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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이름은 꼰대

영화, 그리고 세상 - 14. <펜스>

     
영화 <국제시장>은 한국사의 지난 역사를 통해 ‘꼰대’가 되어버린 아버지 세대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젊은 세대는 이해할 수 없는, 또 이해하고 싶지 않은 존재가 얼마나 아픈 역사를 살아오고 겪어왔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국제시장>이 극적 재미를 위해 이 꼰대의 맛을 비교적 약하게 표현했다면 <펜스>는 대놓고 ‘다 꼰대요’ 라고 말하는 노인을 통해 피로감을 누적시키는 작품이다. 헌데 이 피로감 속에 슬픔이 너무 진하게 묻어있다. 이것이 ‘흑인’ 아버지의 인생이고, ‘흑인’ 어머니의 인생이며, 미래를 살아갈 ‘흑인’ 아들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트로이는 꼰대 노인네다. 그는 자신이 예전에 낳은 첫째가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하니 그의 인생을 하나하나 트집 잡으며 그를 처절한 존재로 만든다. 지금 살고 있는 부인 로즈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 코리에게는 미식축구 대신에 기술을 배우라 말한다. 흑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며 말이다. 그와 말이 통하는 건 늙은 친구들뿐이다. 그들은 옛날이야기를 하며 자기들끼리 시시콜콜 거린다. 
  
그나마 트로이가 가정에서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부인 로즈와의 관계가 좋았기 때문이다. 이 좋은 관계 때문인지 로즈는 장애가 있는 트로이의 동생을 극진하게 대하며 꼰대 같은 말만 내뱉는 트로이에게 굳이 대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부부 사이를 갈라놓는 일이 발생한다. 트로이에게 숨겨둔 자식이 있다는 사실. 어린 딸을 숨겨두었다는 말에 부인 로즈는 절규한다. 그녀는 싫었던 것이다. 부모가 다른 형제자매를 두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그런 일을 코리가, 그리고 숨겨둔 딸 레이넬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헌데 트로이의 태도는 너무나 뻔뻔하다. ‘저 여자, 저러다 말아’ 라는 태도다. 
  
<펜스>의 트로이 캐릭터는 그가 가진 ‘인종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 그는 고통과 차별 속에서 인권을 부르짖었던 흑인의 역사를 직접 경험했던 세대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이뤄놓은 것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적어도 자신은 가정을 꾸렸고, 재산을 모았으며, 자식을 교육시키고 있기 때문이다.(마치 우리나라의 50대 이상의 세대들이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자신들도 한몫했다는 높은 자부심을 가진 거처럼 말이다.) 그의 이런 자부심은 미식축구를 배우는 코리와 충돌한다. 그에게 흑인이 미식축구를 배우는 건 멍청한 짓이기 때문이다. 평생 백인들 엉덩이만 뜨끈하게 데워주는 후보 선수로 지내다 끝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대가 그래왔다. 그래서 아들은 기술을 배워야만 한다. 적어도 기술을 배우면 자신처럼 가정을 꾸리고 돈을 모을 수 있다. 반면 코리는 달라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과거에만 머무르는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자신이 번 돈’ ‘자신이 산 집’ ‘자신이 이룬 가정’이라는 ‘자신’을 강조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너무나 역겹게 느껴진다.
  
트로이와 과거의 세대, 코리가 미래의 세대를 의미한다면 로즈는 과거의 세대에 갇힌 자신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로즈는 오랜 세월을 트로이의 곁을 지켜왔다. 그녀에게 남편은 비교적 자랑스러운 존재로 비춰진다. 이는 트로이가 적어도 다른 흑인들처럼 감옥, 마약, 폭력, 문란한 성관계로 본인의 인생을 망친, 소위 ‘흑인의 삶’을 살아온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로이에게 숨겨진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로즈는 큰 충격을 받는다. 이 충격은 두 가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첫 번째는 앞서 설명했듯이 트로이 역시 다른 흑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고 그것을 너무 당연시 여기는 태도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런 트로이를 이해하며 살아온 자신의 세월이, 자신을 그에게 복속하고 무디게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작품의 제목, ‘펜스(fences)’, 울타리는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남이 내 구역에 못 들어오게 막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내가 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기도 한다앞서 등장했던 트로이의 첫째 아들처럼트로이가 이룬 가정과 경제력을 탐하려는 이들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세웠을 수도 있지만 이 울타리를 로즈가 세우라고 했다는 점에서 후자의 의미가 강하다그녀는 자신의 꼰대 남편을 집에 묶어두려고 하는 것이다집밖의 세상은 너무나도 변했다그의 자식들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고그가 살았던 시대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흑인이라고 기회를 박탈당할 일이 더 줄어들었다는 것이다그런데 트로이는 이를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다그는 아직도 옛 친구들과 어울리고그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길을 자랑처럼 떠벌리며 이것이 진리라고 믿는다그래서 그녀는 이 집에 트로이를 가두려는 것이다그가 이룩한 것들과 함께 살아가라고그 자신의 세계 속에서만 살라고그리고 불행히도 그녀도 그 안에 속해있다울타리 밖으로 나가기에는 그녀는 트로이에게 익숙해졌고 그녀가 없는 트로이의 삶은 자신이 괴로워했던 과거흑인의 삶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꼰대 아버지와 갈등을 겪는 가족이라는 점에서 꽤나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영화적인 재미는 크지 않다. <앤트원 피셔>와 <그레이트 디베이터스>를 통해 능력을 뽐낸 감독 덴젤 웨싱턴은 원작 희곡이 가지는 인물들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는지(희곡을 안 봐서 모르겠지만연극의 형식을 연출방법으로 택하였다대사가 많은데 대부분이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의 감정을 말하기에 외적 갈등으로 부딪히는 부분이 적어 큰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하지만 인물을 초점으로 본다면꼰대 아버지 트로이가 겪어온 역사와 그 역사를 통해 현재를 들여다 본다면 꽤나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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