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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에서 보낸 날들

- 베트남

by Annie


무작정 길을 나섰는데, 걷다 보니 그제 보름달이 뜨던 밤에 왔던 길에 와있다. 시장 안의 먹거리 장터에서 새우볶음국수와 과일 샐러드를 맛있게 먹고, 지금은 카페에 앉아 카페라테를 마시는 중이다. 시장에서 원숭이 바나나 한 손과 망고 한 팩을 사들고 돌아가야지. 그리고 여기 앉아서 어두워질 때까지 글을 쓰다가 다시 한번 밤거리 구경을 하고 돌아가야지.


호이안의 밤 풍경은 그제와 비슷했지만, 또 보아도 좋았다. 그날 보았던 거리와 갤러리, 샵, 카페들이 눈에 익었다. 이곳에서 길을 잃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길을 잃어도 여전히 신기한 곳에 서있을 테니까.

다만 게스트하우스가 시가지에서 도보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어서 밤늦게 돌아오기는 마땅치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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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롯데마트에서 산 반 병 크기의 화이트 와인을 따는데, 주인집 어른이 도와주었다. 시골이라 그런지, 내가 한 번만 웃으면, 그들은 너무도 순박한 웃음과 친절을 보여준다. 정원에 불을 밝혀 놓으니 운치 있고 예뻐서, 와인을 들고 나왔다.


후에의 훼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호이안에서 가까운 곳에 비치가 있다고. 이미 키는 이곳 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나를 잘 케어해달라고 부탁을 해두었다. 그런데 또 전화해서 비치에 대한 정보를 내게 알려주라고 부탁한 모양이다.


주인이 전화해서 지금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라고, 정원에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베트남의 정 많은 사람들이다. 이번 여행의 소득은 현지인들이었다.

어딘가 지근거리에서 스피커로 가라오케가 생중계되어, 소음이 온 동네를 들썩이게 한다. 제발 밤늦은 시간까지는 아니기를.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천천히 씻고 뜰에 나가 앉았다. 아침으로 전통 음식을 시켰다. 나를 포함한 3팀이 뜰에서 식사를 했다.

모처럼 햇살이 비쳐 들고 따뜻해서 식사 후 난 계속 뜰에 남아 여행 안내서를 펼쳐두고 이동 방법, 숙소 등을 검색하며 오전을 보냈다. 뜰은 따뜻하고 예쁘고 아늑했다.


날이 너무 좋은 것 같아 어제 포기했던 비치에 가기로 마음먹고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10분 거리에 요금은 5달러 내외였다. 서둘러 숄더백에 이것저것 구겨 넣고 후다닥 나섰다.

해변은 추웠다. 차가운 바람에 어두운 파도가 밀려왔다. 썬배드에 누워 오후를 보내려던 야심 찬 나의 계획은 위태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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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짜리 맥주 한 병을 시켜 썬배드에 몸을 기대 보았지만, 노력이 애처로울 뿐이었다. 너무 추워서 뒤편 식당에 해물 수프를 시키면서 담요를 청했다. 내 뒤의 서양 할머니들도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한 시간도 못되어 해변에서 철수한 나는 호이안으로 돌아가, 첫 날 보아둔 정말 분위기 있는 카페에 갔다. 카페 입구에는 근사한 도자기 용품들과 선물용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주인의 숨결과 취향이 느껴지는 이곳은 미니멀한 세련됨보다는, 채움으로써 더 아름다워지고 분위기 있어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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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일이면 캄보디아로 넘어가 드디어 키아를 만난다. 혼자 하는 여행이 외로워진 지금 그녀와 함께 하는 여행이 기대된다.


인도네시아 친구 마샾이 페메를 보냈길래, 발리에 대해 물었다. 연중 언제라도 좋은 곳이란다. 그래서 귀국 티켓을 바꾸어 태국 대신 발리로 갈까 하고 확인했더니, 이미 발권된 티켓은 환불 불가란다.

난 발리에 갈 마음을 접으면서 ‘그래, 치앙마이. 넌 내 운명이다.’라고 주문을 걸었다. 마샾은 언제든지 오라고, 자기와 함께 여행하자고 했다. 든든하다.

그래, 언제고 발리에 가야지.


베트남 체류 마지막 날, 호이안 시내에서 돌아와 게스트하우스 주인들과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태국에 간다고 하자 태국의 음식들 얘기도 해주고, 태국 가면 꼭 사라고 1달러짜리 천연 분말 파우더도 보여주고, 마사지나 건조한 피부, 발이나 손등에 바르면 좋다고 밤(balm)도 강력 추천해주었다.


내가 코코넛 오일을 사고 싶었다고 하니까, 당장 집에서 쓰던 생수병에 가득 담긴 코코넛 오일을 갖고 와 선물로 주었다. 1년 동안 보관 가능하며, 먹기도 하고 바르기도 한단다.


안주인은 리나가 사준 분홍빛 드림캐처를 내가 침대 머리맡에 걸어둔 걸 보았다고, 티브이에서나 보던 정말 로맨틱한 물건이라고 했다. 베트남 소녀가 여기 호이안에서 사준 것이라고 하자 자기는 한 번도 못 봤다고 했다.


IMG_2965.jpg 리나가 사준 드림 캐처를 이곳 민박에



나는 리나가 그것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을 때, 이미 그녀의 마음을 받았다. 그러니 나는 여기 민박집주인에게 그것을 선물함으로써, 내 마음을 나누기로 했다.

그렇게 그 드림 캐처는 민박집에서 또 하나의 스토리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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