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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괴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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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마녀(3)

완결

8     


지수가 손을 잡는다. 

함께 거리를 걷는다. 

서늘하게 폐를 찢던 새벽 공기가 사라졌다. 

따뜻한 온기가 옆구리를 파고 든다.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가로등 뒤에서 입을 맞춘다. 

갈증이 사라진다. 

갈라진 심장 사이로 피가 흐른다. 

뜨겁게 요동치는 파도 소리가 들린다. 

너도 좋은 거지? 

눈빛은 말한다. 

지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사랑을 만났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것이다.

절대

악마가 먼저 손을 내밀게 두지 않을 것이다.      


안녕, 스티치야.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요즘 친구가 생겨서 널 서랍장 안에서 꺼낼 일이 없었어. 넌 내 친구가 아니니까. 너도 다른 애들처럼 버리고 싶었는데 옥선 아줌마가 이건 자기 딸 준다는 말에 오기로 널 데려온 거야. 

기억하지? 너랑 우디랑 버즈랑 피카츄랑. 내가 그 아저씨한테 당하고 있는데 그냥 바라보기만 했잖아. 내 몸에 피멍이 들고 다리 사이로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데도 그 커다란 눈으로 즐기기만 했지? 마음 같아서는 가위로 네 목을 잘라버리고 싶지만. 외로울 때 뻔뻔하게 바라봐 줄 놈이 너 밖에 없어서. 학교에서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를 보여준 적이 있어. 한 남자가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추락하는데 자기 손바닥 피를 묻힌 배구공에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여줘. 배구공이랑 친구가 되어서 대화도 나누고 뗏목을 만들어서 함께 무인도 탈출을 시도하기도 해. 그러다 배구공이 파도에 휩쓸려 가는데 ‘윌슨’을 목 놓아 부르면서 절규하는 거 있지. 그때 애들이 다 웃었어. 나만 빼고. 정말이지 이를 악물고 울었어. 애들한테 우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자는 척했어. 그 아저씨는 탈출했잖아. ‘윌슨’을 잃은 대신 소중한 사람들 곁으로 돌아갔잖아. 스티치 너를 버린다고 엄마가 돌아올까? 아니, 그럴 수 없을 거야. 너는 ‘윌슨’ 만큼 사랑을 받지 못했잖아. 

스티치야, 사실 고민이 하나 있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거든. 그런데 그 사람을 괴롭히는 무리가 있어. 내 눈치를 보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면 때리고 꼬집고 급식을 몸에 던지기도 하는 거 있지. 오늘 있었던 일이야. 음악수업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가던 중이었지. 그 애가 공중에 붕 뜨더니 복도로 떨어졌어. 교실에서 발로 차서 복도까지 튀어나온 거야. 재석이라고 키 큰 놈이 다가오더니 그 애 머리채를 쥐었어. 그리고 뺨을 한 번, 두 번, 세 번. 짝 짝 소리가 복도에 울리도록 때렸어. 화가 나서 소리쳤어.      


-그만해! 당장 그만두라고!     


교실에서 그 애들이 나오더라. 익성이랑 호경이.      


-그만 안 하면 어쩔 건데? 또 마법이라도 부리려고? 여기서 한 번 해 봐. 


-그냥 날 때려. 더는 반항하지 않을 테니 지수 그만 괴롭히라고. 

-싫은데? 어차피 때려도 안 아프잖아. 그 병든 몸 더 때려봐야 상처만 하나 더 늘어날 뿐인데 왜 힘들여 널 때리겠어. 대신 지수년은 몸도 팔팔하고 네 마음에 생긴 새싹도 짓밟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겠어.

-나랑 지수한테 고통을 줘서 네가 얻는 게 뭔데? 

-행복. 네가 찾고 싶어 하는 거잖아.     


그때 알게 되었어. 우리는 서로 다른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걸.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저 놈들이 사라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 유리창을 깼어. 주먹이 아닌 눈으로. 복도에 있는 모든 유리창을 깨뜨리고 그 조각들로 놈들을 포위했어. 조각 하나하나가 온 피부에 박히고 살을 파고 들어 내장에 박히게 만들 생각이었어. 그런데 지수가 말리는 거 있지. 놈들은 유리조각에 포위돼서 오줌을 질질 흘리고 있는데 용서하재. 내 몸을 감싸 안고 울먹이는 거야.     


