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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로 남은 도시, 메데진

- 파티 버스, 파티 호스텔, 파티 클럽

by Annie


호스텔 근처의 아담한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음식이 정말 근사하고 맛도 좋았다. 그 식당은 다른 호스텔과 맞붙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젊은이 두 명이 나오더니 내게로 다가왔다. 자기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행객인데 여행 경비도 벌 겸, 아르헨티나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다며 조금 사겠느냐고 물었다.


나중에 남미의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자주 접하게 된, 일종의 만두 같은 엠빠나다였다. 물론 그들이 내게 그것을 팔 당시에는 엠빠나다가 무엇인지도 몰랐었다. 난 흔쾌히 두 개를 달라고 했다. 내가 이미 식당에 주문한 음식도 훌륭해서, 나는 좀 과하다 싶을 만큼의 점심을 먹었다. 야외 테이블이 있어서 무척 여유로웠던 그 식당이 마음에 들어, 내일도 다시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주변을 좀 탐색해 보았다. 바로 앞에 지하철 역이 있었고 그 뒤로는 공원 같은 것이 있었다. 지하철 역에 들어가 시내로 가는 노선을 확인해 보고는, 공원과 길 건너 동네를 돌아보았지만 별로 시선을 끄는 곳은 없었다. 중심 도로 양쪽으로 많은 식당과 바들이 줄지어 있었다.


해질 무렵, 나는 정우가 권한 치바 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야경을 보며 도시 투어를 하는 건데, 차 안에서 음악에 맞춰 춤도 추고 맥주도 마시며 즐기는 일종의 파티 버스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매표소에서 만났던 마리아와 동행이 되었다. 그녀는 콜롬비아 출신으로 지금 미국 뉴저지에 사는데 이곳의 가족들을 방문하는 중이었고, 사촌들이랑 사촌의 여자 친구도 이 투어버스에 함께 타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자기 이웃이 한국인인데 사람들이 너무 따뜻하다며 그들의 사진까지 보여주었다. 모두 영어 한마디 못하는 사람들 틈에서, 그녀가 있어서 얘기도 하고 그녀가 통역도 해주고 그랬다. 더불어 버스에서 혼자 뻘쭘하게 있지 않아도 되었고, 시티 투어를 위해 버스가 멈추는 곳마다 그녀의 일행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었다.



콜롬비아 - 1 (63).jpg 치바 버스 내부. 창 너머로 도로변 식당 내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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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에너지가 넘치는 여자였다. 버스에 탄 20여 명쯤 되는 사람들 거의 모두에게 말을 걸고, 한 구석에 앉아있던 초로의 남자를 끌어내 춤을 추게도 했다. 그는 치바 버스 투어가 끝난 후에, 우리와 함께 바에도 갔다. 우리는 독한 콜롬비안 위스키, 아구아스 깔리안떼스를 마시고 춤도 추었다.


그는 70이 넘은 노구였는데도 춤은 정말 노련하게 잘 추었다. 마리아랑 그녀의 사촌 카밀라(19세)도 그와 함께 춤을 추었는데, 그는 정말 리드를 잘했고 함께 추는 여성들을 아름답고 돋보이게 해 주었다. 나도 그와 함께 춤을 추었다.

그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슬쩍슬쩍 팔다리를 움직일 뿐인데도, 나는 편안하고 우아하게 턴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춤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는 그냥 내가 원래 출 줄 아는 춤을 함께 추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해 주었다.


나중에 마리아 사촌 커플이 몸을 밀착시켜 추는 춤을 가리키며, 나더러 저런 춤도 한번 추어보겠느냐고 해서 난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카미유가 그와 함께 그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내 판단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카미유는 즐겁게 그의 리드에 맞추어 춤을 추었고, 그녀가 나비처럼 사뿐사뿐 춤추는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마치 두 사람이 연주를 주고받으며 계속 변주해 가는 것 같아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결국 나중에는 나도 그와 그 춤을 추게 되었는데, 사실상 자리에 앉아서 보던 만큼 그렇게 몸을 밀착시키는 것도 아니고 생각만큼 어렵지도 않았다. 다음 동작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머리를 비운 채 그의 리드와 리듬을 따라가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춤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남미의 남자들은 춤이 그렇게 몸에 배어서, 그 나이에도 그렇게 능숙한 몸놀림으로 춤을 추나보다. 다만 그는 두어 곡 연달아 추고 나면 좀 지쳐했다.


