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롱베이 (Ha Long Bay) 크루즈(1)

- 베트남

by Annie



어제 호스텔 조식으로 쌀국수를 시켰다. 식전 과일로 수박, 파인애플, 바나나가 개인 접시에 담겨 나온다.

쌀국수는 담백한 맛으로 따끈하게 조금 땀이 나면서 힐링 음식이 되어 주었다.

오늘은 시간이 촉박해서 그냥 과일 샐러드에 커피만 마셨다.


호스텔에 머물면서도 난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왜일까? 조금 침체된 느낌. 이별 때문일까? 그냥 조용히 한편에 앉아 컴퓨터로 검색을 하다가 들어가서 잔다.

이층 침대가 유난히 높아서 낙상할까 걱정이다. 여기서 떨어지면 난 진짜 뼈도 못 추릴 것이다. 나이 들면 몸을 다룰 때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마음까지 그러지는 말자. 이 나이에 망치면 무엇을 그리 망치겠나? 그러니 젊었을 때 보다 더 용감해질 일이다.


전날 밤 크루즈 픽업 시간을 물었더니 아침 7시라고 해서 그 시간에 맞추어 로비에 나가 기다렸는데, 8시 20분에야 가이드가 나타났다. 그것도 내가 첫 승객이라 하노이 시내를 다 돌아 픽업하느라 20분이 더 걸렸다.

아침부터 길가에 옹기종기 작고 낮은 의자를 내놓고 앉아, 사람들이 뭔가를 먹고 있다. 밥 먹는 곳도 커피나 차를 마시는 곳도 다그런 식이었다.


뭔가를 먹고 마시지 않는 경우에도, 그렇게들 작은 의자를 내놓고 옹기종기 쪼그려 앉아 있다.

사진을 찍고 싶었고 머릿속에 사진 찍을 장면과 프레임이 착착 서는데, 차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했다. 무방비로 노출된 그들의 사적인 모습을 침해하고 굴욕감을 주는 것 같아서.


내 옆에 앉은 청년은 인도인인데, 현재 싱가포르에 살고 호주에서 공부 중이라고 했다. 그는 일행 몇 명과 함께 탔다. 그중엔 여자 친구도 있는 것 같았다.

또 한 명의 호주인은 장난기가 심했다. 그의 장난기가 아니라면 얼굴 생김새가 조금은 나치 군인 얼굴 같은 느낌이었다. 유난히 각진 얼굴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는 자기 이름을 희화화해서 우리를 웃기기도 했고, 괴상한 웃음소리를 흉내 내기도 했다.


처음엔 내 옆자리 청년이 여자 친구와 함께인 것 같아 말 걸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스페인 여행 때 만났던 커플들을 생각하니, 나의 그런 생각은 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여행지에서 스치는 여행자들이지 않은가. 함께 유쾌하면 그것이 좋은 것이다.


휴게소에서 20분 간 정차했다. 사실은 휴게소가 아니라 쇼핑몰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다시 버스에 올랐을 때, 내 옆 자리엔 그 청년의 여자 친구가 앉아 있었다. 서로 자리를 바꾼 것이다. 그가 불편했든, 그녀가 불편했든, 뭐 그러라지. 그녀는 가는 내내 잠을 잤다.


마침내 하롱베이 항구에 도착했고, 조그만 보트로 1분 정도 가서 크루즈 배로 옮겨 탔다. 맨 앞의 위풍당당한 배들을 지나쳐서 그중 조금 허름해 보이는 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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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2인실을 쓰기로 되어 있었지만, 객실이 여유가 있었던지 혼자 쓰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점심시간에 사이프러스에서 온 초로의 부부와 합석했다. 나는 사이프러스라는 이름을 상당히 아름답고 낭만적인 섬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정치‧경제적으로 인접한 터키와 다투는 불안한 분쟁 지역이라고 했다.


키프로스 공화국. 사이프러스의 다른 이름이었다. 두 개의 다른 이름만큼이나 다른 이미지였다.