-하지 마, 하면 안 돼, 설아야. 우리가 용서해야 해.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도 용서받을 수 없어. 넌 사람이잖아. 마녀가 아니잖아. 

-저 놈들은 악마야. 내가 죽여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아.

-내가 슬퍼할 거야. 그러니까 제발 멈춰줘, 제발.     


그 애가 그러는 이유를 알아. 거기서 그놈들을 죽이면 진짜 마녀가 되어버리니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니까. 유리조각은 놈들의 몸이 아닌 복도 위로 떨어졌어. 누가 불렀는지 뒤늦게 담임이 와서 이 시간까지 상담을 받았지 뭐야. 

그런데 스티치야. 

넌 봤잖아. 

내가 마녀가 된 순간을 그 큰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잖아. 

다시 마녀가 되는 건 어떨까. 

그래서 다 끝내버리는 거야.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을게. 

엄마가 떠났던 거처럼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엄마는 그 아저씨를 사랑했어. 나보다 더. 나를 때리고 강간해도 하지 말라는 말만 했지. 짐승처럼 내 온몸을 찢을 동안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었어. 마치 잠수부처럼 숨을 죽이고 빛을 피해 도망갔어. 나를 찾는 일도 말을 거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지. 아저씨가 구멍이란 구멍은 다 범할 때면 온몸에 힘이 풀려 스스로 일어서기도 힘이 들었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변해갈수록 엄마는 일부러 날 외면했고 피했어. 그래서 아저씨가 그랬을지도 몰라. 

스티치야, 사실 다 알고 있었어. 엄마가 더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그러니까 떠났겠지. 엄마는 날 잊고 싶은 거야. 자기 배에서 키운 괴물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거라고. 한 몸을 공유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하, 왜 자꾸 않는다는 말만 반복하는 걸까. 너도 내가 싫지? 이제 행복해지고 싶어. 그래서 이 쳇바퀴에서 내려올 예정이야.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이 힘을 쓰면 돼. 그러면 난 인간이 될 수 있어. 지수랑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그 애랑 결혼할 거야. 매일 사랑한다 말해줄 거야. 남자 따윈 집에 들이지 않을 거야. 은성이라면 모르지. 그 애는 듬직하니까. 애어른 같은 분위기야. 머슴으로 부려먹을까? 크크크. 그래서 스티치야, 이제 너랑 헤어질 거야. 너 같은 못난이 인형은 휴지통에 버릴 거라고. 이번에는 그때랑은 다를 거야. 제발, 제발 그래야만 해. 이제 상처는 덧나지 않을 거라고.    

 

가로등 등불 아래에 익성 일당이 보인다. 일주일 전, 학교는 녀석들과 나에게 정학 처분을 내렸다. 옥선 아줌마와 놈들의 부모는 교장실에서 긴 이야기를 나눴다. 아줌마는 이번 학기가 끝나면 그 애들이 전학을 갈 예정이니 학교에서 조용히 지내라고 소리쳤다. 아줌마의 얼굴 근육은 입이 삐뚤어진 하회탈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네가 남들이랑 다르단 거 알아. 그렇다고 세상이 널 맞춰줄 수도 없는 노릇이잖니. 못 살겠다 싶으면 남을 죽일 생각하지 말고 네가 죽으렴. 그 한쪽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네 전부야. 널 이해해 줄 수 없는 사람들만 있으니 피하기 싫으면 맞아. 맞기도 싫으면 사라지고.     


아줌마는 모른다. 세상 끝까지 쫓아오는 고통은 죽음도 방해한다는 걸. 그날 이후 놈들은 하루 종일 아파트 근처를 돌아다닌다. 우연히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놈들은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잠이라도 들면 들어가 죽여 버리겠다는 표정이다. 아파트 밖을 나갈 때면 미행이 붙는다. 사람이 없을 때면 더 가까이 다가온다. 멀리서 다른 놈은 촬영을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바로 인터넷에 뿌릴 생각인 거겠지. 

