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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 자체로 가치가 있는  거야

영화, 그리고 세상 - 16. <4등>,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外

삶이란 특별한 형태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는 예술가가 될 수 있고, 누구는 직장인이 될 수 있으며, 누구는 농부나 어부가 될 수 있는 게 삶이다. 헌데 사회는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처럼 삶에도 일정한 '형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직업에 귀천의식을 만들고, 그걸로 그 사람이 살아온 모든 길을 평가하며 성공과 실패를 멋대로 판단한다. 난 행복한데 말이다. 삶에는 답이란 것이 없다. 돈 100억을 벌고도 마음에 큰 구멍이 뚫려 불행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땡전 한 푼 없어도 마음이 꽉 차 행복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 법이다. 오늘은 힐링 시간이다. 삶을 남과의 비교가 아닌 나만의 추억으로 바라보는.

해야만 해! VS 할 수 있어!


같은 말이다. 허나 그 어감에서 차이가 크다. 당신은 어떤 말을 더 들어봤는가? 아마 후자라 하더라도 그리 마음 편한 후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4등>의 꼬맹이 수영선수 지망생 준호는 항상 4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다. 준호를 어떻게든 '1등'으로 만들고 싶은 엄마는 엄마들 사이의 정보망을 통해 '정말 잘 가르치는 비밀코치'를 알게 된다. 16년 전 아시아 신기록을 달성한 국가대표 출신 광수. 광수는 당당하게 말한다. 1등은 물론 대학까지 골라서 가게 해주겠다고. 헌데 이 코치, 이상하다. PC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수영연습은 시키지도 않는다. 연습을 시켜달라 조르는 준호. 그리고 시작된 연습에서 광수는 매를 든다. 그 매를 통해 광수는 말한다. 넌 1등을 '해야만 한다'고. 광수가 매를 드는 건 단순히 좋은 성적을 얻기에 효율적이라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 광수는 동네 어른들과 도박판에서 어울리다 아시안 게임 소집에 늦어버린다. 이에 화가난 코치는 광수를 때리고 이에 분노한 광수는 연습을 거절, 언론에 코치의 폭행 사실을 폭로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자신에게 역풍으로 가다오고 그는 수영선수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때 그 매를 맞고 정신을 차렸더라면...' 광수는 그런 후회로 준호에게 매를 든다. 이 매가 있어야만 준호가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이다.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의 츠보타 선생은 광수와 반대다. '할 수 있어!'가 그의 모토다. 그는 구제불능 수준의 꼴통 사야카한테 말한다. '너는 게이오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자'고. 대학을 갈까 말까한 성적의 사야카한테 일본 명문대 중 하나를 목표로 공부를 하자는 것이다. 이쯤되면 사기꾼이다. 헌데 이 선생, 계속 사야카에게 힘을 준다. 칭찬을 아끼지 않고 긍정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는 자신도 과거에는 공부와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자리에 오게 되었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할 수 있다'는 말은 사야카를 점점 변화시킨다. 매일 친구들과 하루하루 노는 것만 생각하던 사야카에게 무언가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 목표를 만들 수 있었던 건 그녀를 계속 응원해준 츠보타 선생이 뒤에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남을 보는 시간 VS 나를 보는 시간


