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저녁식사 때까지 1시간이 남았고 그때까지는 음료를 싸게 제공하는 해피 아워라고 했다. 난 와인 한 잔을 시켜 들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한나와 로라도 함께 올라왔다. 그곳엔 이미 남자 셋, 여자 둘의 그 인도 청년 그룹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둑해진 바다 위에는 수없이 떠다니는 유람선의 불빛들이 번지고, 그 뒤로 산처럼 보이는 하롱베이 섬들의 검은 윤곽들이 보였다. 너무 어둡지 않으면서, 막 어두워지고 있는 기막힌 시간대였다. 날이 흐려 일몰을 보지는 못했지만.
우린 바다를 향해 와인 잔을 든 팔을 사진으로 찍었다.
내가 한참 한나와 얘기하고 있으니 로라는 또 한쪽에 혼자 조용히 서 있었다.
난 그 자리를 떠나서 혼자 썬배드에 누워 야경을 즐겼다. 그 인도인 그룹의 웃고 얘기하는 소리와 그들이 틀어놓은 음악이 좋은 배경이 되어 주었다. 그들도 없이 아주 혼자이면 자칫 외롭고 지루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내가 앉은자리에는, 낮에 나의 사진을 찍어주고 내가 찍어주기도 했던 커플이 함께 했다. 낮에 갑판에서 혼자 열심히 풍경을 찍고 있으니, 그녀가 내게 사진을 찍어줄까 물었다. 내가 화들짝 반기자 그녀는 말했다.
“너도 네 사진이 있어야지”
그랬다. 셀카는 늘 너무나 불충분하다. 그녀는 내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조금 포즈를 바꿀 때마다 “오, 모델! ”을 연발하며 나를 기분 좋게 해 주었다.
나는 내가 찍은 그 커플들의 사진을 찍어 전달해줄 방법을 찾아보려 애썼다. 그러자 청년이 자기 휴대폰의 에어 드롭을 켰고 내가 사진을 전송했다. 전송된 사진을 보며 우린 우리의 성공에 환호했다.
그녀의 이름은 페리, 청년은 샌던이었다. 기억하기 쉽도록 sand와 on을 연결하면 된다는 그녀의 말에, “오홍! sand on ferry(페리에 탄 샌드)”라고 내가 받아치며 우린 또 왁자하게 웃었다.
이어 한나와 로라가 우리와 합석했다. 핼러윈 데이의 펌킨 라이트처럼, 파인애플 껍질에 구멍을 낸 깜찍한 램프가 테이블 한가운데 자리하고, 주변으로 풀코스의 디너가 제공되었다. 우린 탄성을 지르며 좀 전에 마시고 있던 각자의 술잔을 들어 건배했다. 크루즈 레스토랑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테이블이었다.
인도인 그룹도 우리를 힐끗거렸고 사이프러스 커플, 독일인 자매, 터키 걸들이 앉은 테이블에서는 터키 걸들이 연신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유쾌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갑판에서 공짜 맥주가 제공된다기에 모두 그리로 올라갔다. 서로들 어울려 자유롭게 대화하다가 결국엔 샌던‧페리 커플, 한나, 나, 인도인 그룹 네 명, 그렇게만 남았다. 로라는 한나를 두고 먼저 자러 갔다.
이 밤을 적극적으로 즐길 의지가 있는 사람들만 남은 것이다.
페리가 선곡을 주도해서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그 노골적인 가사를 들으며 난 기겁하며 웃었고, 그런 나를 보며 페리와 샌던은 더욱 신나 했다.
모두 흡연자들이었다. 페리가 한 대 피우겠냐고 해서 난 담배 안 피운다고 했다가, “그럴까?” 했더니, 신나 하며 반긴다. 그녀가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후우 하고 내뿜으라며 시범을 보였다.
내가 그대로 따라 하면서 깔깔대자, 그녀도 무척 신나 했다. 페리는 “내가 애니를 타락시키고 있어.”라고 외치면서 즐거워했다. 난 영화에서처럼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고, 과장되게 연기를 내뿜어 보였다. 샌던이 함께 담배 피우는 페리와 나를 사진으로 찍었다. 페리는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난 진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퇴폐한 여자처럼 보였다.
인도 걸이 발리우드 음악에 맞춘 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어, 우린 모두 그녀를 따라 그 춤을 요란하게 배웠다. 그녀의 길게 뻗은 다리와 긴 머리가 매력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잘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하고 있을 때, 열 배는 활기차고 아름다워 보인다. 무릇 젊음의 탄력이란 이렇게 통통 튀는 것이 아닐까.
이어서 한나가 털기 춤을 가르쳐 주었고, 한나와 나는 각자 느린 춤을 추기도 했다.
12시가 다 되어 모두들 내려가고, 나는 좀 더 남아 있겠다고 했다. 어느 배에선가 희미한 음악 소리가 들렸고, 가까이서 멀리서 많은 크루즈 배들이 불을 환히 밝히고 떠다녀서 무섭지도 않았다.
아름답고 좋았다. 밤새 그렇게 그곳에 있고 싶었다.
여행하면서 순간순간 그가 떠오르고, 내가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된 것들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가슴이 막 아픈 건 아니다. 아쉬움과 슬픔의 기조가 바닥에 안개처럼 깔린다. 어쩌다 보니 그를 보내는 이별 여행이 되고 있다.
지난밤의 그 열기와 달리 아침 식탁에서는 모두들 좀 지치고 덜 깬 모습들이었다. 진주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는 진주 양식장을 돌아보고, 카야킹 하는 곳으로 향했다.
카약킹을 위해 보트가 착륙하려 할 때 누군가 나를 부른다. 하노이 호수에서 만났던 케머론이었다.
와, 이렇게 반가울 수가! 결국 이렇게 만나는구나. 우린 반가움에 악수를 할까 어쩔까 0.5초 정도 머뭇거리다 결국 포옹을 했다. 그가 물었다.
“그래, 다른 사람과 방 함께 썼어?”
“아니, 운 좋게 혼자.”
내가 득의만면해서 대답하자 그가 양손을 높이 내밀었고 우린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는 이미 카야킹을 마쳤고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우린 다시 작별의 포옹을 했고 그가 내 뺨에 입 맞추었다. 누가 보면 우리가 엄청 가까운 사람들인 줄 알 거다.
카야킹을 함께 할 짝이 없던 차에, 그 인도인 그룹 중 한 명인 리샤르가 나와 함께 타게 되었다. 혼자 타지 않아도 돼서 얼마나 다행인가.
한나가 자기 방수 백에 내 휴대폰을 함께 넣어주었는데, 나중에 그녀의 카약과 가까워졌을 때, 그녀는 내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우린 굴을 발견하고 상륙해보았지만 별 것은 없었고, 발등이 긁혀서 피가 좀 났다. 나중에 인도 걸이 그것을 보고 바닷물에 씻으라고 했다. 소독될 거라고.
처음에 무뚝뚝했던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내게 친절해졌다.
크루즈를 끝내고 하노이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케머론과 다시 마주쳤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나를 입구에서 기다리던 그는, “저녁에 만날까?”하고 묻는다. 바쁘면 안 만나도 괜찮다며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보내겠다고 한다.
난 하노이로 돌아와 씻고 나서 다음날 후에로 떠날 비행기 편을 예약하고 숙소를 찾느라 바빠서, 그가 메시지를 보낸 지 한 시간 반 뒤에야 확인을 했다. 만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 되어 버렸다.
난 식당을 찾아 나섰다. 야채 볶음 요리를 시키면서, 메뉴에도 없는 스티키 라이스를 추가로 주문했다.
싸고 훌륭했다. 2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