벌써 일주일째 지수를 만나지 못했다. 그날 이후 지수는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학교 앞에는 경찰이 배치됐다. 그들은 내 얼굴을 보면 저리 가라며 손짓을 한다. 정학이 끝나기 전까지 출입금지라며 못을 박았다. 지수의 집 주소도, 핸드폰 번호도 모른다. 지수가 찾아오지 않으면 난, 지수를 만날 수 없다. 놈들이 보이지 않을 때면 우물에 갇힌 기분이다. 닿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며 허공을 향해 손을 뻗는다. 어느 날 놈들이 지수의 머리를 내 앞에서 흔들지는 않을까, 문을 열었을 때 지수의 머리가 놓여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에 빠질 때면 밤은 끝나지 않는다. 

복도에서 익성 무리와 눈싸움을 할 때면, 옆에는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들로 가득하다. 그 아저씨도 이런 사람이었겠지. 희망도 미래도 없지만 태어났으니 꾸역꾸역 살아가는. 그래서 매사에 불만이 가득하고 피해의식에 절어있어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욕구를 푸는, 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였을 거야. 위층의 아이들이 자라면 익성이 같은 애가 되겠지. 의자로 다른 사람 팔다리를 내리치고 얼굴에 오줌을 싸는 실낙원의 악마가 될 거야. 그 악마가 어른이 되면 그 아저씨가 될 테고. 짓밟을 수 있는 상대를 찾아 등골을 다 빨아먹고 그 시체까지 우걱우걱 씹어 먹겠지. 

그럼 지수는 죽을 거야. 죄책감이란 늪에 빠진 그 애는 허우적거리겠지. 발목을 움켜쥔 손에 이끌려 심연에 빠져들 거야. 괴물이 되지 못한 영혼은 뱃속으로 사라져 버려. 등대가 비추기 전 뱃고동과 함께 침몰하지. 놈들은 물러서지 않을 거야. 전학은 도망을 위한 연막이겠지. 지수를 내 앞에서 죽일 거야. 육체가 아니라면 정신이라도 망가뜨릴 거라고. 내가 그 애를 지켜야 돼. 지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야.     


8

     

아저씨는 새로운 걸 원했다. 며칠 동안 엄마를 붙잡고 설득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화를 내며 경고했다. 아저씨를 피해 세탁기 안에 숨어있던 난 그 끔찍한 소원이 무엇인지 듣지 못했다. 어느 날 엄마는 밤새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를 기다리던 난 빨리 자라는 아저씨의 말을 무시하고 TV앞에 있었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가 움직였다. 몸은 점점 느슨해지더니 이내 잠에 빠졌다. 눈을 떴을 때 느껴진 건 답답함이었다. 내 몸은 테이프로 벽에 붙어 있었다. 팔과 다리를 칭칭 감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아저씨는 내 입을 테이프로 막으며 말했다.     


-이번엔 진짜 아플 거다, 꼬맹아. 그런데 어쩌냐. 소리도 못 지르는 걸.     


이상한 기구가 내 왼쪽 눈을 감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아저씨는 바지를 벗었다. 절망을 부른 그 물건은 이전과 다른 모양이었다. 그 단단한 것이 눈을 파고 들어왔다.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온몸에 흘렀다. 그저 아프다. 아프다는 말만 머릿속을 가득 채워나갔다. 2분도 되지 않는 그 시간 동안 삶은 무너졌다. 인생이란 지구는 두 동강이 났고 뜨겁게 녹아내렸다. 성기를 뺀 아저씨는 황홀한 표정으로 바닥에 누웠다.      


-그래, 이거거든. 남들이 못 해보는 걸 해야지. 꼬마야, 아파? 괴로워? 내가 싫으니? 원망할 거면 내가 아니라 네 엄마를 원망하렴. 널 학교에 보내지 않는 걸 포함해서 모두 다 네 엄마가 허락한 거니까. 따지고 보면 너한테는 네 엄마가 전부잖아. 네 엄마는 내가 전부고. 그러니 내가 불행하라고 명령하면 너희 모녀는 둘 다 불행해야 하는 거야. 너희들의 존재 이유는 내가 쥐고 있으니까.     


남자는 성기에 뭍은 피를 닦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어차피 강간당해서 생긴 거라며. 낳고 싶어서 낳은 애도 아닌데 누가 널 사랑해주겠냐?     


