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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마르타

- 콜롬비아

by Annie


산타마르타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내내 바다가 보였고, 바다 이전에 호수도 보였고, 선인장도 보였다. 이렇게 바다가 길게 걸쳐져 있으면 거기 가서 생선 요리를 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차 안에서는 나른하게 졸렸지만 마음은 평화로웠다.


버스에서 내려 구글맵으로 호스텔의 방향을 잡았다. 지도상으로는 거의 다 왔는데 호스텔이 보이지 않아, 한 식당 앞에 나와있는 아저씨에게 주소를 보여주며 물었다. 지금까지 왔던 반대 방향으로 세 블록을 더 가야 한다고 했다.

난 아직도 구글맵을 보는 게 이렇게 엉터리란 말인가 속상해하며, 그 아저씨가 말한 대로 세 블록을 더 가보았다. 어깨에 들쳐 맨 큰 짐가방이 무거웠다.


여기가 세 블록 째가 맞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호스텔처럼 보이는 곳은 없었다. 난 한숨을 내쉬며 다시 구글맵을 켰다. 구글맵은 여전히 내가 처음에 갔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쩌란 말인가.

난 다시 방향을 잡아 지도를 따라가 보았다. 좀 전에 버스에서 내렸던 커다란 중심 도로를 벌써 세 번째 다시 건너고 있다.


결국 내가 길을 물었던 곳, 그 식당보다 한 블록 덜 가서 오른쪽 길로 조금 가다 보니 거기에 호스텔이 있었다. 그 아저씨는 내게 어떤 설명을 해주었던 것일까? 물론 스페인어와 손짓으로 알려주었으니, 여행 전에 겨우 깨쳐서 간 숫자 이외에는 제대로 알아들었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긴 했다.


체크인을 하고 점심도 먹을 겸, 일단 밖으로 나왔다. 좀 전의 그 식당으로 갔더니 그 아저씨가 나를 반긴다.

식당 안에서 일하고 있는 몸집이 큰 남자를 가리키며 자기 아들이라고 했다. 생선 튀김을 시켰더니 수프가 먼저 나온다. 큼직하게 썬 감자가 들어있는 수프였는데 보기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뒤이어 나온 생선도 겉은 바삭한데 속은 촉촉하고 살도 두툼한 게 아주 맛있었다.


다 먹고 나서 계산대에 가서 얼마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14라고 한다. 그런데 저편에 있던 그 아저씨가 아니라고, 20이라고 한다. 순간 아들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지며 20이라고 한다. 왠지 수상한 이 분위기는 뭐지? 식당을 나선 내 뒤통수로, 어쩐지 그 부자가 관광객인 나에게 바가지를 씌운 것 같은 꺼림칙함이 따라붙는다.


오후에는 민카 대신에 호스텔 주인이 추천해준 타강가 해변에 왔다. 호스텔 주인이 택시를 불러주며, 12페소를 주면 된다고 했는데 내릴 때 기사는 15페소를 달라고 했다. 굳이 가격을 다투지는 않았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해변은 정말 볼품없었다. 지금껏 보아온 해변들처럼 물빛이 예쁜 것도 아니고 모래도 거무튀튀한 데다 거칠었다. 택시를 타고 언덕을 내려올 때는 그래도 민둥산 아래로 보이는 시원한 바다 풍경이 그럴싸했지만, 막상 내려와 보니 절대로 물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 곳이었다.


10페소를 주고 비치 의자를 빌렸다. 의자에 타월을 깔고 누워 마스크를 쓰고, 그 위에 또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이곳은 고도가 높아서 지역민들도 피부가 많이 그을린다고 한다. 한국에서 가져온 마스크가 그 빛을 발하는 곳이다. ‘내 얼굴은 내가 지킨다’ 하며 햇빛으로부터 얼굴을 철벽 방어했다.


해변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음은 아주 편안했다. 눈을 감고 누워 있으니, 적당한 음악과 사람들 소리가 섞여 들린다. 다들 그렇게 별 볼품없는 이곳을 즐기는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 나 또한 멋있을 필요도 없으니 더욱 편하다.


바람은 시원하고 하늘도 그런대로 맑았다. 나무 그늘 아래 누워 나뭇잎들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았다. 글을 쓰다 지치면 누워서 한 숨 졸기도 했다. 오래는 못 잔다. 가방 속의 지갑과 휴대폰을 지켜야 하므로.

그곳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호스텔로 돌아왔지만 아직 해가 지지 않아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백 미터도 안 되는 곳에 바다가 있었다.

바닷가 주변에는 작은 테이블 위에 가벼운 먹거리와 음료를 두고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난 맥주 한 캔을 사들고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그곳을 배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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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은 기대 이상으로 예뻤다. 난 모래사장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그 풍경을 즐겼다.

정우는 그가 보내주었던 사진이 성이 아니고, 카르테헤나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다시 검색해보더니, 콜롬비아 남부에 있는 수도원이라고 했다. 다시 검색한 사진은 처음 그가 보냈던 사진과는 다른 구도였지만 여전히 섬세한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특히 그 건축물이 캐년 아래에 지었다는 것에 불가사의한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그는 내게 그곳에 가라고 했다.



콜롬비아 - 1 (66).jpg 이피알레스의 라스 라하스 성당 - 카톡으로 보내준 사진 차용


그러려면 일단 콜롬비아 체류 기간을 연장해야 하고, 이미 예매해 둔 리마 행 비행기도 취소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한지는 메데진에 갈 때 공항에서 알아봐야겠다. 그렇게 콜롬비아에 일주일 더 머물게 되면 칼리에도 들르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뽀빠얀에 사는 줄리앙과 오스칼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내겐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것이 성사된다면 그건 운명이 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다시 콜롬비아에 오게 될 발판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을 떠나기 전 여행 정보를 검색하다가, 칼리에 있는 한국 문화원에서 한국어 교사를 구한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1년 이상 체류를 원한다고 했는데, 그곳에 있는 동안 스페인어도 배우고 살사도 배우면서 생활할 수 있다는 말에 혹했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내가 6개월 이상 칼리에 머무는 것에 대해 흥미가 있다고 하자, 정우는 감정이 복받쳤다. 내가 남미 여행 3개월에 그보다 6개월을 더 떠나 있을 거라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다며.

그는 결국 못 참고 전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가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미소 짓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어느 순간 내 목소리가 타이트해졌다고, 그건 내가 웃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너무 오랜만이었다고, 그에 대해 냉담해 있는 이 상황에서도 내가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기뻤다고 했다.


내가 그랬다면, 그것은 아마 습관이었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를 듣거나 그를 보면 자동반사처럼 늘 그랬던. 그는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느낀다고 했다. 그의 평화가 나의 평화가 될까? 내가 평화롭지 않는 한, 그는 절대로 평화롭지 못하겠지만.


더 어두워지기 전에 그곳을 떠나,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목의 시장에서 아이 머리통만 한 아보카도를 하나 사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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