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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같은 단어, 에어로뿌에르또

- 과타페, 콜롬비아

by Annie



과타페 호스텔을 나와 메데진행 버스를 탔다. 난 도중에 과르메에서 내려 공항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큰 가방과 백팩을 메고 차에 타보니 앉을자리가 없었다. 한참 두리번거리고 있으니까 운전석 뒤의 데크 같은 곳에 걸터앉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양쪽으로 조금씩 물러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큰 가방을 들고 짧은 치마를 입은 내가 그 자리에 앉는 게 불안해 보였는지, 한 콜롬비아 아저씨가 일어서더니 자기 좌석을 내주었다. 까맣게 그을렸지만 피부가 반짝이는 정말 양순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한편으로 나는 그가 금방 내리나 보다 생각도 했다.


15분쯤 지났을까, 그 아저씨는 좀 전에 내가 비집고 앉으려 했던 곳에 자리가 나자 그곳에 가서 앉았다. 저쪽에서 나를 마주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나는 그가 나를 봐주기를 기다렸다가 그에게 미소를 보냈다. 금방 다른 사람 때문에 가려지기는 했으나 그는 내 미소를 보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불편한 자리에 앉아있던 그는 내가 과르메에서 내리기 조금 전에야 안정된 좌석을 찾아 옮겨 앉았다. 저렇게 긴 시간 동안 갈 거면서, 어떻게 그렇게 주저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자리를 양보할 수가 있지?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을 그렇게 즉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인지 참 놀랍고 고마웠다.


과르메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차장이 내게 물었다.

“에어로 푸에르또?”

“예쓰, 에어로 뿌에르토”

그러고 나서 한참 후에 차가 멈추었을 때, 차장은 내게 내리라는 손짓을 했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내가 내린 곳은 버스 터미널이 아니었다. 시내버스 승강장 같은 것이 하나 보이긴 했으나 그곳에서 공항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 그곳에 있다가 저쪽에 상점이 보이고 사람들도 보여서 그리로 갔다.


내가 할 줄 아는 말이라곤 ‘에어로 뿌에르토’밖에 없었다. 그들도 내게 뭐라고 말을 했지만 당연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몸짓을 하다가 한 방향을 가리키며 ‘에어로 뿌에르또’를 연발한다. 그러나 그들이 가리키는 방향도, 말도 나는 감을 잡기 어려웠다.

길을 건너라는 말 같았다. 아무래도 길을 건너서 반대쪽 승강장으로 가라는 의미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곳은 차들이 질주하고 있는 넓은 도로라 건널 수 있는 곳인가 싶어 머뭇거렸다.


그때 저쪽에서 한 초로의 남자가 다가왔고 상점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불러 뭐라 뭐라 하니까 그는 내 큰 가방을 덥석 집어 들어 어깨에 들쳐 멨다. 사람들은 내게 그를 따라가라고 손짓했다. 바로 앞의 오토바이로 공항까지 가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는 ‘에어로 뿌에르또’라는 말과 내 손짓을 알아듣고 그렇다고 했다.


내가 망설이자 상점에 있던 남자가 다가와 아니라고, 오토바이로 가는 게 아니라고 하며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역시 ‘에어로 뿌에르또’를 외치며. 그러자 초로의 남자는 나를 길 건너로 조심스럽게, 아이를 데리고 가듯 길을 건넜다.


우리는 정류장도 아닌 커브 길 모퉁이 쪽에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렇게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버스 한 대가 우리 앞을 지나가려는 찰나 그가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버스는 저만치 앞에 가서 섰다. 우리는 버스를 향해 뛰었고, 나는 그에게 돈을 주어야 하나 잠시 생각했지만 이게 돈으로 연결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그라시아스’라고 인사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급히 차에 올랐다.


콜롬비아 사람들이 정말 좋다고 하더니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과르메 터미널도 아니고, 그 중간 어디쯤 작은 시골 마을 사람들의 인심이 내 마음을 환하게 해 주었다.


그래도 진짜 이게 공항으로 가기는 하는 걸까 싶을 만큼 차는 자주 정차했고, 사람들은 계속 오르내렸다.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어느 정류장에서, 내가 또 어떤 사람에게 ‘에어로뿌에르또?’라고 묻자, 그는 버스가 가는 방향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내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참 만에, 앞자리에 앉은 흰 셔츠 유니폼을 입고 목에 이름표를 걸고 있는 여자가 내리면서 나를 바라보았고, 내 뒤에서 내리는 똑같은 복장의 다른 여자가 내게 말했다.

“씨뇨라, 에어로 뿌에르또.”

“에어로뿌에르또?” 하며 나는 손가락으로 여기냐고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따라 내렸다.


버스에서는 안 보였으나 내려서 보니, 저쪽 100미터쯤 거리에 공항 건물이 보였다. 걸어가면서 그녀는 내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보고타로 가는 체크인 카운터는 저쪽으로 가면 된다며 길 건너편 쪽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여행 잘하라며 나와는 다른 쪽 방향의 지하 도로로 들어간다. 공항 직원인 모양이다.

‘에어로뿌에르또’에 얽힌 일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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