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숲에서 길을 잃다

- 가을 여행 2018

by Annie


오후 늦게 구례로 접어들었다. 내비에 ‘지리산 정원’을 치고 가면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도착할 거라고 들었다. 늘 지나다니던 지리산 온천랜드 쪽으로 들어서서 우회전하라기에 했는데 내비는 나를 좁은 마을길로 인도한다.


처음엔 지름길인가 했다. 조금 가면 좋은 길이 나오겠지 했지만 점점 산속 길로 들어간다. 차를 돌려 나올 공간도 없고, 앞에서 차가 오면 피할 수도 없는 길이었다.


숲길은 예뻤지만 그 예쁨에 온전히 빠질 수가 없었다. 곧 날도 어두워질 텐데. 짐작컨대 산 중턱쯤까지 올라온 것 같고 이후로도 계속 완만하게 올라가는 것이 여기가 바로 그 지리산 둘레길인 모양이다. 차도 사람도 전혀 눈에 띠지 않는다. 내비는 목적지에 다 왔다고 하는데 나는 가장 깊은 산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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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에게 전화했더니 그 일대를 모두 ‘지리산 정원’이라 부르는 모양이라고, 다시 ‘지리산 생태 테마랜드’를 검색해보라고 한다. 산 중턱인데도 드디어 차를 돌릴 만한 곳이 나와서 다시 산을 내려오다가 이정표를 발견했다.


‘지리산 생태 테마랜드 1.9km'라고 쓰인 팻말의 화살표를 보니 아주 좁은 길인데 그쪽에서 트럭 한 대가 나오고 있었다. 트럭 운전자에게 물었더니 그 길로 가지 말고 큰길을 따라가다 삼거리가 나오면 우회전해서 가라고 했다. 산중에서 처음으로 만난 차와 사람이었다. 한 편으론 산중에서 마주친 그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감사할 일이었다. 다행히 그는 내가 가는 방향으로 앞서 갔다.


한참을 내려가다 그 트럭의 비상등이 한 번 깜빡인다. 세 갈래 길이었다. 삼거리라고 해서 난 산을 벗어난 후의 일반 도로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분명 저 한 번의 깜빡임은 내게 보낸 신호일 텐데 길 모양이 어째 이상하다. 다시 산을 올라가게 되어있는 그 좁은 길을 미심쩍게 바라보다 별 뾰족한 수도 없어서 그가 알려준 대로 우회전을 했다. 느리게 차를 몰던 나는 전방 삼십 미터쯤에 산모퉁이로 감추어져 끊긴 것 같은 길을 보고 차를 멈추었다.


여긴 진짜 딱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구불구불한 길이다. 내리막이 아니고 다시 이렇게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이라면, 더구나 찻길이 아니라 그 끝이 차를 돌릴 수도 없는 곳이라면 그땐 어떻게 하지? 잠시 후진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도 너무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었다.

'그 비상등은 분명 이곳이 그가 말한 삼거리라는 의미였을 거야. 가자.'


난 다시 직진을 해서 산모퉁이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그 길은 모퉁이 너머 어느 쪽으로 길이 나있는지도 모르는 데다 엑셀까지 좀 세게 밟아야 하는 오르막이었다. 자칫하면 높은 산 위에서 바퀴가 방향을 못 잡고 산 아래로 끝없이 추락할 수도 있다.


오래전에 운전이 이보다 더 서툴렀을 때 꿈을 꾸었는데, 모퉁이 길을 도는 지점에서 자욱한 안개 때문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었다. 순간 난 체념하듯 눈을 질끈 감고 브레이크인가 엑셀인가 어느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페달을, 아니면 그 두 개를 동시에 밟았던가 했었다. 지금이 딱 그 꿈속 같은 순간이었다.


'에라'하는 심정으로 가속 페달을 밟고 모퉁이 길에 올라서는 순간, 오른쪽으로 구부러진 길이 보이면서 내차는 그 길 위에 안착했다. 마치 낭떠러지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눈을 질끈 감은채 몸을 날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곳에서는 산 아래 멀리 마을도 내려다보이고 산 너머로 막 떨어지고 있는 해도 보였다. 산 중턱 외길 위에서, 그것도 차 안에서 노을을 보고 있자니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는다. 나는 차 안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그 풍경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그때의 느낌과 광경을 사진에 온전히 담을 수는 없었지만 그 아찔하고 경이롭던 순간은 마음속에 각인처럼 남았다.


여행이 어긋나나 싶을 때면 늘, 더욱 흥미진진한 것들과 마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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