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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놈이 ‘병신’이 되는 사회라면 너무 가혹하잖아

영화, 그리고 세상 - 1. 더 기프트

*주의 : 영화에 대한 스포가 있으니 영화를 보실 분들은 보신 후에 읽으시길.


응징자라는 영화가 있다. 한국의 우베 볼이라 불리는 신동엽 감독이 만든 영화로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와 성인이 된 후 만나 복수극을 펼치는 이야기다. 갈수록 병맛이 되는 영화였지만 초반부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금수저인 창식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회사 사장이 되어 떵떵거리며 사는데 피해자인 준석은 취직조차 못한다. 그가 취업을 못하는 이유는 학교 기록 때문이다. 아니, 왕따를 당했는데 ‘왕따를 당한 거 보니 문제가 있네.’ 라며 오히려 욕을 먹는다. 이게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현실은 더하다. ‘너 때문에 동네 망신이다’라는 말을 들었던 밀양 성폭행 사건을 영화화한 <한공주>는 현실의 반에 반도 담아내지 않았다. 


잘못한 건 쟤인데 왜 벌은 내가 받아야 해? 이건 우리사회가 가진 ‘잘못된 습성’ 때문이다. EBS1에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출연 중인 개들에게 ‘갓’ 갓형욱 동물조련사는 이런 말을 했다. ‘개들에게 서열을 정하도록 두는 건 아주 잘못된 행동이다. 야생에서 서열 다툼이 있을 때 진 쪽은 떠난다. 하지만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의 경우 진 쪽은 떠날 수 없다. 이긴 쪽에 의한 무차별적인 폭력만이 행해질 뿐이다’ 인간 세상 역시 다를 바가 없다. 흔히 학교 선생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서열이 정해지면 그 서열을 중심으로 교실이 평화롭게 돌아가겠지? 착각이다. 서열이란 건 폭력을 낳는다. 계급사회가 위험한 이유가 여기 있다. 왜 학교 이야기를 하느냐고? 이 영화의 모든 시작이 두 주인공의 ‘학창시절’과 관련되어 있으니까.

사이먼과 로빈 부부는 아이의 유산 후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교외에 집을 얻는다. 이곳에서 만나게 된 남편의 동창 고든. 사이먼은 고든이 누구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고든은 그들에게 와인을 선물하고 집에 초대를 받는다. 알고 보니 학창시절에 잘 나갔던 사이먼. 사이먼이 학생회장 선거 당시 ‘사이먼 가라사대’ 했던 말은 유행어라고 한다. 학생회장 사이먼이 말을 하면 그대로 되었으니 말이다. 유쾌한 시간을 보낸 세 사람. 그리고 고든은 물고기를 선물한다. 고든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로빈. 하지만 고든을 기억해낸 사이먼은 그가 학창시절 찌질이였다며 로빈을 탐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말한다.


무언가 과거가 있어 보이는 두 사람. 사이먼과 로빈은 고든의 초청을 받고 그의 집을 향한다. 대저택인 고든의 집을 보고 감탄하는 둘. 고든은 급한 업무가 있다며 나가고 그 사이 사이먼은 고든의 집을 뒤지며 그를 모욕한다. 급기야 더 이상 자기들한테 연락하지 말라며 절교를 선언하는 사이먼. 그리고 다음 날, 사이먼 네 집에 물고기가 다 죽어있고 개는 실종된다. 대저택을 찾아가니 그곳에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 대체 고든은 누구지? 사이먼이 알던 그 친구가 맞나?


작품의 중후반까지 ‘고든’이라는 인물을 의심하게 된다. 이 남자, 대체 누구기에 사이먼에게 접근하고 로빈을 노리는 거 같지? 대체 왜 거짓말을 한 거야? 하지만 이후 깜짝 놀랄 반전을 선보인다. 알고 보니 ‘나쁜 놈’은 사이먼이었던 것이다.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는 말이 있다. 나쁜 놈은 생각이 없다. 오늘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누구에게 상처를 입혔는지 말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받을 어떠한 위해도, 고통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하지 못한다. 처음 사이먼이 고든을 기억하지 못한 거처럼 말이다. ‘사이먼 가라사대’는 ‘일진’이었던 사이먼의 과거를 비꼰 것이다. 사이먼은 일진이었고 학교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놀았다. 그래서 거짓말도 서슴없이 했다.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고 말이다.

그래, 나쁜 놈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결과가 얼마나 클지 생각을 안 한다. 하면 할 수가 없다. 멍청한 거짓말 하나에 고든은 인생을 잃어버렸다. 그런 고든이 왜 사이먼에게 ‘선물’들을 준 것일까? 처음 고든은 사이먼과 잘 지내보려고 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까. 사이먼이 자신에게 사과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과를 했겠지. 그건 착각이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리 학창시절이라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았겠지. 고든의 선물들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짐이다. 선물은 마음에 짐을 준다. 축의금 문화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내가 무언가를 받았으니 상대에게도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 그것이 계속해서 고든과 사이먼을 연결한다. 두 번째는 기회다. 선물을 통한 만남은 사실 고든이 사이먼에게 주는 기회다. 사과하라고. 나한테 사과하라고 말이다.


이 작품의 기막힌 점은 너무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잘 묘사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이먼이 고든에게 사과를 하러 간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한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사고를 쳐서 1년 꿇은 남자애가 개과천선 했다고 다큐를 촬영한 것이었는데 자신이 과거 잘못했던 학생들에게 찾아가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녀석은 자신이 괴롭혔던 친구를 찾아가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닌 ‘협박’을 했다. ‘아, 말 좀 하자고!’ ‘이리 와 보라고!’ ‘너 내 말 듣기 싫다는 거냐?’ 이게 무슨 사과하는 사람 태도냐! 사이먼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고든에게 사과 대신 ‘주먹’을 갈기고 협박한다. 딱 가해자다운 태도를 보여준다.  

제일 슬픈 사실이 무언지 아나? 고든은 그때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결혼도 못하고 가난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사이먼은 아름다운 부인을 얻고 부유한 가정 속에서 능력 있는 남자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참, 당한 놈이 ‘병신’이 되는 사회라면 그거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그러면 다들 가해자가 되어 남을 괴롭히고 누르고 거짓말로 매장시켜 버리면 사회가 퍽도 아름답게 돌아가겠다. 사회는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를 억누를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 공동체를 지향하며 관계를 중시한다. 그런 인간 세상에 계급과 서열은 최악의 문화이며 관습이다. 


한 마디만 더 하자면 왕따 문제를 학교 내부에서 찾지 말아 달라 당부하고 싶다. 일본 사회가 이지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건 자신들 나라 자체가 가진 문화를 바꾸지 못해서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자란다. 인간은 부모를 모방하고, 가족을 모방하며, 사회를 모방하면서 자라는 존재다.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학교도 바뀌지 않는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는 하나의 반전이 더 있다. 고든이 사이먼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 그 선물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영화를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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