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 농장
문신 남은 내가 뗏목에서 내릴 때마다 내 손을 잡아주었다. 좋은 사람 같다. 진즉 좀 더 얘기 나누어 볼 걸. 뱀부 래프팅 후에 우린 코끼리 농장으로 갔다. 알고 보니 차 트렁크에 실린 그 많은 바나나 자루들은 코끼리 먹이였다. 코끼리에게 바나나 먹이를 주는, 우리 체험활동을 위한 것이었다.
단지 남들이 하는 것을 어디선가 본 대로 할 뿐, 별다른 것은 없었다. 그래도 다들 즐거워하며 사진도 열심히들 찍었다.
관광객들이 코끼리를 타면서 학대하는 것 같은 나쁜 이미지를 완화시키기 위해, 요즘엔 먹이도 주고 목욕도 시키며 동물을 돌보는 체험을 끼워 넣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코끼리를 타는 것은 프로그램에 없었기 때문에, 먹이를 줄 때까지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코끼리들을 강으로 데리고 가서 씻긴다고 하니까, 순간 그 기사가 떠올라서 나는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강에 들어가지 않고 멀리 물러나 혼자 서있었다.
코끼리들은 강에서 나오자마자, 열심히 씻긴 보람도 없이 코로 흙을 집어서 몸 전체에 뿌려댔다. 아마 추워서 몸을 말리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바나나 먹이를 줄 때, 코끼리의 몸에 흙물이 잔뜩 묻어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럼 이 코끼리들은 관광객 그룹이 올 때마다 차가운 물에 몸이 씻겨지고, 흙먼지로 몸을 말리기를 되풀이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들을 씻기는 게 이들을 돌보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학대라는 것인가?
목에 링을 끼워서 평생 긴 목을 유지하는 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는 그것이 미의 기준, 부와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사라진 전통이라고 한다.
그 링을 끼운 여자들은 목을 지탱할 근육이 발달하지 않아서 링을 제거하는 순간 목이 꺾어져 사망한다고 한다.
이제 전통의 가치마저 사라져서, 링을 끼워야 할 어떤 의미도 없어졌다. 그런데 이를 보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이 있어서, 돈을 벌기 위해 링을 끼우는 여자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대체 관광이란 게 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은 관광지가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관광객들의 취향에 맞는 관광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억지스럽게 돌아가는 이 시스템이.
트래킹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친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빠이에서 돌아오는 중이야. 늦어도 한 시간 정도면 호텔에 도착할 거 같아. 만날래?”
‘오홍!’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1박 2일을 또 새롭게 보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호스텔 친구들과 선데이 마켓이랑 클럽에 가자고 했었는데, 그건 미룰 수 있다.
일단 마친을 만나본 후에 결정할 수도 있고. 도착해서 샤워하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는데 소식이 없다. 빠이에서 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오는데 저녁에 나를 만나려면,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그래도 뭐 그러겠다는데.
메일은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몹시 느리고 피곤한 수단이었다. 그가 나이트 마켓에서 보자고 한다. 호스텔에서 나이트 마켓까지 거리가 꽤 멀었다. 오는 길도 번화가가 아니라 이미 어두워진 시간에 걷기도 무서웠다.
그래, 뭔가가 있겠지. 이 어려움 뒤에는.
지나가는 태국 여성들에게 길을 물으니 가르쳐 주고 그들은 차에 탄다. 잠시 후 차가 한 대 내 옆에 서더니, 그녀들이 나를 부르며 타라고 손짓했다.
운전석에는 남자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들이 세련된 외모에 착해 보여서 그냥 탔다. 차로도 꽤 먼 거리였다. 무서움이 전혀 없진 않았으나 믿을만한 젊은이들 같았다. 그들은 친절하게 나를 나이트 마켓에 내려주고 갔다.
혼자 걸어왔더라면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나이트 마켓에 도착해서 메시지를 보냈더니 한 참 후에 답이 왔다.
“미안해. 너무 피곤해서 못 나가겠어. 내 호텔 룸에서 맥주를 마시는 건 어때?”
‘이건 뭐야?’
순간 기분이 급 우울해졌다. 날 원나잇 상대로 만나겠다는 거였어?
서양 젊은이들에게는 여행하며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일지 모르겠지만, 상대가 나를 이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밀려왔다.
또한 그간의 여행에서 마주쳤던 사람들과의 좋았던 기억 모두가 순식간에 어둡게 침몰해 버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바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나이트 마켓에서 만나자. 네 호텔 룸 말고 ㅋㅋ.”난 애써 그 메시지를 농담처럼 넘기며 나이트 마켓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냥 아무 답도 하지 말고 호스텔로 돌아갔어야 했다.
“올 거야, 말 거야?”
“내가 피곤해서... 내 호텔 룸에 함께 맥주 마시러 오겠다면 환영이야.”
‘000! 날 이렇게 고생시키며 저녁시간을 온통 망쳐 놓고 한다는 소리가.’
정말 욕이 터져 나왔지만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100바트나 하는 택시를 타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기사가 150바트 부르는 걸 100바트까지 깎았더니 그는 짜증이 묻은 운전을 했다.
재수 옴 붙었다.
그냥 무시해 버릴까 하다 돌아와서 메시지를 보냈다.
“Good night”
그에게서 답이 왔다.
“Thank you”
조금은 위로가 됐다.
돌아갈 날이 점점 다가온다. 이제 빠이에서 3일 머무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어쩐지 여행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준비 없이 귀국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