스포츠에서의 경쟁은 남을 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준호가 해야만 하는 1등은 '내'가 아닌 '남'과 관련이 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남이 더 잘해버리면 1등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난 남을 생각하고 더 혹독하게 나를 닦을 수밖에 없다. 광수의 계속된 체벌은 이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스포츠계에서 '폭력'은 뗄 수 없는 관례다. 그 폭력은 나를 이겨내라는 의미보다는 남을 이기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준호는 맞는다. 폭력의 정당성은 여기서 온다. '네가 1등을 하고 싶으면 맞아. 그래야 남을 이길 만한 힘을 가질 수 있으니까'하고 말이다. 하지만 폭력은 답이 아니다. 세상에 시간은 남을 바라보는 수평만이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결국 개개인이 가진 수직의 시간으로 이뤄진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이 수직의 시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우편배달부라는 직업의 주인공.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딱히 절규도 없고, 빨래 쿠폰의 아쉬움만 생각날 뿐이다. 그에게 다가온 또다른 나, 의문의 존재. 이 의문의 존재는 나에게 내일 넌 죽을 것이고 세상에서 무언가 하나씩을 없애면 하루 더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전화를 없애고, 영화를 없애고, 시간을 없애면서 나는 알게 된다. 그의 삶은 수직으로 봤을 때 평범하고 단조로운, 남들과 다를 바가 없는 혹은 조금 더 못한 혼자만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수직, 오직 인간 그 자체만의 그를 보았을 때 그의 삶은 참으로 따뜻하고 특별한 순간들로 가득했다. 전화를 없앤 순간, 사랑했던 '그녀'가 사라졌고, 영화를 없앤 순간, 유일한 말동무였던 '친구'가 사라졌다. <4등>에서도 마찬가지다. 폭력과 경쟁에 지친 준호가 수영장을 나간 순간, 준호는 자신과 수영의 '수직의 시간'을 바라본다. 그속에서 그가 수영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비록 4등에 머무르지만 수영이 그를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게 했는지를 말이다.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 어머니...... 그리고 멀어보이지만 가까운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모성'이라는 특별한 감정이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자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존재가 어머니다. <4등>에서의 어머니는 아들 준호의 수영경기마다 쫓아다니고 1등을 만들기 위해 폭력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도 방조할 만큼 극성맘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아들만은 잘 되었으면'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엄마는 소원을 무얼 빌었느냐는 아들 기호의 말에 남편과 준호, 기호에 대한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엄마껀?'이라는 질문에 '엄마는 없어'라고 답한다. 아들이 잘 되는 거, 내가 좀 힘들어도 내 아이만은 높은 곳을 향해가는데 부족함이 없이 해주고 싶은 게 모든 엄마들의 마음일 것이다.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의 사야카 엄마 역시 마찬가지다. 아들만 편애하는 남편 때문에 딸들의 육아를 홀로 신경 쓴 엄마. 쥐꼬리만한 용돈으로 두 딸을 키워온 엄마는 공부를 시작한 사야카의 학원비를 대기 위해 물류창고에서 일을 한다. 딸의 학교에 찾아가 딸을 믿어달라 말하는 엄마의 모습은 딸을 향한 이기적인 사랑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믿음이라는 거,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이 감정은 때론 엄청난 기적을 불러 일으킨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나의 엄마도 그런 믿음과 관련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의 엄마는 제목 '고양이가 사라진다면'과 관련되어 있다. 나는 고양이가 사라져도 세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거라 여긴다. 하지만 이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그 고양이 '양배추'와 자신과 어머니 사이의 모든 추억은 사라진다. 나는 추억을 돌아보던 중 알게 된다. 그의 곁에는 항상 어머니가 있었다는 걸. 고양이를 따라가다 보니 보게 된 것이다. 그의 삶은 결코 혼자고 외롭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기 전, 대학에 가서 친구를 만나기 전, 그의 곁에는 항상 '믿음'을 주는 어머니가 있었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어쩌면 고양이처럼 별 볼일 없어보이는 매일의 반복된 기억에 존재하는 어머니와의 기억일지라도 그 기억 하나하나가 '나'라는 존재를 일으켜 세워준 믿음이자 사랑이 되어주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된다.

아버지는 항상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다. 이 세 작품에서의 아버지들 역시 다 마찬가지다. <4등>에서의 아버지는 아내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하는지 크게 관심이 없고,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의 아버지는 자신의 꿈이었던 야구선수를 이어줄 아들만을 편애한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을 때 모습을 보이지 않을 만큼 가정에 무신경해 보인다. 헌데 사실 이들은 그 누구보다 가족들을 사랑한다. 다만 일 때문에 혹은 방법을 잘 몰라서 깊게 다가가지 못했을 뿐이다. <4등>에서 광수의 폭력에서 벗어난 어린 준호가 향할 곳은 아버지 뿐이다. 자신보다 크고 강한 아버지는 자그마한 초등학생 아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의 아버지는 자신의 꿈 때문에 아들을 편애하지만 딸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잘 모른다. 사야카는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 여기지만 엄마의 말을 듣고 서서히 아빠가 좋은 사람임을 알게 된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아버지는 귀엽기까지 하다. 아들의 기억 속 아버지는 엄마의 임종을 지켜주지 못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지만 추억여행 속 발견한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도 어머니를 사랑한 따뜻한 사람이었다. 양배추(고양이 이름)와의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이 아버지며 그 협력을 나에게 구한 사람도 아버지다. 흐릿한 어머니와 나의 사진을 찍은 것도 아버지다. 너무 슬픈 나머지 손을 떨었고 사진이 흐려진 것이다. 아버지도 자식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모정처럼 사랑을 주는 방법을 잘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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