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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Aug 02. 2022

신비로운 노을, 상주 은모래 해변

 - 가을 여행 2018


  상주 은모래 해수욕장으로 내비를 설정해놓고 가다가 ‘작은 미술관’이라는 이정표를 지나쳤다. '섬이 정원'에서 뜻하지 않게 원예 예술가를 만나 얘기를 나누었으니, 저곳에 가면 또 지역의 어느 예술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차를 돌렸다. 


  원래 보건소 사무실이었는데 보건소가 없어지면서 그 기능을 미술관으로 바꾸어 지역인들의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름 그대로 정말 작았다. 그냥 작은 사무실과 진료실 하나를 문짝만 떼어내고 만든 곳이었다. 그래도 공공 기관에서 운영하는 때문인지 전시 작가 두 명은 작품에 대해 꽤 괜찮은 작가의 변을 썼고 그것을 벽에 붙여둔 덕분에 나름 좋았다.     


  작가 1. 김서현

  우리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모습으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나는 그 다양함을 다양한 색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평면 재료 위에 여러 가지 파쇄 지를 사용하여 드리핑(dripping)과 꼴라쥬를 한다....(중략)

  단순한 가위질로 시작한 이 작업은 파쇄라는 좀 더 강력한 행위로 진행되었다. 깨뜨려 부순다는 의미의 파쇄는 세계를 바라보는 또 다른 방법으로 작용한다.... (중략) 파쇄라는 행위를 통해 해체, 분해하며 다시 재구성함으로써, 나의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 김서현, 전시 브로셔에서 부분 발췌.  





  작가 2. 심은영     

  상상적 실천,... (중략) 수행의 의미로 이어져 가는 반복적인 바느질도 그렇다. 그런 기억의 경험들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가 결정적인 연결 고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기억들 중 아버지의 세탁소가 있다. 옷을 바라보며 그것을 입고 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고 사람마다 고유한 마음의 생김새를 생각한다. 다리미로 연결된 스팀관 안으로 마치 사람의 온기가 불어넣어 지는 듯 구겨진 옷들을 펴내는 행위들은 때론 폭력적인 사람들의 내면마저 다려내는 듯했다.

               - 심은영, 전시 브로셔에서 부분 발췌. 



                - 심은영, 작은 미술관, 2018. 전시 브로셔 사진 차용


  이 글들을 보니 학교에 근무할 때, 무슨 보고서 같은 것을 작성하는 동료 선생님들의 작문 솜씨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필요에 의해 작성된 글이었든 작품에 대한 작가 자신의 본래 생각이었든, 떨렁 놓인 작품들만 보는 것보다는 글이 있음으로 해서 작품에 대한 이해와 사고의 여지를 주는 것은 분명했다. 현대 예술은 시각적 효과로서의 감상 외에도 그 의도와 의미를 읽는 것 또한 중요하므로. 


  미술관을 나온 시간이 두시 반 정도였던 것 같다. 여기서 오늘의 한 끼를 시도해볼까? 모두 횟집들 뿐이다. 

전복죽이나 회덮밥 같은 것을 먹어볼까? 난 작은 미술관으로 다시 들어가 그곳을 관리하고 있는 여성에게 마땅한 식당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두 집을 추천해주는데 두 곳 모두 브레이크 타임이다. 

  선택의 여지없이 다른 손님들이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회덮밥을 시켰다. 덮밥 위에 나온 꽤 많은 회며 반찬, 따끈한 고구마튀김까지 난 내 위장이 허락하는 한 많이 맛있게 먹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은모래 해수욕장까지 가는 길도 대부분 바다를 끼고 있어서 경치가 정말 좋았다. 가능한 천천히 차를 몰다가 두어 번 차를 멈추고 내려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도착했을 때는 날이 약간 흐리기도 했지만 곧 해가 질 모양이었다. 역시 숙소는 정하지 못한 채였다.


  무척 아름다운 곳이라고 들었는데 내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해변이었다. 바다라고 해서 별다른 감흥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흐리고 무표정한 바다였다. 그래도 한껏 집중해서 사진을 찍다 보니 바다 빛이 조금씩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흐린 바다에 빛깔이 더해지면서 사진 속의 바다와 그 바다를 둘러싼 산들이 어떤 두려운 생명체의 꿈틀거림처럼 느껴졌다.



  














  어두워지도록, 어두워져서 바다는 형체를 잃고 주변 불빛들만 깜빡이도록까지 사진을 찍는데 몰두했다. 이제 더 이상 찍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바다는 깊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아직 숙소를 정하지 못했던 나는, 이미 어두워진 마당에 잘 곳을 찾아 또 차를 몰고 산길을 넘어 낯선 곳을 헤매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는 비싼 펜션들만 있는 것 같았지만 별수 없이 해변 바로 앞에, 가장 가까운 펜션의 문을 삐죽이 열고 들어갔다. 



  “혼자인데 제일 싼 방 하나 쓸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더니 보통 10만 원 하는데 7만 원에 해주겠다고 했다. 바다를 향한 벽면 전체가 창으로 된, 전망을 가장 중시한 방이었다. 문제는 방바닥이 닿는 곳까지 전체가 창이다 보니 2층의 그 방은 지나가는 사람이 고개만 들어도 방안 풍경이 다 보인다는 것이었다.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모를 남자애들 무리가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지나가는 것을 보았던 참이라 왈칵 겁이 났다. 


  사실 바다에서 이쪽을 향해 모래사장을 걸어올 때, 옆방과 위층 방의 불 켜진 창을 통해 방안의 구조와 사람들의 모습이 조명 밝힌 무대처럼 또렷이 보였던 참이라 더욱 그랬다. 두 쪽으로 나누어진 블라인드를 내렸지만 사이가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방안에 불이 켜져 있으면 그 사이로도 다 들여다보일 거라고 생각하니 안정감이 없었다. 난 스탠드형 옷걸이를 블라인드 틈이 벌어진 사이로 옮겨 세웠다. 좀 나았다.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옷을 주워 입고 바다로 나갔다. 아침 바다 풍경은 빛깔도 분위기도 저녁과는 사뭇 달랐다. 고요함의 종류도 달랐다. 바다와 해가 만나는 것은 같지만 일출과 일몰에는 그 느낌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아침의 느낌으로 사진을 찍어보며 바다 저쪽 끝까지 걸어갔다 왔다. 

  오늘은 해오름 미술관과 독일마을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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