치바 버스로 투어 하던 도중에 마리아 가족들과 바 레스토랑에 들러, 피자 두 판을 시켜서 함께 먹었다. 보통 피자 위에 포테이토를 토핑 하듯 아보카도를 얹었는데, 그 모양이 너무 보기 좋았다. 이 저녁의 모든 것에 대한 감사로 난 마리아에게 보태서 계산하라고 50페소(만 칠천 원) 짜리 지폐를 건넸으나, 그녀는 극구 사양했다.

결국 바에 가서 춤추고 마신 후에 계산할 때, 그 50페소를 내가 보탰다. 우리 돈으로 하자면 큰돈은 아니었지만, 그곳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들은 호스텔까지 걸어서 나를 데려다주고,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나는 마리아에게 한국에서 다시 보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러다가 한국에 무료 게스트 하우스 차리게 생겼다. 좋은 일 아닌가?

친구도 별로 없이 조금은 적적한 난데,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에 와서 우리 집에 머물기도 하고, 함께 돌아다니며 사는 얘기도 하고, 그러면 또 다른 형태의 여행이 되어줄 것 같다.


밤 12시가 다되어 호스텔에 돌아와 보니, 호스텔은 요란한 음악과 술에 취한 젊은이들이 거의 흐느적대며 어울리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도 인사를 했고, 그중 한국에 가본 적이 있다는 이가 홍대 주변도 가봤다며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다들 이미 취해 있는데 혼자 멀쩡한 정신으로 합류하기도 그래서, 외곽에서 휴대폰 충전을 하며 정우와 카톡을 나누었다.


그런데 잠시 후, 한국에 가본 적이 있다는 그 술 취한 청년이 비칠거리며 다가오더니 함께 춤을 추자고 했다. 잠깐 함께 춤을 추었는데 갑자기 나를 들어 올리려는 듯하며 내 엉덩이에 손이 갔다. 순간 질색을 하며 그를 밀어냈더니, 이후로도 계속 와서 미안하다는 소리를 했다.


그렇게 휴대폰 충전을 하고, 샤워를 마쳤을 때는 새벽 두 시 가까이 되었다. 그때서야 음악도, 왁자한 얘기 소리도 좀 잠잠해졌다. 이후로는 귀마개를 못하고 잤는데도 늦은 아침까지 꿀잠을 잤다. 다들 비슷한 시간에 곯아떨어져서 아침까지도 조용했기 때문이다.


어제 그 레스토랑에 가서 커피 마셔야지, 아니면 기왕 시내에 나갈 거면 보떼로 광장에서 근사한 카페를 찾아봐야지 하고 호스텔을 나섰다.

그 레스토랑은 아직 문을 안 열었다. 난 지하철을 타고 보떼로 광장으로 갔다. 엄청 크고 근사한 광장을 기대했던 내게, 그곳은 보떼로 그림에서 본 남녀의 조각상들이 줄지어 있는 것 외에는 별 특별할 것이 없는 곳이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모닝 망고를 해야지 하며 자른 망고 한 컵을 사들고, 마땅히 앉을 데가 없어서 선채로 조금 걸으면서 먹었다.


그리고는 아무리 걸어도 근사한 카페라고는 그림자도 안 보이고, 시장 골목이나 깔끔하지 않은 상가들이 이어졌다. 한참을 헤매다 보니, 걸어서는 이 지역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아 무작정 한 버스를 탔다. 어딘가 좀 더 번화한 곳으로 가주기를 바라며.


그러나 이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진입했고, 한참을 그렇게 가더니 산동네 가파른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에 봄이가 카톡을 보내왔다. 아침에 내 사진 액자가 떨어져 귀퉁이가 약간 부서졌다고, 걱정이 되어 죽겠다며 이상한 데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상한 데 가고 있는데...


남미에서는 관광지역을 벗어나면 치안이 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서워서 중간에 내리지도 못하고, 어딘가에서 내려 다시 돌아오는 버스를 타야 할 텐데 불안했다. 버스는 산동네 꼭대기까지 갈 모양이다.


메데진은 도시를 둘러싼 산 위에, 한국의 부산처럼 산동네들이 정말 높은 곳까지 밀집되어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산동네 아래로 멀리 내려다보이는 메데진 시가지를 구경하면 좋을 것 같았지만, 바깥은 땡볕인 데다 겁이 나서 내릴 수가 없었다.