한 아이를 따라 교회에 간 적이 있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법을 처음 배웠다. 온화한 미소를 지닌 전도사님은 누구나 마음속에 주가 있다며 열심히 기도하면 내 목소리를 들어준다고 했다. 내 목소리가 작았던 걸까. 아니면 인간의 목소리에 질린 신이 귀를 막아버린 걸까. 왜 하필 나에게 이 남자가 온 걸까. 입가에 피가 흐를 만큼 이를 악물었다. 내 목소리를 들어줄 누군가를 향해 외쳤다. 이 티끌만한 행복을 바치겠다. 가시밭길을 맨발로 걷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아저씨를 죽이고 싶다. 조소가 흐르는 저 입을 찢을 힘을 준다면, 죽일 수 있다면 괴물이 될 수 있다. 

한 번도 기도를 들어주지 않던 신을 대신해 악마가 나타났다. 

악마는 뻥 뚫린 왼쪽 눈에 사인을 했다. 

처음으로 소원이란 게 이뤄졌다. 

난 

아저씨를 죽였다.     


엄마는 새벽 4시에 돌아왔다. 그날 엄마가 어디에 갔는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 현관 불을 켠 엄마가 맨 처음 본 건 한쪽 눈이 뚫린 딸이 아닌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온몸이 터진 아저씨였으니까.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내 얼굴을 만졌다. 엄마는 생각했을 것이다. 누군가 집에 침입했고 아저씨를 죽였다고. 그래서 물었을 것이다. 누가 그랬는지 아냐고.    

 

‘내가 그랬어, 엄마’

     

몇 번이고 묻는 엄마를 향해 똑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내가 아저씨 팔과 다리를 빼버리고 배를 갈랐다고. 내장을 꺼내 터뜨린 다음 뼈를 차례대로 분질러 버렸다고. 아저씨가 나한테 했던 거처럼 왼쪽 눈도 빼버렸다고.      


넌 8살짜리야. 

네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해.     


무슨 소리야, 엄마.

아저씨가 칭칭 감아놓은 테이프도 내가 다 풀었어.

눈에서 흘러내리던 피도 내가 멈추게 했다니까.

엄마 왜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설아야, 거짓말 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

누가 이런 거야. 빨리 말하라고!      


화를 내는 엄마에게 진실을 말 해줬다.     


‘난 악마랑 계약했어. 하느님이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거든’     


뺨을 맞았다. 

한 번 두 번 

엄마는 온 힘을 다해 내 뺨을 때렸다. 

그리고 주저앉아 얼굴을 파묻고 울고 또 울었다. 

엄마를 달래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엄마의 눈에는 공포와 증오가 서려있었으니까.      


너무 늦게 알았다. 

엄마는 아저씨를 택했고 나를 버렸다. 

아저씨가 앗아간 가장 소중한 건 왼쪽 눈도 처녀막도 아니었다.      


엄마

     

아저씨는 엄마를 뺏어갔다. 

다시는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     

 

푸른 벽이 보인다. 이 너머에 놈들의 아지트가 있다. 공기처럼 떠도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단란한 가정에서 자란 외동아들. 어린 시절부터 부족한 거 없이 자란 아이. 그런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친구를 때렸다. 아니, 뼈를 부러뜨렸다. 부모는 아이를 껴안고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대답 대신 돌아온 건 폭력이었다. 사과와 합의금을 반복하던 부모는 아이에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널 이해할 수 없다고. 그리고 받은 게 이 단독주택이라고 한다. 화려한 유배에 지루함을 느꼈는지 마녀를 잡겠다고 나섰다. 넌 모르지. 중세에 마녀를 어떻게 죽였는지. 만약 알았다면 그날 오줌 대신 내 몸에 불을 질렀을 거야. 그 실수가 오늘, 네가 마녀한테 죽는 이유다. 

2층에 불이 켜져 있다. 내일 아침이면 저 애들은 다시 학교에 갈 것이다. 지수의 손등을 볼펜으로 찌르고 급식 위에 성기 털을 뿌리겠지. 수업 중에 콤파스로 등을 찌르거나 교복에 낙서를 하겠지. 내 감정이 분노에서 슬픔으로 변하길 기다릴 거야. 무력함을 경험하고 좌절을 느끼길 원하겠지. 선생님들한테 일러봐야 바뀌는 건 없으니까. 각서 따윈 나한테만 적용되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너희들은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내가 먼저 너희를 공격할 수 있다는 걸. 생쥐의 이빨에 고양이의 목덜미가 물어뜯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줄게. 

