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트래킹(3)

- 뱀부 래프팅

by Annie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마신 후, 남은 생수로 겨우 이를 닦고 눈곱만 떼었다. 아침 식사는 토스트와 삶은 계란, 커피였다. 호기심 많은 남자는 연신 부엌을 들랑거리며 그들의 밥을 나눠먹기도 하고 뭔가 자꾸 말을 걸기도 했다. 대단하다.


여자는 간호사라고 했다. 잠시 일을 쉴 기회가 있어서 부부가 일 년 동안 여행을 하기로 했다고. 돌아가면 언제든지 다시 일을 할 수 있으니 그들은 행운아였다.

출발 후 다시 연못 같은 곳에서 멈추었지만, 이탈리아 커플만 잠시 수영을 하고 우린 그저 시간을 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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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물 위로 통나무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나는 파블로를 불러서 다리 위로 올라가 보라고 했다. 그가 싫다고 했다. 저기 위에서 함께 사진 찍자고 했더니, 그때서야 다리 위로 올라섰다.

우리는 문신 남 팀 중의 한 명에게 내 휴대폰으로 우리를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을 찍고 다리에서 내려오자 파블로는 나를 보고 “고마워, 애니.”라고 했다.


여행 초보에, 영어도 서툴고, 사교적이지도 못한 그에게 말 붙여주고 챙겨주는 내가 그에게는 선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다음 코스는 뱀부 래프팅이었다. ‘우와! 근사한데!’ 뱀부 뗏목에 서너 명씩 나누어 타고, 숲 속의 작은 계곡을 따라 사공이 노를 저어 내려갔다. 계곡 양쪽으로 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주변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나는 클레멘트와 양팔을 다채로운 색깔의 문신으로 가득 채운 프랑스 남자랑 함께 탔다.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앉아 쉴 때, 내가 문신에 관심을 보이면서 독특하고 아름답다고 했더니 무척 좋아했다. 양쪽 팔 전체, 양쪽 가슴까지 옷을 젖히고 보여주었다.

한국에서는 너처럼 문신을 많이 한 사람들은 모두 갱스터라고 했더니 다들 크게 웃는다. 프랑스에서는 이 정도 문신이 아주 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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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 못하는 자기 그룹(3명)에게 프랑스인들 외에는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조금 소외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지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클레멘트는 유타와 동갑인 21살. 스마트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러나 지난밤 게임에서 엉성한 파블로가 두 번이나 찾아낸 답을 그가 찾지 못하는 걸 보면, 생각만큼 깍쟁이 엘리트는 아닌 것 같다.

사실 스물한 살이면 애나 다름없는데, 서양 애들은 그 나이에 어른 같다. 외모를 떠나서도 생각하는 거나 그 자신감이나 모든 면에서.


클레멘트가 빈 틈 없는 사업가나 금융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 보며, 지금처럼 여행하며 삶을 누릴 수 있는 여유를 잃지 않고 살아 주었으면 싶었다. 그런데 그가 독일 걸들과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자기가 공부했던 마케팅이나 회계 쪽의 분야가 그의 적성에 맞지 않고, 숫자에 밝지도 않다고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약간의 조현병을 앓아서 그때부터 약을 먹고 있지만, 약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는 등의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그런 걸 보면 내가 그렸던 그의 미래에 대한 그림은 영 틀린 것 같다. 뗏목에서 그런 말을 했더니 자기는 내가 그린 그 그림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요즘엔 한국의 젊은이들도 서양의 젊은이들처럼 다부지게 해외여행을 하며 견문을 쌓는 경우가 많아졌다. 좋은 일이다. 동서양의 그런 젊은이들을 보며, 늘 우리 아이들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난 내가 그렇게 돌아다니느라 바쁘고, 그들은 그들대로, 그런 욕구나 하고 있는 일, 시간이나 경제적 기반 등이 맞아떨어지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다.

제일 중요한 건 욕구와 의지다. 그것은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년쯤 전에 대학에 다니던 큰 딸에게 캐나다 랭귀지 코스 1년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학비는 내가 지원해 줄 테니,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비는 스스로 감당하라고 했는데, 딸은 영 내켜하지 않았다. 나의 간곡한 설득에도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그 후 뷰티 샵에 뜻을 두고 학교를 휴학한 딸은 혹독한 수습 과정 끝에 자기 샵을 열어 운영 중이다. 그런 그 애가 최근에 이렇게 말한다.

“엄마, 그때 내가 캐나다 안 간다고 했을 때 머리채를 끌어서라도 보내지 그랬어. 엄마 말대로 그때 캐나다에 갔어야 했어. 이제 와서 느낀 건데, 캐나다 유학 1년과 ‘돼지 한 마리’(식당) 1년 알바 경력은 하늘과 땅 차이더라고. 정말 땅을 치며 후회하는 중이야.”


그때 내가 머리채를 끌어 보냈더라면 더 나았을까? 아닐 것이다. 본인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어야 한다. 물론 ‘돼지 한 마리’ 알바 1년이 보잘것없는 이력이긴 하나, 그렇게 보낸 1년이 지금 그렇게 독립적이고 똑 부러진 생활 태도의 기반이 되어주기도 했고, 당차게 자신의 샵을 운영하는 힘이 되기도 했으니 결과적으로 나쁘지는 않다.


다만 견문을 넓힐 기회를 잃었다는 것,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는 것. 그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삶에는 늘 선택의 기로가 있고, 그것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결정짓는 커다란 변수로 작용한다. 매 고비마다 수동적인 포기가 아닌, 적극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만큼 살아보니, 그렇다는 것을 알겠다.


- 치앙마이 트래킹(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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