결국 종점까지 가서, 기사가 어디 가는 거냐고 물을 때까지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시내로 돌아갈 거라고 했더니, 그럼 버스 비를 다시 내라고 했다. 그거야 당연하지. 데려다 주기만 한다면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예전에는 그곳이 상당히 위험한 지역이라고 했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에 집들도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마약 조직원들이 숨어들기에 좋았다고, 그래서 총격전이 자주 벌어지는 곳이기도 했다고 한다. 휴우, 봄이 걱정이 맞았나 보네.


막 즐겁거나 흡족한 나들이는 아니었지만 새로운, 그러나 부러 할 것 같지는 않은 모험이었다. 정확히 버스를 탔던 지점으로 돌아가, 전자상가에서 유심 침 2기가를 추가 충전했다. 인터넷을 충분히 쓸 수 있어야, 숙소도 예약하고 정보도 검색할 수 있을 테니까.


아무리 헤매도 보이지 않던 상상 속의 근사한 카페는, 결국 구글 맵을 통해 하나 찾았다. 그곳에 가기 위해 20분 동안 택시를 탔는데, 다행히 택시비는 10페소(3,500원)로 싼 편이었다.


‘Cafe Revolution’, 안마당에 아담하게 야자수 나무가 심어진 호젓한 분위기의 카페였다. 그늘도 있고, 설렁설렁 안으로 불어 드는 바람도 있어서 시원했다. 무엇보다 여염집 마당처럼 한적하고 고요해서, 오래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커피와 바나나 케이크 한 조각을 시키고 제일 급한 화장실을 들른 후에, 내일 가야 할 과타페의 숙소를 검색했다. 어떤 숙소를 고를지 쉽지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까사의 1인실을 쓰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었다.

급 피곤해진다. 호스텔에 가면 새벽까지 시끄러워 잠도 못 잘 텐데 이렇게 피곤해서 어떡하지.


여행 중에 동행을 만나지 못해도, 절경을 보지 못해도, 특별한 사건이나 일이 없어도 괜찮다. 이것은 나 자신과의 여행이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나를 돌보는 행위이다. 이렇게 평범해도 된다. 나는 이렇게 자신을 다독여본다.


사람들이 왜 메데진을 좋다고 하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메데진에서 무엇을 놓친 걸까?

아무 버스나 집어타고 산동네까지 갔다가 내려온 것, 카페 레볼루션에 갔던 것, 맛이 너무 좋아 이틀 연속 갔었던 호스텔 근처의 아담한 식당. 어떻게 요리 속의 치킨이 그렇게까지 부드러울 수가 있지? 그리고 치바 버스에서 만난 마리아와 그 사촌들, 흐느적흐느적 취한 이들이 묵는 이곳, 백패커스 호스텔 등이 이곳의 기억으로 떠오른다.


이 호스텔은 정말 정이 안 가는 곳이다. 그래도 이틀째에는 이른 저녁을 먹고 들어가, 2층의 야외 라운지를 선점하고 나니 나름 그곳에서 듣는 음악이 좋았다. 너무 조용해서 숨이 막히는 분위기보다 훨씬 낫기는 하다.

어디서나 쭈뼛쭈뼛 눈치를 볼 게 아니라, 주도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심지어 호스텔 화장실이나 샤워실, 카페나 식당에서도. 나는 그 공간을 내가 원하는 만큼 당당하게 점유할 권리가 있다. 소심하게 초조해하지도, 미안해하지도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어진 시간을 누릴 일이다.


내일 아침에는 눈뜨는 대로 북부 터미널에 가서 과타페행 버스를 타야 한다. 그곳에서 이틀 묵은 후에 아르메니아 솔렌티아로 7시간 이동할 계획이다. 아침 8시 버스를 타면 오후 3시에 도착해서 다음날 5시간짜리 트레킹 투어를 하고, 그다음 날에 보고타로 돌아간다. 아주 빠듯한 일정이다.


예약해둔 페루행 비행기 값 32만 원을 포기하고, 육로로 칼리와 뽀빠얀, 이피알레스를 거쳐 에쿠아도르와 페루로 육로 이동할 것인가. 아니면 예정대로 비행기를 타고 리마로 직행할 것인가, 고민이다.

내일 과타페에 가면 좀 한가로이 쉬고 싶다. 잠도 많이, 푹 자고.


이층 라운지에서 내려왔더니, 전에 얘기 나눈 적이 있던 이가 다가와 물었다. 다른 애들 몇 명과 클럽에 갈 건데 함께 가겠느냐고. 우린 택시 두 대를 나누어 타고 시내 클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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