남편은 그리스 출신으로 지중해적인 유쾌함이 있었고, 말이 많은 편이었다. 아내는 벨기에인으로, 남편에게 조금은 비판적 시각을 가진 친구사이 정도의 느낌이었다. 하긴 중년을 넘긴 모든 아내들은 남편에 대해 비판적이기 마련이지.


아들이 중국에서 일하고 있어서 아들도 만날 겸, 이 먼 곳까지 여행을 나섰다고 했다. 싼 비행기 표를 찾다 보니,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경유지가 많아서 꼬박 이틀 걸렸다고 했다. 아들이 이번에 휴가를 받으면 한국에 놀러 간다고 했단다.


잠시 후 핀란드 걸 두 명이 우리에게 합류했다. 무척 대조적인 성향의 걸들이었다. 한 명은 눈이 부리부리하고 자세가 아주 곧은 건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이었는데, 얼핏 보면 기네스 펠트로를 연상시키는 외모였다. 그녀의 이름은 한나. 예쁜 얼굴은 아닌데 각진 얼굴형과 입매, 푸른 눈, 서유럽 인들과는 또 다른 아름다운 금발 머리가 그렇게 느끼게 한 것 같다.


다른 한 명은 마른 체형에 얼굴과 이목구비가 다 조그마한 아주 소극적으로 보이는 로라였다. 한나가 대화에 주로 참여하고 로라는 가만히 앉아서 좌중의 대화를 경청했다. 경청한다기보다는 자신 있게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점심 후에 우린 다시 작은 배로 갈아타고 비치로 이동했다. 비치에 남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 전망대를 오르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되는 20분이 주어졌다. 중간에 어떤 코스가 있었을까? 아, 동굴 탐험이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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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조금 흔들리고 있어서 전망대에 오를까 말까 고민했다. 한국에서 검색했을 때 계단을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더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던 터라.

그래도 하롱베이는 사진으로 보고 내가 가장 주체적으로 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라 오르기로 했다.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으므로.


오르다 보니 백발의 7,80대 노인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내리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래. 저들도 가는데. 저렇게 되기 전에 부지런히 다녀야지.

전망은 좋았다. 흐린 날이라 카메라를 통해 보는 그곳은 신비스러운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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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다가 중간쯤에서 올라오는 한나를 만났는데, 그녀가 웃으면서 외쳤다.

“second round!”

한 번으로는 운동량이 부족했는지 두 번씩 왕복을 하는 것이다. 대단하다, 저 에너지!


내려오니 입구에 로라 혼자 앉아 있었다. 우린 그곳에서 한나가 내려올 때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지난번에 그녀와 태국 여행을 함께 했었고, 이번엔 베트남을 거쳐 파타야에 가서 한 달 동안 교생 실습 같은 것을 한다고 했다. 그곳에는 핀란드인 부모, 또는 베트남인과 커플을 이룬 핀란드 인들이 살고 있어서 그 자녀들에게 핀란드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좋은 경험인 것 같다. 나도 그런 케이스로 한 번 가볼까? 동남아 주재 한국인 2세들에게 영어로 한글을 가르치며 더불어 여행도 하고. 분명 어느 나라든 그런 프로그램이 있을 것이다.


한나는 내려와서 수영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잠시 망설이더니, 그래도 하겠다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어떤 상황이든 하고 싶은 일을 어렵게 여기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그 태도가 부러웠다. 나도 수영복을 안에 입고 왔으면 그녀를 따라 물에 들어가고 싶었다. 타월도 없고 갈아입을 옷도 없이 물을 뚝뚝 흘리며 보트에 올라야 하겠지만 기꺼이 했을 것이다.


물속은 몹시 춥더라고 했다. 어쨌든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을 했고, 함께 여행하는 친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혼자서도 내키면 그냥 하는 것이었다.

나 같으면 친구의 의향을 묻고 상대가 원치 않으면, 그냥 함께 주저앉기 마련일 텐데.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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