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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이라는 '그물'에 잡힌 사람들

영화, 그리고 세상 - 17. <그물>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말이 '종북'이다. 한동안 사라졌던 이 말은 이명박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말을 꺼낸 후 일베에 의해 유행어처럼 번졌으며 이후 정부 정책 혹은 의견에 반대를 하면 '종북'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이런 '사상'의 프레임은 2차 대전 당시의 유럽, 냉전시대의 미국, 그리고 오늘날의 대한민국까지 '동물'이 아닌 생각이라는 사고를 가진 '인간'이기에 겪는 아픔이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파고 들었던 김기덕 감독은 <일대일>이라는 참 김기덕스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었다. 사회를 항햔 분노, 그리고 현실에 대한 강한 울분을 어떠한 예술적 효과 없이 직설적으로 툭툭 내뱉는 작품을 말이다. 그의 분노는 이후 각본과 제작을 맡은 <메이드 인 차이나>에서도 이어졌다. '중국산 장어'를 통해 '자본주의 속에서 모든 인간다운 것을 잃어버린 대한민국'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 그리고 그는 <그물>을 통해 다시 한 번 한국 사회에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마치 많은 사람들이 보라는 듯 대중성을 갖춰서 말이다.

<그물>은 북한 어부 철우가 배가 그물에 걸려 남한으로 오게 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눈을 감고 모든 것을 보지 않겠다 말하는 철우. 그런 철우에게 젊은 국정원 직원 진우는 따뜻하게 대해준다. 하지만 6.25때 북한군에게 가족을 잃은 조사관은 '간첩'에 눈이 먼 인물이다. 조사관은 아주 독하게 철우를 몰아친다. 북한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두고 온 철우는 제발 북한으로 보내달라고 말하지만 국정원은 그를 보내줄 생각이 없다. 윗선은 북한 주민도 한민족이기에 한 사람이라도 더 빼오는 것이 목적이라 말하고 조사관은 철우가 간첩이 분명하다 말한다. 하지만 간첩의 증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철우. 이에 조사관은 그를 '잠재적 간첩'이라 칭한다. 


잠재적 범죄자가 된 철우. 그는 국정원의 작전에 의해 서울 한복판에 홀로 남겨지고 거리를 거니며 서울을 구경한다. 그는 창녀 민자를 만나고 진우에게 물어본다. 남한은 이리 잘 사는데 왜 불쌍한 사람들이 있느냐고. 마치 북한이 소위 말하는 고위층들만 잘 먹고 잘 사는 거처럼 말이다. 서울을 구경하고 돌아온 철우. 그는 함정수사에 빠져 '간첩'으로 몰리게 되고 조사관에게 혹독한 강압수사와 거짓자백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진우의 간청과 상부의 고심 끝에 철우는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남한에서 받은 옷을 하나하나 다 벗어버리고 북한으로 돌아온 철우. 그는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금의환향 하지만 이건 보이는 모습 뿐이다. 그는 정보원들에 의해 끌려가고 지하에서 사상검증을 받는다. 놀랍게도 이 북한에서의 사상검증 부분이 남한 국정원에서의 모습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그래, 결국 철우라는 어부가 걸린 '그물'은 '사상'이라는 놀랍도록 촘촘하고 견고한 감옥이다. 

김기덕 감독은 이런 '사상의 위험성'을 약간은 위험할 수 있는 '북한 사람'을 통해 이야기한다. 6.25 전쟁 당시 북한과 남한은 서로 점령지를 왔다 갔다 했고 그때마다 주민들은 '사상'을 이유로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 입으로는 한 민족이라고 말하면서 상대와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국정원은 철우를 사상홍보용으로 써먹으려고 한다. 북한에 있는 그의 가족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마치 지난 정권에 있었던 탈북종업원 사건처럼 말이다.) 철우가 서울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철우를 '남한에서 밖에 살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에게 '간첩'임을 시인하라 압박한다.

배우 김영민이 연기한 조사관은 '국정원'의 추악한 이면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다. 겉으로는 '애국'을 말하나 그 애국으로 '북한'과 관련된 희생자는 몇 십명이 나와도 상관없다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가 말하는 '잠재적 간첩'은 최근 강남역 사건 이후 남성들에 대해 '잠재적 가해자'라는 프레임을 씌운 일이나 아청법을 개정하며 음란물을 보는 이들을 '잠정적 성폭력 가해자'로 모는 프레임과 같다. 최근 한국 사회는 일정한 '프레임'을 만들어 이 틀에 가두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이 모습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그물'과 똑같다. 그 틀에 갖혀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고 끝없이 돌을 던진다. 철우를 향해 계속된 폭력을 반복하고 그가 무력해져 자신의 뜻을 따르기를 기다리는 조사관처럼 말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 지긋지긋한 '사상의 그물'에 갇힌 물고기의 모습처럼 끝을 맺는다.(결말은 스포가 될 수 있으니...) 한 개인이 사상이라는 거대한 감옥의 구조를 만든 국가를 상대로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몇 십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나왔고 그 아픔에 대해 가르치지만 마치 붕어처럼 모든 것을 까먹고 그 프레임에 갇힐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이들에게서 대체 무슨 수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북한에서의 가족도, 남한에서의 따뜻한 국정원 직원도 결국 '인간의 마음'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즉,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개소리는 아무 짝에도 필요가 없다는) 가슴 아픈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사마리아>와 <빈집>으로 베를린과 베니스에서 상을 수상한 자신에게 여전히 한국 영화계가 문을 열지 않는 것에 분노한 듯 '대놓고 대중적'으로 만든 <시간>을 통해 관객들에게 다가갔다. 그의 영화에는 사상이 있고 생각이 있으며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하다. 어쩌면 <그물>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오히려 외면 받은 <일대일>에 대한 분노로 대중성을 갖춰서 만든 김기덕 감독의 역작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그는 <피에타>를 통해 세계적인 거장이 되었음에도 불구 자신을 무시했던 시상식들을 통해 한국영화계의 문제가 아닌 자본으로 얼룩진 한국사회의 문제를 봤을지 모르고 이를 통해 '무엇이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나'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김기덕 감독은 참 애증의 감독이다. 그 노골적이고 (어떨때는) 상스러운 표현 때문에 싫다가도 그가 가진 생각과 사상의 깊이, 기존의 감독들이 흉내내기 힘든 자신만의 표현(아마 이건 정식으로 영화를 배운 감독이 아니기에 더 독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가 아닌 '인간'에 더 집중하는 그 시선 때문인지 감독 뿐만이 아닌 각본에도 '김기덕'의 이름이 붙으면 극장으로 찾아가게 만드는 마성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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