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너리로의 작은 소풍

- 멘도사, 아르헨티나

by Annie



난도에게 물어보니 내가 선택한 와이너리 투어를 위해서는 마이푸라는 마을까지 기차를 타면 된다고 한다. 기차역을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니 도보로 16분. 멀다. 그러나 시도해보기로 한다. 양산으로 쓰고 있는 빨간 우산을 갖고 가기 잘했다. 이 길은 나무 그늘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곳 멘도사는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어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투어를 진행하는 와이너리도 꽤 많다. 원래 제일 유명한 와이너리는 일일 예약 인원이 정해져서, 당일에는 예약이 불가하다고 했다. 혹시 몰라서 난도가 전화를 해봤지만 역시 안 된다고 해서 나는 내가 검색해두었던 작은 와이너리에 가기로 했다.


거의 도착해서 타야 할 기차역을 확인하려고 한 여성에게 물었더니 앞을 가리켰다. 내가 저 앞의 버스 정류장 같은 곳을 말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그냥 나와 함께 차도를 건너 그곳까지 나를 데려다준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마이푸 가는 차가 맞느냐고 물어보더니, 맞다며 내게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나도 이제는 남미 사람들의 인사법에 익숙해져서 포옹하고 볼 인사 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문제는 기차에 오르면서다. 사람들은 모두 입구의 기계에 대고 카드를 찍는다. 그러면 접수했다는 듯 삐빅 소리가 난다. 그래서 난 한 청년에서 당황해서 어떡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그는 영어를 좀 할 줄 알았다. 어디까지 가느냐고 해서 마이푸에 간다고 했더니 아무 사람한테나 20페소 정도 주고, 카드를 찍어달라고 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20페소를 주면서, “네가 해줄래?”하니까 그가 자기 카드를 찍어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네가 카드를 찍었을 때, 내가 너와 내리는 역이 달라도 괜찮아?”

“괜찮아.”

나는 기차 노선도를 뚫어지게 보다가 내가 탄 역의 이름을 확인 안 했던 것을 알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그 역 이름과 내가 내려야 할 역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주었다. 착한 청년이다. 그는 한참 후에 내게 인사를 하고 내렸다. 여행에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다.


종착역에 내려서 보니 택시가 없다. 마을 쪽으로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서있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싹싹한 청년이 말을 건다. 내가 와이너리 이름을 대니 구글맵으로 검색해보고 15킬로 정도 된다고, 걸어갈 수는 없다고 한다. 당연하지. 그가 택시를 불러주고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다녀오라고 카페 안을 가리켰다. 주변에 서있던 젊은 남녀들도 모두 신기해하며 내게 말을 걸었다.


와이너리까지는 택시로 200페소(4천 원)였다. 와이너리는 넓은 부지에 잔디밭 풍경이 근사했다. 사실 와이너리 투어라고는 하기에는 좀 세트장 같은 느낌이었고 직원의 설명도 아주 짧았다. 시음 와인이 세 잔 제공되었다. 점심식사가 가능한지 물었더니 피자가 된다고 해서 모차렐라 치즈 피자를 시켰다.


런던에서 온 두 걸과 한 테이블에 앉아 두 잔을 시음했는데 영어권 토박이인 그들과 얘기하다 보니, 나도 영어가 거의 원어민 수준으로 잘 된다. 상대에 따라 상대가 잘하면 나도 좋은 영어를 구사하게 되고, 상대가 버벅대면 나도 함께 버벅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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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피자가 나와서 밖으로, 좀 전에 봐 둔 그 멋진 곳으로 옮겨달라고 했다. 피자도 엄청 맛있고 풍경도 끝내준다. 직원이 와인 한 잔을 더 갖다 준다.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른 나는 그 모습을 셀카로 남겼다. 와이너리 투어라기 보다는 전망좋은 브런치 레스토랑에 와있는 기분이다. 동행이 있어도 좋겠지만 나 혼자인데도 너무나 흡족하다. 혼자 나온 소풍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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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한 정거장 전에 내렸다. 25 de Mayo이던가, 구글맵에는 똑같이 16분 정도 걷는다고 나오는데 이곳은 정말 아름다운 동네였다. 집들이 크진 않아도 모두 정갈하고 아름답고 조용했다. 그냥 이 동네에 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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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들러 아보카도, 샴푸를 사고, 나 혼자 먹을 분량의 스테이크용 고기를 얇게 잘라달라고 했더니 정말 얇게, 그러나 나 혼자도 충분한 조각으로 잘라주었다. 40페소(800원) 짜리 스테이크용 고기다. 말벡 와인도 한 병 사들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이곳 호스텔에서 난 많은 것을 나눈다. 돌아오는 길에 너무 목이 말랐는데, 부엌에서 난도가 맥주를 따르고 있었다.

“네 거야? 나 한잔 줄래? 대신 내 와인 한 잔 마셔.”


그래서 난 시원한 맥주로 목을 적셨고, 와인은 요리를 하고 있던 호스텔의 바깥주인이 대신 따주었다. 난 그에게도 와인을 한 잔 따라주었다. 테이블에 앉아 저녁을 먹으며, 와인을 마시며 글을 썼다. 오랫동안 글을 쓰다가 난도와 함께 얘기를 시작했다.


사회주의는 너무 아름다운 이론인데, 인간은 동물적 본능에 충실해서 그 이론을 지속적으로 지켜 나가기가 너무 버겁다고, 그래서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자꾸 부작용들이 나타나곤 한다는데 서로 공감했다.

성장 일로에 있는 중국도 공산주의로 경제성장한 케이스는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더 이상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다. 그들은 공산주의든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그런 것에 더 이상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무서운 속도로 경제 대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머지않아 중국은 세계의 많은 부분을 돈으로 사버릴 것 같다.

나는 뭐 이런, 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들을 떠들어댔다. 우린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었다. 난도와는 긴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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