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여행 2018
이 가을 여행의 첫 행선지는 구례 가는 길에 들를 수 있는 곡성의 태안사다. 태안사는 오래전에 한 번 갔던 적이 있다. 절 규모는 아주 작은데 앞에 큰 연못이 있어서 무척 인상적이었던 곳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태안사로 들어가는 긴 단풍나무 숲길이 아름답다고 한다. 입구에 다다를 때까지의 동네 길도 가을빛을 품어 예뻤다.
그러나 정작 예쁠 거라고 기대했던 태안사 입구의 숲길은 온통 마른 갈색이었다. 단풍이 벌써 다 져버린 건지, 색이 들기도 전에 무슨 이유로 다 말라버린 건지, 초겨울에나 볼법한 단조로운 빛깔뿐이었다. 태안사의 연못도 전과는 달랐다. 전에 왔을 때는 호젓하면서도 뭔가 독특한 풍경이었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삭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흐린 날씨 때문일까? 주변이 달라진 걸까? 다른 절들처럼 여기도 절 건물들을 신축해서 규모를 더 키웠나?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억 속의 태안사와는 딴판이라 실망이 컸다. 눈길을 끄는 것은 마치 흑백 사진에 나무 한그루만 빨간색으로 칠해놓은 것처럼, 연못가에 낯설게 서있는 단풍나무였다. 그 아래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수북이 쌓여있는 빨간 잎들도 기묘하게 예뻤다.
아마 태안사에 대한 나의 실망감은 나의 기억에 따른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에겐 여전히 호젓하고 느낌 좋은 산사일 것이다. 이곳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검은 가지 위에 샛노란 은행나무 잎이 너무도 선명해서 그 앞에 차를 바짝 대서 세웠었다. 날까지 흐려 단조로운 빛깔의 태안사에서 이 은행나무와 호숫가 단풍나무만 강렬한 빛을 뿜고 있었다.
올라오는 길에 참 독특한 문양의 석조 다리가 있었는데 내려가면서 그곳에 차를 멈추었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 '쏴아' 하며 바람에 낙엽들이 쓸리는 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아! 소리, 소리들..
차 안과는 너무나도 다른 서늘하고 맑은 공기, 쏟아지는 소리들과 어우러져 순간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딘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와아!' 하는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계곡 사이로 물이 흐르고 그 위에 놓인 다리 너머로는 묘하게 마음을 끄는 숲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리 난간의 석조 장식이 마차 바퀴들을 박아놓은 것처럼 신기한 모양이다. 가까이 가보니 동그란 태극 문양으로 된 장식이 우아하고 아름답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차를 멈춰 내려 보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태안사를 빠져나가는 마을길은 들어올 때 보았던 것보다 더 아름다워서 자꾸 차의 속도가 느려졌다. 석곡에서 구례까지 가는 길은 가을 빛깔이 너무 아름다워 길가에 자꾸 차를 세우게 되었다. 도중에 차를 세워놓고 지인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사진을 본 친구가 '예쁜데 조금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가을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잎이 많이 져버린 휑한 나뭇가지들 때문인지도.
우리처럼 딱 오십 후반의 여자 같은 이미지였는지도 모르겠다. 한쪽에는 여전히 고운 여자의 태가 남아있으나 이제는 그 아름다움도 가을바람에 하나 둘 잎 지듯이 안타까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
그러나 그 여자는 이 아름다운 늦가을에 또 가슴 설레는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