지붕을 시작으로 천장부터 짓누른다.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창문부터 현관까지 주먹을 쥐듯 집을 뭉갠다. 종이를 구기듯 시멘트와 목재로 이뤄진 공간을 무너뜨린다. 비명소리가 높아질수록 붕괴는 가속된다. 조금씩 오므라지던 손가락은 주먹을 쥔다. 동시에 집은 납작하게 주저앉는다.      


이제 지옥은 끝났어.      


마녀는 인간이 될 거야.      


9

     

쾅쾅! 쾅쾅! 쾅쾅!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다. 왜 위층 아이들은 이 시간에 잠에서 깨어난 걸까. 왜 어른이란 사람들은 조용히 시키지 않고 함께 떠드는 것일까. 아이들은 점점 더 자라고 발소리는 더 커지겠지. 저 애들은 평생 알 수 없을 거야. 너희가 밟는 건, 바닥이 아닌 누군가의 심장이라는 걸.      


등교 전 지하실을 향했다. 바닥에 놓인 소꿉놀이를 위해 펼친 돗자리 위에 스티치를 앉혔다. 이제 내 공간에 널 둘 수 없어. 지수의 옷이 내 옷장을 차지하고, 옥선 아줌마의 찡그린 얼굴 대신 지수의 미소가 날 반길 거야. 우린 매일 밤 함께 춤을 출 테고 잠에 들 때까지 음악을 들을 거야. 더는 여기서 어린 아이처럼 누군가 찾아주길 바라지 않을 거야. 네 큰 눈을 바라보며 울지도 않을 거고.      


담임은 조례 전 교무실로 호출을 했다. 어젯밤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었고 집에서 잠을 잤다고 답했다. 질문마다 거짓말을 했다. 선생님들이 그랬던 거처럼. 애들이 그랬던 거처럼. 날 때린 걸 본 사람 있느냐는 질문에 모두가 손을 들지 않고 침묵했던 거처럼. 선생님은 끈질기게 물었다. 지진이 난 것도 아닌데 그 집만 무너진 건 말이 안 된다, 익성이네 애들이 널 괴롭히지 않았느냐. 내 침묵이 계속되자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 네가 죽였잖아. 걔들이 괴롭히니까 죽여 버린 거 아냐. 우리가 모를 줄 알아? 골목 CCTV에 네 얼굴 찍힌 게 나오면 그때도 거짓말 할 거야?      


제가 죽인 게 안 찍혀 있으면요?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때린 걸 본 적 없다고. 본 적도 없는 걸로 어떻게 책임을 묻느냐고요. 절 끌고 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는데도 때린 게 아니라고 넘어갔잖아요.     


-야! 너 지금 나랑 장난 하냐? 사람이 죽었어. 네가 사람을 죽였다고! 씨발, 왜 이런 게 우리 학교에 굴러 와서 지랄인 거야.     


거짓말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아무것도 못 봤잖아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담임의 손바닥이 뺨을 때렸다. 뒤이어 주먹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사실대로 말하라는 고함소리에 진실을 말해줬다.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몸에 감춰진 어둠을 말라비틀어진 혀가 내뱉는다.      


제가 그 애들을 죽였다면 선생님도 죽였겠죠. 건물을 무너뜨릴 힘이 있다면 학교를 먼저 무너뜨렸겠죠. 제게 그럴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보여드릴게요. 여기 교무실에서. 



담임은 나가라고 소리를 쳤다. 그 목소리가 해방처럼 다가왔다. 복도에는 날 위협할 무리가 보이지 않는다. 다들 소식을 들었는지 호랑이 앞에 선 사슴 같은 눈을 하고 있다. 게걸음처럼 앞이 아닌 옆으로 지나쳐 간다. 

지수의 교실에 다다랐을 무렵 은성이 팔을 잡았다. 잠깐 얘기 좀 하자며 학교 뒤편 주차장을 향했다. 크게 숨을 내쉬더니 지수에 대해 물었다.      


-혹시 지수 어제 너희 집에 갔어?

