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롬비아
아침 일찍 호스텔을 나서 국립공원 행 버스를 탔다. 서둘러서 일찍 왔는데도 국립공원 매표소에는 긴 줄이 서있었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표를 받아 들긴 했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몇몇 사람들이 미니밴에 타는 것이 보였는데, 난 어설픈 검색 정보에 따라 그냥 걸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길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었다. 난 왜 그 미니밴에 타지 않았을까 발등을 찍고 싶었다. 그렇게 3삼십 분 쯤 걸었을까,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앞에 멈추더니 어디에 가느냐고 물었다. 국립공원 비치에 간다고 했더니,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다며 오토바이로 갈 수 있는 곳까지는 태워주겠다고, 거기서부터 걸어가면 될 거라고 했다.
이 친절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 할지 말지 잠깐 망설였지만, 이 끝없는 길 위에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아 그냥 오토바이 뒤에 올라탔다. 아! 난 이 오토바이 청년이 아니었더라면, 그 먼 길을 혼자서 얼마나 더 정처 없이 걸었을까?
한참을 그렇게 오토바이로 달린 후에 무슨 야영지 같은 곳에 이르렀다. 미니밴도 이곳까지만 운행하니, 돌아갈 때는 이곳에서 미니밴을 타면 된다고 했다. 그는 나무들이 늘어선 풀밭 쪽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40분 정도 걸어가면, 비치가 나올 거라고 했다.
그렇지만 내가 원래 가고자 했던 비치는 미니밴에서 내려서도 2시간 정도 걸어가야 하는 곳이라고 들었던 참이다. 그곳은 주변에 캠핑장도 있는 정말 아름다운 해변이라고 했는데, 그때는 정확한 이름을 알지 못해 다시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곳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다는 말인가?
10분 정도 걸었을까, 키 작은 나무들이 엉켜있는 숲이 나왔다. 그런데 바닥은 모래다. 이것은 산인가, 해변인가?
조금 걷다 보니 방갈로 같은 것들이 보이고 아래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정자가 보이는데, 한 커플이 그곳에서 쉬고 있었다. 내가 그 아래 해변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본 그들이 내게 일러주었다. 저기는 파도가 세서 수영을 할 수 없다고, 내려가지 말고 저쪽으로 30분쯤 더 걸어가야 제대로 된 해변이 나온다고.
나는 그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풀숲으로 작은 길이 나있긴 했지만, 인적 없이 햇빛 쨍쨍한 그 길을 혼자서 30분 동안 걸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잠시 생각해보았다.
이미 공원 입구에서 표를 사기 위해 거의 두 시간을 소비했고, 미니밴 정류장까지 오는데도 벌써 40분 넘게 걸렸다. 그런데 30분을 더 걸어서 그 비치에 도착한다손 치더라도, 다시 돌아 나와 산타마르타로 돌아가야 하는데, 시간도 촉박한 데다 그 일정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어딘지도 모를 길을 혼자서 힘들게 걸어갔다가 오기보다는, 그냥 저기 보이는 해변에서 놀다 가기로 마음먹었다. 위에서 내려다본 이 해변도 너무 아름다웠다. 전투력을 상실한 나는 눈앞의 근사한 해변과 타협했다.
커다란 바위들 아래로 내려가 보니, 일행인지 그쪽에만 사람이 몇 명 모여 있고 나머지는 거의 텅 빈 작은 해변이었다. 그러나 짙푸른 물빛이 너무 시원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난 모래 위를 걸어서 커다란 바위들이 그늘을 만들어주는 곳에 내 자리를 펴기로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기까지 물이 차있었는지 모래는 젖어 있었다.
비치 타월 대용으로 쓰는 커다랗고 얇은 스카프를 모래 위에 펴고, 안에 입은 비키니만 남긴 채 옷을 벗고 그 위에 드러누웠다. 혼자서도 갖출 건 다 갖추어야 했다.
‘아! 편안하고 좋다!’
물빛이 너무나 파란데, 너무 맑은 파란색이다. 백팩에서 주섬주섬 물품들을 꺼냈다. 어제 길거리에선 산 커다란 아보카도 반쪽과 플라스틱 스푼, 빵과 물도 꺼내서 오붓한 점심을 즐긴다.
사십 분 동안 또는 두 시간 동안 더 뙤약볕 아래를 걸어서 더 아름다운 해변이 나온다 한들, 이만큼 흡족할까 싶다.
나중에 돌아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목표로 가는, 캠핑장이 있는 최종 목적지는 '카보 산 후안'이라는 해변으로, 내가 멈춘 그곳에서 한 시간 반 정도는 더 가야 하는 곳이었다. 다만 거기까지 가는 도중에도 아름다운 해변이 몇 개 더 있다고 했다.
검색해보니 과연 과연 아름다운 곳이기는 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두 갈래 길 위에서 선택하지 않았던, 그래서 가보지 않은 길이니, 어쩌면 더 아름다웠거나 더 가슴 벅찬 경험을 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바다와 혼자서 누렸던 시간은, 여행에서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곳은 그냥 처음 와보는 내 소유의 섬 같다는, 그리고 눈앞의 바다 또한 그 섬앞의 바다 같다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