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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Aug 01. 2022

호젓하고 독특한 아름다움,
남해 섬이 정원

- 가을 여행 2018


  남해 관광안내지도에 '섬이 정원'이 나와 있길래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다. 지난밤 묵은 숙소에서 거리도 가깝고 꽤 가볼 만한 곳일 것 같았다.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어떻게 된 건지 너른 주차장 어느 쪽으로도 정원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입구에는 미니 카페처럼 보이는 작은 공간이 있고 그 옆에는 입장권 자동판매기가 있었다. 5천 원, 입장료가 만만치 않은데 그 값을 할까 싶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도 인터넷 정보를 한 번 믿어보자 하고 티켓을 끊어 '정원 입구'라고 쓰인 작은 팻말이 가리키는 곳으로 들어섰다. 


  '어, 괜찮네.' 

  1미터 정도 높이에서 졸졸졸 귀여운 물줄기들이 떨어지는데 그 소리가 귀를 활짝 깨웠다. 화려하진 않지만 오솔길 양쪽으로는 소박하고 키 작은 꽃과 나무들이 펼쳐져 있었다. 눈이 확 뜨일 정도는 아니나, 어쩐지 이곳에 들어선 순간 동화 같은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이다. 


  내 뒤로 한 커플이 따라 들어왔다. '혼자이고 싶지만 한 커플 정도야 뭐.' 난 물소리와 새소리만 작게 들리는 이곳을 즐길 준비가 되었다. 들어갈 때는 사진도 찍지 않은 채 이곳을 온전히 즐기기만 하고 사진은 나올 때 찍기로 한다. 


  '다 이런 모습인가?' 하며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가 돌아 나오는데, 길은 또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다. 그곳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전혀 달랐다. 긴 직사각형의 연못은 인조대리석의 프레임으로 둘러져 있고 연못 뒤로는 아주 작은 무대가 있었다. 그리고 연못의 맞은편 끝은 바로 하늘과 맞닿아 있고 이 연못과 하늘 사이에 멀리 바다가 이어져 있다.  


  또 그 연못에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들이 거울처럼 비쳐 대칭을 이룬 모습이다. 연못 왼쪽으로는 사막 식물 같은 것들이 자라고 있어서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주고 오른쪽에는 페브릭 쿠션이 놓인 의자와 테이블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어서 마치 유럽 시골의 야외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다. 테이블 사이사이로는 알록달록한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다.


  내 뒤에 왔던 커플들이 내게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하늘과 닿아있는 연못 끝에 두 사람이 섰다. 정말 근사한 풍경이었다. 내가 찍어준 사진을 보고 너무 예쁘다며 나한테도 사진을 찍겠느냐고 물었다. 난 늘 혼자 다녀서 내 사진이 없던 차에 잘 됐다 싶었다. 포즈는 어색했지만 사진을 보니 정말 배경이 훌륭했다. 실제보다 사진이 훨씬 아름답고 드라마틱해 보이는 드문 풍경이었다.










   삼각대를 세팅해 놓고 한참 동안 요리조리 셀카를 찍던 커플이 떠났다. 난 사진을 좀 더 찍다가 테이블과 의자가 세팅되어 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쨍하게 푸른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들, 그것들을 비추고 있는 모던한 프레임의 연못, 이국적인 식물들, 화려한 단풍나무 한 그루. 


  책을 가져왔더라면, 보온병에 담아온 뜨거운 물과 커피 한 봉지를 가져왔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것들이 없어도 좋았다. 그렇게 오래오래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 자리를 막 떠나면서 정원사인지, 아마도 주인일 것 같은 밀짚모자를 쓴 남자와 마주쳤는데 그가 ‘안녕하세요’하고 밝게 인사했다. 조금 자란 수염은 백발인 듯 하얀데 선이 단정한 이목구비에 그을린 얼굴이 좋은 분위기였다. 


  또 다른 길로 접어드니 저 아래 산뜻한 빨강 프레임의 공중전화 박스가 주변의 초록 잡풀이랑 흰 갈대꽃과 어우러져 예쁘다. 곳곳에 나무와 풀숲이 어우러진 곳에 동그란 테이블과 페브릭 쿠션을 얹은 의자들이 위치하고 있어서 한 번씩 가서 앉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다 돌았나 싶으면 담장을 따라가는 길이 또 나온다. 그 길을 쭉 따라가다 보니 파리 근교에 있는 '모네의 집'에서 본 것 같은 아치형 다리가 개울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일부러 손본 것 같은 느낌이 없이 나무와 풀과 흙이, 그리고 개울처럼 긴 연못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 다리를 건너면 미로 정원 같은 것이 나오고 그 가운데 작은 분수에서 한줄기 물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 미로 정원을 벗어나면 작은 커피 키친이 있고, 긴 데크를 따라 테이블과 의자들이 세팅되어 있는 것이 그곳에서는 커피도 팔고 하나보다. 거기서 다시 마주친 주인은 그와는 아는 사이인 것 같은 남자와 내게 커피를 권했다. 


  우린 함께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퇴직 후 아랫마을에 집을 짓고 시골 생활을 하게 된 남자는 새로 지은 집에 작은 정원을 만들어 보려고 이곳을 가끔 찾는다고 했다. 그가 먼저 자리를 뜨고 주인도 그를 배웅하러 떠났다. 


  난 발아래 작은 연못이며 주변 산과 들을 배경으로 한 그곳의 사진을 찍었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느 틈에 주인이 다시 돌아와서 내 카메라가 정말 조용하다고 했다. 그는 그곳 담벼락에서 얼마 전 외국인 사진작가가 찍은 나비 사진들을 전시하기도 했다며 커피 바 안에 걸려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가 이곳에 와서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부터라고 했다. 물론 시작하기 전에 외국의 많은 정원들을 돌아보며 마스터플랜을 짜는데 2년이 걸렸다고 한다. 혹시 그 전에도 이와 관련된 일을 했는지 물었더니 아니라고, 그냥 장사했었다고 했다. 


  원예 일이 자기에게 잘 맞고 참 재미있다고 한다. 이 정원 위의 산자락은 다랭이 논이 자리 잡고 있는데 비가 많이 올 때면 계단처럼 이어진 그 논들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물이 장관이라고 했다. 다만 정원은 그때마다 많은 피해를 입는다고. 가지가 굵지 않은 작은 나무들과 꽃나무들은 모두 쓰러져버린다고. 그러면 할 수 있는 것들은 일으켜 세워서 묶어두기도 하지만 그도 안 되는 것들은 어쩔 수가 없다고. 


  부지런히 올라오는 잡풀들은 일 년에 두 차례 정도 마을 아주머니들의 힘을 빌어 정리한다고 했다. 아직도 정원은 완성되지 않아서 겨울이면 축대를 쌓고 계단을 만드는 등의 토목 일을 주로 한다고 했다. 걸으면서 그는 여러 가지 꽃에 대한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하자고 들면 한없이 이야기가 계속될 것 같았지만 나는 또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했으니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빈 말이 아니라 다른 계절에 꼭 다시 한번 와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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