     

아니. 정학 당한 후로 지수랑 만난 적 없어. 너도 알잖아. 학교 앞에 경찰이 쫙 깔려 있어서 들어가지도 못한 거. 그리고 나 핸드폰 없잖아. 지수 집 주소도 모르고.     


-넌 모를 거 같은데 오늘 새벽에 사고가 있었대. 익성이랑 애들이 아지트로 쓰던 집이 무너졌다나 봐. 등교하던 길에 보고 온 애들이 있는데 형태도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있어서... 아무튼 오늘 아침에 그거 때문에 SNS가 난리도 아니었어.     


나도 들어서 알고 있어. 그런데 왜 나한테 그 얘길 하는 거야? 

    

-사실 좀 불안해서. 어제 지수가 너 의안 다 제작됐다고 같이 찾으러 가자고 그랬거든. 그런데 그 동네가 익성이네 애들 노는 데잖아. 걔들 만나는 게 무서워서 거절했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무섭고 더 이상 걔들이랑 마주치지 싫어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혹시나 해서 아침에 지수한테 연락을 해봤는데 받질 않아. 집에 연락하니까 어제 들어오지 않았다는 거야. 그래서 오늘 아침 내내 생각했어. 지수가 너희 집에 갔을 거라고. 제발 그래야 한다고. 그런데 네가 아니라고 하니까 너무 불안한 거야, 지금.

     

은성이를 밀친다. 

그 애의 손을 뿌리치고 교문 밖으로 달린다. 

숨이 차지 않는다. 

다리가 아프지 않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전거처럼 달리고 또 달린다. 

아닐 거야. 절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흐르는 게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다. 

심장을 짓누르는 통증의 정체가 무언지 모르겠다. 

제발 아니어야 해, 제발. 

같은 말이 알람처럼 입가를 맴돈다. 

무너진 건물 앞에는 구경꾼들과 소방관들, 경찰들이 모여 있다. 그들 중 하나가 나를 막는다. 눈앞에 보이는 노란 선과 새하얀 천에 더 다가서기 위해 힘을 쥐어짜낸다. 한 발자국 더 다가가려는 순간 한 경찰이 다리를 건다. 넘어지기 무섭게 일으켜 세워 팔을 꺾는다.     


-가만히 있어, 이 재수 없는 년아. 네가 이 동네에 있으니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거야. 그때 감옥 안에 가뒀어야 했는데, 씨발.     


차라리 감옥이었다면, 

창살이 없는 감옥이라면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고독을 느낄 일도 

상처를 받을 일도 없었겠지. 

누군가 날 여기로 보냈기에 

이렇게 아픈 거겠지.     

 

한 번도 날 지켜준 적 없는 그들을 향해 말한다. 

방해하지 말라고. 

경찰차를 공중에 띄운다. 

뒤이어 경찰도 소방관도 구경꾼도 모두 공중에 띄운다. 

하늘 위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그 몸뚱이를 땅에 박아버린다.

아스팔트 위에 살과 뼈가 갈릴 때까지. 

존재는 사라지고 핏덩이만 남을 때까지. 

인간이 사라질 때까지 온몸을 짓누른다. 

이제야 고요가 찾아왔다.

악마가 처음 손을 내밀던 그때처럼.     


더 큰 힘에 무너진 폭력의 아지트에 다다랐다. 벽돌과 목재 더미를 사방으로 내던진다. 살과 피와 내장조각으로 이뤄진 웅덩이 안에 지수의 교복이 젖어있다. 테이프와 밧줄이 보인다. 비명을 지를 수 없었구나. 네 목소리가 들렸다면 겁쟁이처럼 가로등 아래에만 서 있지 않았을 텐데. 교복 아래로 무언가 떨어진다.      


의안(義眼)

      

이것만 있으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악마의 저주는 영혼을 갉아먹는다. 다시는 인간이 될 수 없게 분노와 슬픔으로 마음을 잠식시킨다. 안대를 푼다. 텅 빈 공간에 눈을 집어넣는다.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세상은 반쪽이다. 어둠과 안개만이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전부다. 눈물이 흐른다. 한쪽 눈에서는 슬픔을 담은 투명한 눈물이. 다른 눈에서는 분노를 담은 새빨간 눈물이 뺨을 타고 심장을 적신다.     


난 마녀가 되었다.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피의 마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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