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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Jul 30. 2022

남해 보리암 가는 길

   - 가을 여행 2018


   보리암은 주차장부터 순천만 못지않은 난맥상이었다. 1차 주차장에서 2차 주차장까지 7km를 올라가야 하는데 현재 만차라 줄 서서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차들이 두 줄로 서서 기다리다 차례가 되면 주차 요원이 다가와 주의 사항을 일러주었다. 올라가는 길이 경사가 가파르고 굴곡이 심해서 매우 위험하다고, 저단 기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정말 가파른 경사라 올라가기도 무척 힘들었지만 내려올 때는 ‘브레이크 파열 주의, 저단 기어 사용’이라는 안내판의 말처럼 아슬아슬했다. 올라갈 때 마주친 차들이 왜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있는지 알만했다. 저단 기어를 넣어도 차는 죽죽 미끄러져 내렸고 내 고물차로는 불안해서 브레이크를 세게 밟을 수도 없었다. 


  차에서 내려 보리암에 도착하기까지 아주 오래 걸리지는 않지만 길이 오르막도 있고 계단도 있었다. 도중에 허리가 30도 정도 굽은 80대 할머니가 지팡이와 딸인 듯 보이는 중년 여성의 부축에 의지해 그곳을 오르고 있었다. 첫번째 오르막에 올라서서 옆에 있던 또 다른 딸로 보이는 여자가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엄마, 못 갈 것 같은데. 아직 한참 남았는데 가다가 또 오르막이 있고 계단도 있다고 해. 못 가겠어.” 

  할머니는 대답이 없다. 


  몸집 큰 그 딸은 허리 굽은 노구의 엄마를 데리고 보리암까지 가고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녀는 엄마가 그만 돌아서 내려가자고 하기를 내심 너무나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말없이 엄마를 부축하고 있는 다른 딸의 마음은 어떨까? 혹시 딸이 아니고 며느리여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것일까? 난 그들을 지나쳐 올라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걷다가 사진을 찍다가 그렇게 사람들을 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또 한 번의 오르막길에서 난 그 할머니 일행을 다시 만났다. 몸집 큰 딸이 보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할머니와 그녀를 부축하고 있는 여성은 또 한 번의 오르막길을 이미 다 올라와 있었다. 순간 나도 그 부축의 대열에 끼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길은 아직도 멀었고 어떻게 보리암까지는 간다 해도 다시 돌아 내려갈 때까지 그들의 동행이 되어 줄 자신이 없었다. 


  난 다시 가던 길을 앞서 갔다. 산 저 너머에 서서히 바위들이 나타났다. 한참을 더 걸으니 가파르게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다 내려가니 절 같은 건물이 나오고 보리암의 놀라운 형체와 멀리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풍경이 펼쳐졌다. 산 앞으로는 발아래 굽이굽이 산들이 아직 물이 덜 든 단풍나무들로 뒤덮여 있었다.


















  사진을 찍다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 그 할머니 일행과 다시 마주쳤다. 할머니는 활기가 넘쳤다. 난 할머니 앞으로 폴짝 뛰어가 함빡 웃으며 양손을 들고 두 엄지를 치켜세웠다. 

  “할머니, 짱!” 

  할머니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설핏 웃었다. 할머니를 부축하고 있던 여성이 빙그레 웃었다. 두 사람 모두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난 그 할머니의 성취를 진심으로 기뻐했다. 


  주변에서 아무리 만류해도,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난색을 표해도, 할머니는 한 번도 자신의 의지를 꺾을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그런 강한 의지와 에너지가 주변 사람들마저 이끌었을 것이다. 늙음이나 장애를 이유로 타인이 그들의 활동을 제한하도록 직 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몸집 큰 딸처럼. 난 그 할머니에게, 그리고 그녀를 그곳까지 말없이 부축하고 온 그 여성에게 마음속으로 깊은 경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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