다고 해요. 살점이 뜯긴 기괴한 아내가 탐욕스럽게 침을 흘리던 모습이 지금도 섬뜩하다며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이것이 제가 들은 남편이 기억하는 첫 번째 꿈, 아니, 악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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